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선거 신뢰, 감사원이 답해야 한다

[주장] 감사원, 선관위 회계 검사 착수...9월 정기국회 개원 이전에 결과 내놓는 게 관건

등록 2026.06.29 09:30수정 2026.06.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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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전경 부실 선거 논란에 휩싸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각급 선관위에 대한 회계 검사 착수에 나선 감사원 전경
▲감사원 전경 부실 선거 논란에 휩싸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각급 선관위에 대한 회계 검사 착수에 나선 감사원 전경 임병식

김호철 감사원장은 24일 선관위에 대한 회계 검사 착수 방침을 밝혔다. 필요한 자료 수집을 위해 감사관 30명을 투입했으며 이후 감사 범위와 감사 기간을 정해 7월 중 실지 감사에 나선다는 것이다. 비로소 감사원이 칼을 뽑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국가 최고 감사 기구인 감사원이 부실 선거 논란의 실체를 규명하고 선거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건 단순한 행정 실수를 넘어선다. 민주주의가 현장에서 멈춰 섰다는 경고음이다. 부실 선거 논란은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국회 국정조사, 검경 합동수사, 정당 TF까지 동원된 것은 그만큼 사안의 무게가 무겁다는 방증이다. 이들은 일정한 한계를 안고 있다. 수사권 없는 국정조사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에 불과하며, 또 수사기관은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기에는 취약하다. 자칫 "왜 구조적 문제점이 반복되는지"는 공백으로 남게 된다.

감사원 역할을 주목한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선관위에 대한 직무 감찰은 제한됐지만, 회계 검사만으로도 재정 운용과 조직 운영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다. 감사원 감사는 단순한 사건 규명을 넘어 반복되는 문제점을 밝힐 수 있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 실패와 대기표 회수조차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총체적인 시스템 붕괴를 살펴보기에 감사원만한 기관은 없다.

현재 선거 실무의 대부분을 행정안전부와 지방 행정조직이 수행한다. 반면 최종 책임과 통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맡는다. 책임과 집행이 분리된 구조는 책임 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들었다. 방만한 조직 운영도 묵과하기 어렵다. 선관위 사무총장은 업무의 95%를 전결해 왔다. 선관위 위원장은 '바지 사장', 상임위원장은 '들러리'라는 비아냥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노태악 전 위원장은 매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수당을 받았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4년 재임 기간 중 세 차례에 걸쳐 부부 동반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직원들도 앞다퉈 국외 출장길에 올랐다. 최근 5년 동안 461명이 107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데 24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출장지에는 몰디브와 코타키나발루 같은 대표적 휴양지도 포함됐다. 출장 목적과 예산 집행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됐다.

국정조사에서는 외유성 출장과 함께 도덕적 해이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국 단위 선거가 있을 때마다 휴직자는 급증했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치러진 2022년 3~6월까지 휴직자는 200명을 넘었다. 휴직자는 선거가 끝나면서 줄어들기 시작해 그해 12월 말 161명까지 감소했다. 초과근무수당도 비정상적으로 늘었다. 6.3지방선거 직전 2개월(4~5월) 동안 초과근무수당으로 50억 원이 지급됐다. 1인당 평균 92만 원이다. 전 직원이 주말과 공휴일을 빼고 매일 3시간 31분씩 야근한 셈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해외 연수와 초과근무를 반복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했다.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외부 감사와 내부 검증 시스템 부재, 폐쇄적인 조직 운영을 이유로 일각에서는 선관위를 '통제받지 않는 철밥통 조직'이라고 비판한다. 선관위 해체 목소리가 비등한 이유다. 독립성과 책임성은 동시에 작동하는 민주주의의 양축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독립성은 강화된 반면 책임성과 외부 검증 장치는 미흡한 구조다.


국제 민주주의 선거지원기관(IDEA)는 선거관리기구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선거관리기구가 독립기관이어야만 공정한 선거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국제적 기준과도 다르다. OECD 38개 국가 중 독립형은 우리를 포함해 16개국이다. 반면 행정부 소속은 미국 등 14개국, 혼합형은 일본 등 8개국이다. 이들 국가는 독립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책임과 감사 통제 아래서 신뢰를 확보하는 방식을 택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이미 선거관리업무 대부분을 행정에서 담당한다. 현실에 맞게 행정부형 모델을 포함한 다양한 제도 개편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는 선거관리 시스템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책임과 권한이 분리된 구조가 유지 가능한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구조의 진단이다. 그 진단을 시작할 수 있는 기관으로서 감사원의 책무는 중요하다. 정치권은 선관위 구조를 개편하거나, 감사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한다. 핵심은 "기관의 형태"가 아니라 "통제와 책임의 구조"다. 책임성과 외부 검증 장치가 미흡한 선관위를 어떤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할지 명확하다.


감사원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사실관계를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혹"을 "객관적 사실"로 입증할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만약 감사원이 선관위 문제점을 명확히 드러낸다면, 향후 제도 개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9월 정기국회 이전에 감사 결과를 도출하는 게 관건이다. 개헌이라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몫은 국회에 있다. 객관적 감사 결과가 뒷받침될 때 개헌 논의는 탄력을 받는다.

선관위에 대한 이번 감사는 특정 기관 하나를 겨냥한 감사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선거 시스템을 다시 세우는 첫 시험대다. 감사원이 이번에도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사실과 원칙 만으로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면 감사원 역시 존재 이유를 다시 증명하게 된다. 이제 국민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감사원의 칼끝이 어디를 향하는지보다 얼마나 정확하고 공정하게 겨누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감사 결과가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선관위 개혁도, 감사원 개혁도 동력을 얻기 어렵다. 반대로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감사는 선거제도 개혁의 출발점이 된다.

임병식 감사원 정책자문위원
#감사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부실선거 #회계검사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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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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