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서울대에서 'IB 고등교육 포럼 2026'이 열렸다. 행사는 'AI 시대, 우리는 어떤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를 내걸고 IB교육의 '성과'를 집약해 보여 주었다. 토론과 글쓰기,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IB의 지향 자체는 중요하다.
그러나 포럼은 성공적인 미담 사례만 잘 모은 자화자찬 행사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수학을 어려워하던 평범한 학생이 IB를 거쳐 해외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면에 놓였다. 감동적인 서사다.
이것은 제도의 성과라기보다 잘 풀린 한 사례를 골라낸 생존 편향에 가깝다. 도입을 추진한 쪽이 스스로의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쓸 수 없어 백지 답안지를 내는 학생들의 사례 같은 반례는 처음부터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IB가 추구하는 가치는 너무나 타당하다. 문제는 IB라는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지금의 한국 교육 현실과 제도 위에 얹는 방식과 부작용이다. 그리고 결코 봉합되지 않는 두가지의 모순이 있다.
IB와 고교학점제는 같은 방향이 아니다
포럼에서는 한국의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바가 IB가 걸어온 길과 같은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제도는 서로 정반대를 향하고 있다. IB 디플로마는 여섯 개 교과군에서 각각 한 과목씩을 반드시 이수하고, 지식이론·소논문·창의활동봉사라는 핵심 과정까지 의무로 부과한다.
'넓고 균형 있게 강제하는' 전인교육의 틀이다. 반면 고교학점제의 명분은 필수 이수 과목을 줄이고 학생이 진로에 따라 과목을 자유롭게 고르게 하는, '좁고 깊게 선택하는' 길이다.
그래서 둘을 한꺼번에 칭송하는 순간 모순이 드러난다. IB의 장점인 균형과 깊이를 인정하면, 그것은 곧 고교학점제가 낳은 선택과목의 파편화와 기초 교양의 해체를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거꾸로 고교학점제의 선택 확대를 옳다고 하면, 영역을 가로지르는 자유 선택을 막는 IB의 필수 구조는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IB가 좋다면 고교학점제의 방향이 틀린 것이고, 고교학점제가 옳다면 IB의 강제를 수용할 수 없다. 두 가지를 동시에 좋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절대평가의 IB와 상대평가의 정시, 한 지붕 아래서 서로를 좀먹는다
두 번째 모순은 평가의 충돌이다. IB는 과정 중심의 논술형 절대평가, 우리 대입의 한 축인 수능 정시는 속도와 무오류를 겨루는 상대평가 체제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해 둔다. 정시가 더 낫다거나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격이 정반대인 두 체제를 지금처럼 한 학교, 한 학생 위에 동시에 얹어 두면, 둘이 서로를 보완하기는커녕 서로를 갉아먹는다는 것이 요점이다.
IB 성적은 정시 체제에서 호환되지 않아 고립되고, 정시를 향해 가는 학생에게 IB 인프라는 무의미하다. 도입을 주도한 교육감조차 '대학이 수능 최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전형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IB가 한국에서 작동하려면 기존 대입에 또 하나의 우회로를 따로 뚫어 달라고 청해야 한다는 뜻이다.상대평가 체제를 비판하며 들여온 IB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변별 그 자체가 목적인 입시경쟁에서 통로를 따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은 코미디에 가깝다.
이쯤에서 나올 수 있는 반론은 수능도 절대평가로 바꾸면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입시경쟁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무늬만 절대평가로 그칠 수밖에 없고, 이미 현재의 수능 영어 출제 실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IB는 상대평가 체제를 해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입시라는 사회경제적 제로셈 게임이 해체되어야 작동 가능한 교육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교육청이 위에서 정하는 '학습자 주도'라는 형용모순
이 두 모순은 교육청 단위 일괄 도입을 만나 증폭된다. 관내 모든 학생이 IB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학교, 일부 학생만 들어간다. 그러면 같은 지역 안에서 IB 학교와 일반 학교가 갈리고, IB 학교는 사실상 새로운 특목·명문의 자리를 차지한다.
평준화를 말해 온 교육청이 행정의 손으로 학교 사이에 새로운 서열을 만드는 것이다. IB 운영에 드는 인증·소규모 수업·기구 비용은 결국 다른 학교, 다른 학생의 몫에서 옮겨 온다. 혁신의 외형 아래,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만 진입하는 선별이 조용히 일어난다.
정작 포럼에 선 한 학부모는 'IB는 부모가 선택하지 말고 아이가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타당한 말이다. 그런데 교육청이 위에서 도입을 결정하는 방식은 그 선택의 주체를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아닌 행정에 둔다. '학습자 주도'를 내세우면서 도입은 가장 비주도적으로 하는 형용모순이다.
진짜 물어야 할 것
IB를 둘러싼 칭송에는 익숙한 패턴이 있다. 줄세우기 구조 자체는 건드리지 않은 채, 평가의 겉모습만 바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모양새를 내는 것이다.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변별의 압력이 사라질 것처럼 말하지만, 한국의 치열한 위치재 경쟁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IB 역시 서열화와 사교육의 길을 그대로 밟는다. 이미 IB 전문 학원과 컨설팅이 생겨나고 있다.
물어야 할 것은 'IB가 좋은 교육이냐'가 아니다. 좋은 교육 내용도 잘못된 구조 위에 놓이면 의도와 반대로 작동한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평가의 이름을 바꾸는 일에 매달리는 동안, 정작 줄세우기라는 신앙 자체는 누구도 공적 의제로 꺼내지 않고 있다는 것 — 바로 그 회피야말로 오래된 문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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