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 델 퍼시피코 마을 전경. 시에라 마드레 델 수르 산맥 정상부 서쪽 사면에 자리 잡은 마을.
이안수
함께 걷는 소망
아내는 동물적 특성의 반대로 식물적 특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다른 생물을 먹어야 하는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동물인 인간이 가진 이 번민은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식물의 특성에 자연스럽게 끌리게 했다.
객체의 관계에서도 경쟁과 개체 중심의 생존인 동물에 반해 느리지만 지속적이고 공존과 연결을 통한 생존을 택한 식물에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게 되었다. 아내는 서울에서도 산으로 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지난 몇 개월 오악사카의 편리한 도시에서 인간의 창조성이 만들어낸 예술,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 속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속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아내를 따라 숲을 함께 걷는 시간을 살아보고 싶었다. 오악사카 도시를 떠나야 했던 우리에게 산호세 델 퍼시피코는 발걸음을 멈출 적절한 마을로 여겨졌다.
아내는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나누어지기 위해 직장 생활로 나와 떨어져 생활하는 동안, 퇴근 후 북한산 둘레길을 홀로 걸어야 했다. 은퇴가 비로소 함께 걷는 시간을 허락했다.
우리는 두 그루 나무의 마음이 되어 안개와 숲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의 울창한 소나무 숲 트레일을 걸으면서 서울에서, 혹은 파주에 이룰 수 없었던 함께 걷는 묵은 소망을 뒤늦게 풀어볼 예정이다.
방문 너머 다른 세계
아침에 눈을 뜨고 방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내가 있는 곳을 의심했다.
"이곳이 저승인가?"
전날 오악사카에서 4시간을 달려 당도한 산호세 델 퍼시피코(San José del Pacífico)에 내렸을 때 산중의 뚝 떨어진 기온에 패딩 점퍼를 입고도 한기가 느껴졌다. 오후 3시에 불과했지만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공기는 앞사람이 샤워를 막 마치고 나간 욕실에 바로 들어선 것처럼 눅눅했다.
숙소 예약을 하지 않고 온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콜렉티보에서 막 내린 몇 가지 느낌으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경사진 골목길을 걸어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시에라 마드레 델 수르 산맥 정상부 서쪽 사면에 자리 잡은 마을은 평지가 없었다. 집들은 경사지에 사면 일부를 절개하고 겨우 집을 앉히거나 급경사지에 기둥을 세워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한두 칸 집을 올렸다.

▲마을에서 내려다본 시에라 마드레 델 수르 산맥의 숲 일출의 빛이 운무가 걷힌 계곡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이안수

▲산호세 델 퍼시피코의 일몰 후 능선의 실루엣. 해발 2,600미터의 산호세 델 퍼시피코에서 어둠이 다가오는 모습은 새벽이 오는 것 만큼이나 장엄하다.
이안수
동네의 맨 아랫집과 맨 윗집은 해발 차이가 300m 이상이었다. 걷다 보니 풍경이 달라졌다. 운무가 산의 모습을 계속 바꾸었다. 우기의 이 마을은 햇살에서 폭우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급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태평양에 가까운 다른 마을로 떠날까 싶었던 마음은 이 마을의 운무처럼 싹 걷혔다.
숙소를 수소문했다. 대부분은 나무판자로 지은 카바냐(cabaña, 오두막)라는 나무집에 방 하나와 샤워룸 하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염두에 두었던 호스텔을 찾아갔다. 문이 닫혔다. 운영을 중단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 보였다.
이 지역의 소박한 숙소들은 온라인 플랫폼에 올려져 있지 않은 곳이 많았다. 주민들에게 수소문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엘 수에뇨 아트라파도(El Sueño Atrapado)였다.
운무가 만들어낸 천상의 장면들
마당의 250년 된 라우리나 참나무(Quercus laurina)에서 산자락이 태평양에 닿아 있을 먼 산까지 운무와 산 능선의 레이어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계속 다른 천상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아내가 마을 초입에서 구입한 생두를 낡은 프라이팬에 볶았다. 막 내린 커피를 한 모금 입안에 머금자 화사한 아로마와 과일 같은 산미가 바로 뇌로 전달되었다.
주인 가브리엘(Gabriel Lopez Jose)이 물었다.
"그래 며칠이나 묵을 예정이오?"
이 마을에서의 시간은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른 것도 늦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세계로... 그의 물음에 당장 답을 찾기는 불가능했다.
"알 수 없어요. 당신이 나라면 현실이 아닌 이 풍경 앞에서 어떻게 답을 할 거요? 답이 나오면 내게 알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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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저승인가" 싶었는데... 눈 앞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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