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6.24 17:18수정 2026.06.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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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젊은 엄마의 모습이 기억이 날 때가 있다. 소파 한 편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모습이었다. 정갈하게 갠 빨래를 차곡히 쌓아두거나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엄마는 전축에서 나오는 클래식 볼륨을 올렸다. 그리고선 꽃무늬가 그려진 예쁜 잔에다 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았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 너머로 보이는 엄마의 얼굴은 평소와 사뭇 다르게 보였다. 어디를 보는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든, 그 시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곳은 마치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세월이 흘러 나 역시 두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간 아침이나 가족 모두가 잠든 밤이면 빈백이나 의자에 기대어 앉아서 쉬곤 한다. 약간은 벌어진 입으로 가빴던 숨이 깊어지면, 습관처럼 스며있던 긴장이 풀어진다. 그런 상태로 어딘가에 초점을 두지 않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다 보면, 구름처럼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간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이번 달 카드값이나 내일 먹을 반찬 등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해야만 했던 생각들 이면에, 다음 책에 대한 영감이나 새롭게 배우고 싶은 악기 등 바쁜 일상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곤 한다.

▲ 손정민 작가 개인전
이정현
손정민 작가의 이번 개인전에서 내 눈과 마음을 가장 가까이 끌었던 것은 바로 그 '시선'이었다. 크고, 작은 캔버스 안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꿈을 꾸는 듯한 눈빛을 지닌 그녀들은 작가이기도, 나이기도, 내 친구이기도, 엄마이기도 했다. 풀밭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자세의 여인 그림에서는 마치 어디선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풀과 함께 머릿결을 가만히 쓸어주는 것만 같은 편안함이 느껴져, 보자마자 "하-" 하고 깊은 숨이 쉬어졌다.

▲ 손정민 개인전
이정현
특히나 고흐의 '해바라기'나 '장미'처럼 유화 물감이 두껍게 올려진 꽃과 붓 터치가 보이는 배경이 조화를 이루며 그림이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이 있었다. 20여 년전 미국 휴스턴의 한 미술관에서 마티즈의 그림을 처음 보고 '와,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구나!' 라고 감탄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여인의 모습과 얼굴을 크게 클로즈업 한 부분에서는 모딜리아니도 떠오르고,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과 빛의 느낌에서는 에드워드 호퍼도 떠오른다. 이처럼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고, 상상하게 하는 작품들은 오랜만이었다.

▲ 손정민 개인전
이정현
여인의 그림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던 꽃 그림들과 프랑스 남부 지방을 거닐다 본 듯한 건물 그림들을 함께 보다 보니, 마치 햇살이 좋은 풍경 속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기분마저 든다. 분주한 도시의 한 가운데서도 먼 곳으로 여행 온 것만 같아서 마음이 설레고 달뜬다. 익숙한 나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으로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 어쩌면 우리가 전시를 보는 이유도, 예술을 갈망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선의 이면'에 담긴 의미를 찾아, 꺼져 가는 삶의 불꽃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 손정민 개인전
이정현
| 전시 정보 |
L'envers du regard│Behind the gaze│'시선의 이면' 2026년 5월 27일-6월 30일 313 아트 프로젝트(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60길 11, 5층) 전시관람 : 화, 수, 금, 토 (월, 목, 일 휴관) 관람시간 : 오전 11시 - 오후6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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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예술가로 살아가며 교육, 예술, 심리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school_d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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