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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곧 '오십'인 내가 받아 든 가장 정직한 성적표

    새벽에 일어나 꾸준히 수영한 결과... 하루하루 성실히 쌓아간 '생활'에 대한 아내의 칭찬

    등록 2026.06.26 11:19수정 2026.06.2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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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다 수영 덕분입니다.
    이게 다 수영 덕분입니다. serenarepice on Unsplash

    "살도 빠지고 군살도 없어진 것 같아."

    아내에게 이런 칭찬을 들은 게 대체 몇 년 만인지요. 쑥스러운 척 "그래?" 하고 무심히 넘겼지만, 속으로는 그날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퇴근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제 실루엣을 슬쩍 확인했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거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수영장 탈의실에서 다시 또 혼자 복근에 힘을 줘봤습니다. 분명 뭔가 좋아지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출근길 정장 바지 허리춤이 기분 좋게 헐렁해졌고, 벨트 칸수는 어느 날 조용히 안쪽으로 한 칸 이동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흐물거리던 밀가루 반죽 같던 몸뚱이 위로, 희미하게나마 단단한 각도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한 변화냐고요? 솔직히 아마 아닐 겁니다. 하지만 오래된 재킷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발견한 것 같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 선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짜릿한 성취감은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

    모두 수영 덕분입니다.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외양과 내면의 상관관계를 열 가지 명제로 나열한 글이었는데, 읽다 보니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성격은 얼굴에, 본심은 행동에 나타난다는 식이었습니다.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아 맞다, 진짜 그렇네'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류의 글이었지요. 그 중에 유독 눈에 박힌 문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생활은 체형에 나타난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체형 앞에서는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먹고 얼마나 움직였는지가 군더더기 없이 몸 위에 고스란히 새겨집니다. 그러니까 아내의 그 한마디는, 따지고 보면 저의 하루하루 '생활'에 대한 정중한 칭찬이었던 셈입니다. 새벽 알람을 끄지 않은 것에 대한, 귀찮아도 수영 가방을 챙겨 나선 것에 대한, 입이 즐거운 야식 대신 몸에 좋은 샐러드를 택한 끈기에 대한 칭찬 말입니다.

    생활이 발급해 준 가장 정직한 성적표


     아내가 준비해 준 정성 가득한 저녁 샐러드 식단
    아내가 준비해 준 정성 가득한 저녁 샐러드 식단 문현호

    그 변화를 감지한 순간부터, 마음 속에서 묘하고 은밀한 욕심이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몸을 만드냐'며 지레 선을 그었던 마음의 벽을 슬그머니 내리고, '조금만 더 탄탄해지면 좋겠다'는 기분 좋은 욕심이 고개를 든 것입니다. 쉰 살 언저리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철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게 꽤 건강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제가 내 몸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위험한 순간입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먹는 즐거움을 통째로 반납하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죄다 사양해가며, 무거운 죄책감으로 유지하는 마른 몸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지향하는 것은 거울 앞에 섰을 때 스스로 대견해 보이는, '활력이 배어 있는 체형'입니다. 살아있는 몸 같은 몸, 오늘도 열심히 살았구나 싶은 몸 말입니다.


    다만 이 욕심을 부릴 때 한 가지 원칙은 지키려 합니다. 지금의 내 몸을 미워하면서 다른 몸을 좇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미워하면서 좇는 것과, 지금의 몸을 인정한 채로 조금 더 나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후자라야 오래갈 겁니다. 미워하는 대상을 위해 새벽에 일어날 사람은 없으니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긍정'이란 "어떤 현상을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신체 앞에서는 이 단순한 긍정이 유독 안 됩니다. 불룩한 내 배를 보며 어느 연예인의 11자 복근을 슬쩍 겹쳐보는, 비교가 거의 본능처럼 작동하는 탓입니다.

    다행히 수영장 레인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온갖 신체가 차별 없이 같은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세상의 잣대는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지고, 오직 숨 쉬고, 팔 젓고, 발 차고 싶다는 원초적인 감각만이 남을 뿐입니다. 그 안에서 저는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을 배웠습니다. 보기에만 좋은 근사한 몸보다, 자유형 열 바퀴를 지치지 않고 밀어붙이는 강인한 몸이 훨씬 더 탐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화면 속의 '날씬함' 대신, 새벽마다 쌓아온 루틴이 빚어낸 성실한 '건강함'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지금 저의 체형은 저의 생활이 발급해 준 가장 정직한 성적표입니다. 새벽 알람에 눈을 뜨고, 수영 가방을 챙겨 차가운 물속에 몸을 던지고, 25미터 레인을 숨차게 왕복 했던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성실한 총합인 셈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 성적표 앞에서 조금 더 뿌듯해 하기로 했습니다.

    체력을 기르고 제 몸을 긍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 제 삶의 영토를 너그럽게 넓히는 일입니다. 에너지가 팽팽하게 차오른 몸은 지상의 사소한 스트레스나 타인의 무례함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맷집을 선물합니다. 잘 정비된 배가 있어야 거친 대양을 항해할 수 있듯이, 매일 새벽의 약속을 지켜내며 다져온 이 몸이 있기에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도 더 멀리, 더 즐겁게 나아갈 수 있는 법입니다.
    #수영 #한강 #한크스 #도전 #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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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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