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크와 각종운동기구로 가득한 안심해변
진재중
"기자님, 사근진·순긋해변이 또 이상합니다. 나무들은 말라 죽어가고, 해변은 다시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분노가 함께 묻어났다.
몇 해 전 해안 침식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정부가 '국민안심해안'을 조성한다는 설명을 믿고 집과 상가를 떠났다. 인공 구조물을 줄이고 자연이 스스로 해안을 지키는 친환경 해변을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다시 찾은 6월 30일, 사근진·순긋해변은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렵게 심은 나무들은 잎이 말라가고 있었고, 곳곳에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 있었다.
국민안심해안의 시작… 기대와 현실의 간극
동해안의 푸른 바다를 마주한 이곳은 한때 해안 침식으로 집과 도로가 위협 받던 대표적인 침식 해안이었다. 너울성 파도와 이상파랑이 반복적으로 밀려오면서 위험등급 D등급 판정을 받았고 해마다 복구공사가 반복됐다. 잠제(수중방파제)를 설치했지만 해안침식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인공구조물이 또 다른 해안의 침식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방향을 바꿨다. 2020년 제3차 연안정비기본계획은 방파제와 호안 등 기존의 그레이 인프라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자연의 기능을 활용하는 그린 인프라 방식으로 전환됐다. 바다를 인위적으로 막기보다 육지에 완충 공간을 확보해 해안선이 자연스럽게 변하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연안 관리 정책이었다.
사근진·순긋해변은 전북 고창과 함께 이 정책이 처음 적용된 대표적인 시범지역이다. 해양수산부는 이곳을 '국민안심해변'으로 지정해 인공구조물을 최소화하고 친환경 해변공원으로 조성해 연안 재해를 줄이는 동시에 국민이 안전하게 찾을 수 있는 자연 친화형 해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해당 기사:
이제는 해안도 자연에 돌려줄 때, 이 해변의 변신 https://omn.kr/28oeq).

▲ 철거되기 전 사근진·순긋해변(2022.12)
진재중
자연을 품겠다더니 콘크리트가 먼저 보이는 해변
해안을 자연에 돌려주겠다며 시작한 국민안심해안 사업의 현장은 애초 취지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시들어가는 나무와 메마른 꽃밭, 활착하지 못한 조경수는 사후 관리의 한계를 드러냈다. 횟집과 민박이 있던 자리에는 체육시설과 놀이시설 등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자연 회복 공간보다는 공원화 된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무엇보다 자연친화형 해변을 표방했지만 곳곳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바다와 육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완충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인공 시설이 여전히 해변 경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해안을 만들겠다는 정책 목표와 실제 조성된 공간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느껴졌다.
모래사장을 바라보던 한 관광객은 한동안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백사장이 살아난 것은 정말 다행이지만, 시선을 돌리면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라며 "자연을 되살리겠다는 안심해안 사업이라면 자연이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인공시설이 더 많아 보인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이렇게 관리해서 과연 해변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라며 "언젠가 또다시 침식으로 해변이 망가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 고사하는 식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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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제시한 해법 '구조물이 아닌 자연'
해안 침식 전문가들은 가장 아쉬운 점으로 사구식물 조성을 꼽았다. 사구식물은 단순한 조경용 식물이 아니다. 갯그령과 통보리사초, 순비기나무 같은 염생식물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붙잡고 사구를 형성하며, 해안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돕는 중요한 생태 기반이다.
