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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 1년차, 반도체 ETF 고점 매수했습니다

[주식하다 만난 라캉] 주식투자의 욕망

등록 2026.06.30 13:05수정 2026.07.0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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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거시경제 분석도, 종목 추천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주식시장에서 마주치는 욕망, 불안, 확신, 후회 같은 감정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시선으로 읽어보려는 기록이다.[기자말]

국내 반도체 ETF가 연일 신고가를 찍던 날, 뉴스는 "AI 슈퍼사이클"을 외쳤고 커뮤니티는 "지금 안 사면 후회한다"고 들끓었다. 나는 그 열기 속에서 매수 버튼을 눌렀다. 내 분석이 아니었다. 시장의 탐욕이 나를 움직였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말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나는 라캉이 됐다.


  SK하이닉스 주가가 250만원을 넘어선 6월 1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SK하이닉스 주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137.64p(1.58%) 오른 8,864.24으로 마감했다. SK하이닉스는 전장 대비 13만9천원(5.84%) 오른 252만1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2026.6.17)
SK하이닉스 주가가 250만원을 넘어선 6월 1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SK하이닉스 주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137.64p(1.58%) 오른 8,864.24으로 마감했다. SK하이닉스는 전장 대비 13만9천원(5.84%) 오른 252만1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2026.6.17) 연합뉴스

욕망의 문제: 나는 무엇을 보고 샀는가

주식 투자를 시작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실적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국내 반도체 ETF가 연일 오를 때, 나는 조용히 숫자를 들여다보는 대신 화면 속 빨간 숫자들이 만들어내는 열기에 빨려 들어갔다. 남들이 흥분할수록 나도 흥분했고, 남들이 "이건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할수록 나는 그 말이 내 판단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그 종목의 적정 매수가 알림을 설정해뒀다. 그런데 기다리지 못했다. 매일 신고가를 갱신하는 주가를 보자, 이러다 영영 못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주가가 갱신됐으니 목표가도 갱신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증권가 컨센서스가 '매수'라는데, 나도 지금이라도 매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마음의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라캉이 말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내가 원한 게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한다고 착각하는 것. 주식시장은 이 착각이 가장 날카롭게 작동하는 곳이다. 수백만 명의 욕망이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되고, 그 가격이 다시 욕망을 자극한다. 오르기 때문에 사고 싶어지고, 사고 싶어지기 때문에 오른다. 어느 순간 나의 '사고 싶다'와 시장의 '오르고 있다'는 구별이 불가능해진다.


나는 그렇게 고점 근처에서 욕망을 샀다. 진짜 문제는 그 고점을 지나봐야만 고점이었음을 안다는 것이지만.

과정의 문제: 원칙대로 팔았는데 왜 이렇게 아픈가


그러나 나에게도 브레이크는 있었다.

책에서 배운 대로 미리 정해둔 '트레일링스탑' 원칙이다. 고점 대비 일정 비율 하락 시 해당 종목의 절반을 매도하는 건데, 감정이 아니라 규칙을 기준으로 삼는 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 지킨다. 왜냐면 고점 대비 주가가 하락해도, 당장 손해 보고 팔기 싫고, 내가 산 매수가가 얼마인데 최소한 그 정도는 다시 오르겠지, 하는 본전심리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규칙대로 매도 버튼을 눌렀다. 대상은 바로 욕망의 고점에 산 반도체 ETF. 산 지 일주일도 안 돼 내가 고점에 산 걸 깨달았고,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결국 절반을 매도했고, 결과는 이성의 승리였을까?

아니, 결과는 손실이었다. 실제로 그 종목은 며칠 후 다시 상승세를 이어갔고, 내가 하락장에 판 매도가뿐 아니라 상승장에 산 평균단가를 웃돌았다. 결국 이익의 절반을 시장에 내놓은 셈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아주 나쁜 질문이 떠올랐다.

"이 원칙이 틀린 건 아닐까?"

포커 챔피언 출신의 의사결정 전문가 애니 듀크는 이것을 '리절팅(Resulting)'이라고 부른다. 결정의 질을 오직 눈앞의 결과로만 판단하는 뇌의 습관. 잘되면 훌륭한 결정, 안되면 틀린 결정이라는 착각.

그런데 생각해보면, 트레일링스탑은 처음부터 손실을 막으려는 도구가 아니었다. 더 큰 손실을 막으려는 도구였다. 과정은 맞았다. 원칙대로 실행했고, 감정을 배제했으며, 미리 정한 기준을 지켰다.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그 과정이 틀린 것은 아니다.

좋은 결과가 나쁜 과정을 정당화하지 못하듯, 나쁜 결과가 좋은 과정을 부정하지도 못한다.

두 함정이 만나는 곳: 실적 발표 날의 아이러니

그리고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이 있다. 시장은 오랫동안 말했다.

"실적을 보고 판단하자."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흔들릴 때마다 투자자들은 서로를 다독였다. 실적이 뒷받침되면 괜찮을 거라고, 어닝 시즌을 기다리자고. 그리고 6월 마이크론의 어닝 시즌이 왔다. 실적은 좋았다. 예상을 웃돌았다. 그런데 주가는 하루이틀의 호황을 만끽하다 또 이유도 모른 채 떨어졌다.
왜일까. 진짜, 또 왜?

"이제 실적이 피크 아니야?"

타자의 욕망이 다시 작동했다. 이번엔 방향이 반대였을 뿐이다. 실적이 좋으면 탐욕하고, 실적이 너무 좋으면 고점 걱정을 탐욕한다. 실적과 무관하게 심리가 가격을 움직인다. 우리는 '실적 보고 결정하자'고 말해 놓고, 실적이 나오자마자 다시 심리전으로 복귀했다.

결국 나는 또 7월 삼성전자 실적을 기다리고 있다. 실적이 좋으면 좋다고 난리, 나쁘면 나쁘다고 난리.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주식 투자 1년 차에 드는 솔직한 생각이다.

6월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의 일간 변동성은 5.30%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됐던 2008년 10월이 5.15%,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이 있었던 2020년 3월이 4.21%였다.

점심시간에 한 동료가 묻는다.

"그래서 하이닉스 팔아야 돼, 말아야 돼?"

그 동료는 한 달 전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하이닉스 지금이라도 사야 돼, 말아야 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도, 지금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라캉 #주식 #심리 #재테크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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