▲ 질의응답에서 신기욱 교수가 한미동맹과 중국·북한 문제에 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료=IGE 웨비나 화면 갈무리.
김영근
비핵화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 사는 법'으로
북한 대목에서는 질문 자체를 바꾸자고 했다. "어떻게 핵을 없앨 것인가"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것인가"를 정책 의제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북한을 법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말이라기보다, 비핵화 목표와 별개로 억제와 위기관리의 현실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2021년 공편한 < The North Korean Conundrum >에서 그는 핵안보와 인권을 제로섬으로 다루지 말자고 했다. 핵 문제를 앞세워 인권을 지우거나, 인권을 말한다며 안보 현실을 외면해서는 정책이 지속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번 강연에서도 원론과 현실을 분리하지 않았다. 비핵화 원칙을 유지하더라도 확장억제, 자주국방, 위기 소통, 인권을 한 틀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 해협과 북한 변수가 동시에 움직일 가능성도 외면하지 말라고 했다. 실제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발생 가능성을 0으로 놓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희망에 가깝다. 쉬운 해법을 내놓기보다 잘못된 질문이 정책을 얼마나 오래 제자리걸음하게 하는지 지적한 셈이다.
외교의 기저(바탕)에는 국내 정치가 있다
신 교수의 연구에서 외교와 국내 정치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2022년 김호기 교수와 공편한 <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 >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포퓰리즘, 양극화, 사법·시민사회의 정치화, 불평등과 정보환경의 변화로 추적했다. 2024년 비상계엄 사태 뒤에는 제도가 위기를 막아낸 회복력과 깊어진 불신을 함께 짚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신뢰할 수 있는 협력자'가 되라는 주문은 외교부만의 숙제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외전략이 급회전하고, 국내 갈등이 안보 사안까지 진영 논리로 끌고 들어가면 상대국은 한국의 약속이 얼마나 지속될지 의심한다. 외교의 일관성은 국내 제도의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 이날 강연이 동맹과 산업을 말하면서도 교육과 이민, 정치적 안정으로 옮겨간 이유다.
강연 후반부의 화두는 '정점에 오른 한국'이었다. 반도체와 문화산업이 세계적 성과를 내고 있지만, 호황이 영구적이라고 믿는 순간 정점은 하강의 출발점이 된다. 미국이 언제까지 한국산 메모리에 의존할지, AI 투자 열기가 꺾일 때 충격을 견딜 수 있을지, 플랫폼 의존 속에서 한국 콘텐츠의 몫을 지킬 수 있을지를 물었다.
신 교수는 지금의 초호황을 분배 논쟁만으로 소진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미국이 자국 기업과 생산기반을 키우면 한국의 독점적 지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벌어들인 이익을 연구개발과 다음 세대 산업에 재투자할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경고였다. '코리아 피크'는 한국이 이미 쇠퇴한다는 단정이 아니라, 성공이 다음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질문이다.
이 문제는 그의 최근 인재 연구와 맞닿아 있다. 신 교수는 2025년 인재 전략 비교 연구서 < The Four Talent Giants >와 2026년 글에서 인재를 국내에서 길러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해외 인재 유치, 두뇌 순환, 해외 네트워크 활용을 함께 조정하는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날도 저출생과 고령화 속에서 이민은 피하기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으며, 사회적 충돌이 커지기 전에 제도와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의 연구가 하나로 모인다. 동맹은 선언보다 신뢰의 축적이고, 민주주의는 선거보다 제도의 신뢰이며, 산업 경쟁력은 일시적 호황보다 인재의 재생산 능력이다. 외교전략도 국내 정치와 교육, 이민, 연구 생태계가 받쳐주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니었다. 어느 분야에서 누구와 협력하고, 무엇은 국내에 남기며, 어떤 위험은 스스로 감당할지 정하는 국가 전략의 설계도였다. 각자도생은 혼자 살아남으라는 말이 아니다. 선택의 비용을 남이 대신 계산해주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경고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말이 '이재명믹스'다. 이는 신기욱 교수가 사용한 표현이 아니라, 그의 진단을 현 정부의 정책 언어로 옮겨 붙인 이름이다. 특정 사업을 포장하는 구호가 아니라 한미동맹, 대중국 관계, 반도체·인공지능·제조업, 공급망, 인재 정책을 하나로 묶는 국가전략의 조합이어야 한다. 미국에는 신뢰할 수 있는 기술·제조 협력자로 자리 잡되, 중국과는 전략산업의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필요한 경제협력은 유지하는 현실적 구상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도 이런 선택과 조정 능력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정책이 부처별로 흩어질 때다. 외교는 동맹만 말하고, 산업정책은 투자 유치에 머물며, 교육정책은 부족한 인재를 뒤늦게 채우는 방식으로는 '각자도생'의 지경학을 견디기 어렵다. 이재명믹스가 실질을 가지려면 외교·안보와 산업·기술, 고등교육과 이민정책을 함께 설계하고 조정하는 국가 차원의 실행 체계가 뒤따라야 한다. 동맹과 자율, 성장과 지속가능성, 중국과의 경쟁과 협력을 사안별로 구분하면서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혼돈의 시대에 요구되는 이재명믹스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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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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