이규송 강원대학교 교수는 "파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려면 구조물보다 사구식물을 이용한 친환경 해안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라며 "서해 기지포해변처럼 사구식물을 활용하면 모래 이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면서도 경관까지 살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톨릭관동대 지리교육학과 최광희 교수는 국민안심해안 사업이 애초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인공구조물을 최소화하고 자연 기반의 완충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정책 방향과 달리, 사근진 해안은 오히려 각종 시설물과 구조물이 늘어나 이전의 토목 중심 연안정비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시대에는 해안이 스스로 복원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안사구와 염생식물을 복원하는 자연 기반 해안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사근진을 비롯한 강릉 동해안은 과거 해안 사구가 잘 발달했던 지역인 만큼, 사구 복원이 해안 침식 대응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콘크리트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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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된 삶의 자리, 채워진 것은 또 다른 구조물
지역 주민들의 아쉬움은 여전히 깊었다. 전찬길 사근진번영회장은 "집은 사라졌지만 이곳만큼은 사업 취지에 맞게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조성되기를 바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향을 잃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받아들였다. 대신 자연스러운 공원이 조성된다면 잃어버린 고향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해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다"라며 "하지만 현재 사업은 해안 환경을 오히려 훼손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기대했던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해변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횟집을 운영했던 한 상인은 더욱 씁쓸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안심해안을 만든다며 상가와 집은 모두 철거했는데, 정작 해변에는 예전보다 시멘트 구조물과 각종 시설물이 더 늘어난 것 같다"라며 "이럴 거였다면 왜 우리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는지 허탈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을 주민은 "국민안심해안 조성 사업이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사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의 불편만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 이후 차를 주차할 공간이 크게 부족해졌고, 집을 드나들 때마다 차와 보행자가 뒤엉켜 항상 사고 위험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라며 "주민들의 일상과 안전을 충분히 고려한 사업이었는지 의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 해변의 콘크리트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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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심해변', 행정의 엇박자가 만든 한계
주민들은 사업 추진 체계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양수산 부서가 연안 침식을 막기 위해 민박과 상가를 철거하며 완충 공간을 확보했지만, 이후 공원 조성은 녹지 담당 부서가 맡으면서 정책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전찬길 사근진번영회장은 "국민안심해안은 강릉시가 추진한 사업인 만큼 해양수산과와 녹지과가 각자의 업무만 구분할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해 사업의 본래 취지를 살리는 행정을 해야 한다"라며 "주민들이 체감하는 문제에 대해 부서별로 책임을 나누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업을 추진한 만큼 끝까지 공동의 책임을 갖고 관리하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강릉시의 설명은 사업 이후 관리 체계가 부서별로 나뉘어 있음을 보여줬다.
6월 30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강릉시 해양수산과 국민안심해안 담당자는 "해안 침식 관련 업무는 해양수산과에서 담당하지만, 공원 조성과 시설물 관리 등은 녹지과 소관"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향후 해당 해변의 침식 여부에 대해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한다"라며 사업 효과와 해안 변화는 장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구조물로 메워진 해변
진재중
"이런 사업이 아니었다"… 애초 취지 훼손 우려
국민안심해안 조성 사업을 담당했던 해양수산부 장유비 전 관계자는 현재 사업의 추진 방향이 애초 취지와 달라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런 모습을 만들려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한 뒤, "국민안심해안은 단순한 공원 조성사업이 아니라 주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지속적으로 자연을 복원하고 관리해 연안 침식을 줄이는 사업"이라며 "주민들에게는 고향의 기억을 되살리는 공간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해안가에 데크 등 인공 시설이 계속 유지되거나 확대되면 자연 기반 연안 복원이라는 사업의 본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라며 "사업의 중심이 연안 관리보다 공원 조성에 맞춰질 경우 국민안심해안이 추구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해안은 일반 공원과 달리 파도와 모래의 이동, 해안생태계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관리해야 하는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연안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국민안심해안의 본래 목적을 살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 안심해안을 기대했던 주민들(2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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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심해안, 이름에 걸맞은 미래를 위해
국민안심해안 사업은 준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사라져가는 사구식물과 해안 생태계를 복원하고, 시든 수목을 되살리며, 인공시설보다 자연이 먼저 살아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지속적인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안심해안'이라는 이름도 비로소 그 의미를 갖게 된다.
사근진·순긋해변이 대한민국 연안 관리의 모범사례로 기억될지, 또 하나의 토목사업으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 있다.
주민들이 처음부터 바랐던 것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었다. 해안 침식에서 안전하면서도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해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는 건강한 바다였다. 이제는 사업의 완공보다 본래의 취지를 되살리는 관리와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 안심해안 공원 조성 초창기(2024.5)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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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심해안' 어디로 갔나, 사근진·순긋해변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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