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준비해 준 정성 가득한 저녁 샐러드 식단
문현호
그 변화를 감지한 순간부터, 마음 속에서 묘하고 은밀한 욕심이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몸을 만드냐'며 지레 선을 그었던 마음의 벽을 슬그머니 내리고, '조금만 더 탄탄해지면 좋겠다'는 기분 좋은 욕심이 고개를 든 것입니다. 쉰 살 언저리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철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게 꽤 건강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제가 내 몸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위험한 순간입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먹는 즐거움을 통째로 반납하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죄다 사양해가며, 무거운 죄책감으로 유지하는 마른 몸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지향하는 것은 거울 앞에 섰을 때 스스로 대견해 보이는, '활력이 배어 있는 체형'입니다. 살아있는 몸 같은 몸, 오늘도 열심히 살았구나 싶은 몸 말입니다.
다만 이 욕심을 부릴 때 한 가지 원칙은 지키려 합니다. 지금의 내 몸을 미워하면서 다른 몸을 좇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미워하면서 좇는 것과, 지금의 몸을 인정한 채로 조금 더 나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후자라야 오래갈 겁니다. 미워하는 대상을 위해 새벽에 일어날 사람은 없으니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긍정'이란 "어떤 현상을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신체 앞에서는 이 단순한 긍정이 유독 안 됩니다. 불룩한 내 배를 보며 어느 연예인의 11자 복근을 슬쩍 겹쳐보는, 비교가 거의 본능처럼 작동하는 탓입니다.
다행히 수영장 레인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온갖 신체가 차별 없이 같은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세상의 잣대는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지고, 오직 숨 쉬고, 팔 젓고, 발 차고 싶다는 원초적인 감각만이 남을 뿐입니다. 그 안에서 저는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을 배웠습니다. 보기에만 좋은 근사한 몸보다, 자유형 열 바퀴를 지치지 않고 밀어붙이는 강인한 몸이 훨씬 더 탐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화면 속의 '날씬함' 대신, 새벽마다 쌓아온 루틴이 빚어낸 성실한 '건강함'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지금 저의 체형은 저의 생활이 발급해 준 가장 정직한 성적표입니다. 새벽 알람에 눈을 뜨고, 수영 가방을 챙겨 차가운 물속에 몸을 던지고, 25미터 레인을 숨차게 왕복 했던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성실한 총합인 셈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 성적표 앞에서 조금 더 뿌듯해 하기로 했습니다.
체력을 기르고 제 몸을 긍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 제 삶의 영토를 너그럽게 넓히는 일입니다. 에너지가 팽팽하게 차오른 몸은 지상의 사소한 스트레스나 타인의 무례함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맷집을 선물합니다. 잘 정비된 배가 있어야 거친 대양을 항해할 수 있듯이, 매일 새벽의 약속을 지켜내며 다져온 이 몸이 있기에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도 더 멀리, 더 즐겁게 나아갈 수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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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오십'인 내가 받아 든 가장 정직한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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