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익진 시인의 시집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
걷는사람
그런데요. 낙과여낙화(落果與洛花)는 비극적인 문장이기도 하지만, 일말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비바람에 떨어진 꽃과 열매가 거름이 되어 그다음 봄을 찬란하게 피워내듯, 희망만 잃지 않는다면, 삶의 추락 역시 내 후반부의 삶을 틔워내기 위한 (다소 아픈) 준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모습에서도 희망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스물넷에 추락해 이제 예순이 된 여자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 떨어지는 벚꽃을 바라봅니다. 비록 자신의 일부가 부서지고 상처를 입었을지라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여자는 그에게 묻습니다. '앉아도 되냐'고. 이렇듯 묻는 행위는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타자와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의 기표이기도 합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떨어지는 불가항력의 바다 위에서, 우리가 난파되지 않고 끝내 살아낼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배가 크고 넓거나 선체가 단단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외로움이 또 다른 외로움에게, 상처 입은 자가 상처 입은 자에게 기댈 줄 아는 그 연약한 의지와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의지와 용기는 우리에게 방향타가 되어, 목적지까지 묵묵히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 시인 이력 (출판사 제공)
- 정익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계간 《시와 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구멍의 크기』 『윗몸일으키기』 『낙타 코끼리 얼룩말』 『스캣』을 냈다.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
정익진 (지은이),
걷는사람,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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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보다 시읽기와, 시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9년 계간 『시인시각(현 시인동네)』 시 부문 신인상과 2019년 『불교문예』 문학평론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인류는 멸종을 예약했습니다』등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동네책방과 도서관에서 북토크로 독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메일 yhjoo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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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열매가 떨어져도 희망을 가지면, 삶은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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