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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억지로 먹인 고객사 남성, 문제제기한 하청업체 여직원이 당한 일

[평등하다는 착각] 원하청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피해자도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법개정 해야

등록 2026.06.29 15:12수정 2026.06.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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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은 하청업체에서 갑질이나 성희롱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다.
법은 하청업체에서 갑질이나 성희롱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다. 챗GPT

얼마 전, 한 성희롱 피해자와 노동 상담을 하게 되었다. 차분한 어조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목조목 말을 이어가던 이 분은 이내 목소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내용인즉슨 이러했다.

피해자는 여러 기업으로부터 업무를 용역 받아 사업을 운영하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그녀는 평소에 업무를 잘했기에 관리자들이 그녀에게 많이 의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어느 고객사의 직원들과 회식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회식 내내 고객사의 남성 직원이 그녀의 손을 만지고, 안주를 억지로 먹이고, 회식 자리가 끝났음에도 계속해서 손을 잡고 놔주지 않으며 ' 조금만 더 같이 놀자', '한 잔만 더 하자'는 성희롱 행위를 한 것이다. 그녀는 집에 가봐야 한다고 거절했으나 막무가내인 가해자 때문에 결국 동료 직원이 통화로 도움을 주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고객사 직원들은 그녀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외면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이 소속된 하청사에 원청 가해자의 성희롱 행위를 신고하였으나 하청사에서는 제대로 조치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 응당 이루어져야 할 조사와 가해자 징계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청사와 하청사 모두 가해자를 징계하겠다고 하면서 법적 대응을 만류했기에, 이를 믿고 기다린 결과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다른 고객사로의 전보 명령이었다.

왜 하청 피해자가 일하던 곳을 떠나야 하나

이처럼 같은 직장 내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원청 가해자와 하청 피해자 사이에는 버젓이 벌어진다. 자신의 직원을 보호해야 할 하청사조차 돈줄인 고객사 앞에서는 그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법적인 구멍도 존재한다. 현재 직장 내 성희롱을 규율하는 남녀고용평등법 14조의2는 고객에 의한 성희롱 예방에 대해 규정하고는 있지만, 원청 직원이 하청 직원에 대해 구조적 지위를 이용하여 성희롱 가해를 했을 때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하청사도 원청 직원의 성희롱에 대한 징계나 필요한 조치를 할 근거가 없고 오히려 하청 계약이 끊길 우려 때문에 쉬쉬하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한다. 이러한 제도적 구멍 속에서, 하청 노동자는 원청의 각종 괴롭힘과 성희롱에도 보호받지 못한다.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피해자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피해는 피해대로 당하면서도 믿었던 회사로부터 보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니 하청노동자의 고통은 이중 삼중으로 커지게 된다.


지난 3월, 여성의날을 맞아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젠더폭력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원청직원의 갑질이나 성희롱에 대해서는 가해자를 제대로 징계하거나 조치할만한 근거 규정이 없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젠더특위는 갑질과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를 열거하며 그중에서도 '원청에 직장 내 성희롱 사용자로서의 조치의무 부여 및 하청 노동자의 직장 내 성희롱 신고를 이유로 한 원청의 부당행위 금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는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면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의 근무지 변경이나 유급휴가 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투 운동의 가장 중요한 구호인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를 상기한다면 지금의 법에는 잘못한 가해자는 그대로 두고 피해자만 원래 일하던 곳을 벗어나게 하는 불합리함이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분리조치를 요구하면, 분리조치라는 미명아래 본인의 직무와 관계없는 직무로 발령이 되어 전문 경력이 단절되거나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금 적응해야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분리조치를 요구하기도 힘들고,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가해자와 같은 곳에서 일하기를 강요받는 처지에 이른다.

 2022년 5월 1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 행위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2022년 5월 1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회원들이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 행위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잘못은 가해자가 했는데 왜 피해자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까. 가해자가 대부분 피해자보다 높은 직급과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해자의 행위에 대해 사회의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모순적이다. 권력자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을 보이는 법의 태도는, 결국 원청이 하청노동자에 대해 갑중의 갑이 되어 권력을 휘둘러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배경이 된다.

올해 상반기에 국회와 정부는 직장내 성희롱 과태료 부과 대상에 법인의 대표자와 친족을 추가하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올해 11월 27일부터 해당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노동계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덕분이었다. 국회와 정부는 여기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원하청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피해자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원하청노동자는 사업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동하는 동료 노동자므로 원청직원이 하청노동자에게 성희롱이나 갑질행위를 했을 때 원청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부여되어야 한다.

또한 성희롱 행위가 확인된 경우 분리조치 시에는 피해자는 일하던 곳에서 그대로 근무하고 가해자에게 인사발령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물러서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법이 더는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등하다는착각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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