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강대규씨 추락 사고 현장 사진
강대규 님 유가족
15분, 법정에 서서야 고개 숙인 회사
효진씨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재판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책임을 묻는 건 아닐까. 이제 말할 수 없는데."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 회사 대표와 현장소장, 과장이 함께 걸어왔다. 합의서를 작성할 때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대표를 이제야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대표인 것 같다고 속삭이며, 효진씨는 한동안 그들을 바라봤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린 시간이 무색하게 재판은 순식간에 끝났다. 사측은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판사 앞에 서서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다른 근로자는 재해를 입지 않았으니 망인의 작업상 과실도 일부 있다"고 주장했다. 강대규씨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이를 고려해달라는 취지였다.
대표는 여기에 더해 "소규모 영세사업장이라 충분한 안전조치가 어려웠다는 점, 사고 이후 경영 상태가 악화된 점" 등을 들어 정상참작을 요구했다. 효진씨가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장면은 결국 현실이 됐다.
한 달 뒤인 12월, 선고 일정이 잡혔다. 검사는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 현장소장 징역 1년 6개월, 과장 금고 1년, 회사에는 벌금 2억 원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각각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 금고 4개월(집행유예 1년),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기본적인 안전을 지키지 않은 과실이 적지 않으나 잘못을 인정하고 유족과 합의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1년 반 동안의 기다림은 다 합쳐도 20분, 두 번의 재판으로 정리됐다.
합의는 책임지는 수단이지 책임을 지우는 수단이 아니다
회사 측은 재판에 넘겨지고 나서야 유가족에게 연락을 해왔다. 형사 처벌 가능성이 커지자 마음이 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효진씨는 감형을 위한 것 같아 합의 여부를 두고 망설였지만, 가족들과 논의 끝에 처벌불원서를 작성하는 조건으로 형사 합의를 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 합의를 회사 측에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
산업재해 유가족은 다양한 이유로 합의를 한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당장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법적 절차를 이어가더라도 충분한 처벌이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도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생각하며 체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중대재해 가해 기업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기도 한다. 합의 과정에서 처벌불원서 작성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이를 쓰지 않으면 합의는 어렵다는 식으로 유가족을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최소한의 처벌이나 손해배상이라도 받아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합의에 이르는 가족들도 있다.
상황과 조건은 모두 다르지만, 합의가 곧 용서는 아니다. 김용균재단이 만난 유가족 중 용서했기 때문에, 회사가 충분히 사과했기 때문에 합의를 하거나 처벌불원서를 써준 가족은 없었다. 효진씨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합의는 했지만 그것이 용서가 아니었다. 사고의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합의에 이른 맥락이나 유가족의 고민은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기록에는 그저 '회사가 피해 회복 노력을 다했다'는 공허한 사실만 남는다.
처벌불원서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재판에서는 주요한 양형 요소로 활용된다. 합의를 이유로 선처하는 관행은 과연 괜찮은 걸까.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묻는 양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의를 이유로 처벌이 가벼워진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조치에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벌금이나 합의금을 부담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사고 현장에서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만 원 남짓, 설치 기간은 하루 정도였다.
단 하루라도 안전에 투자했다면, 비용보다 생명을 우선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보다 합의 사실이 더 큰 양형 요소로 고려된다면,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배상금은 가해 기업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일 뿐, 안전조치 의무 위반의 책임까지 덜어주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합의는 책임을 지는 수단이지, 책임을 지우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합의가 이뤄지면 기업이 책임을 다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유가족에게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곤 한다. 유가족은 합의를 해도, 하지 않아도 그 진의를 의심받는다. '합의'라는 결과만 남을 뿐, 그 뒤에 있는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과 생존의 현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안전불감증? 민사에서 더 노골적인 책임전가
형사 재판이 끝난 이듬해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민사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회사 측은 피해자에게도 사고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폈다.
당시 현장에는 강대규씨와 나란히 작업하던 동료 노동자 2명도 있었지만, 회사 측은 강대규씨가 "스스로 위험한 위치에 올라갔다"며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형사 재판에서는 "망인에게도 일부 과실이 있다"고 했던 회사 측은 민사 재판에서는 망인의 과실이 50%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회사 측은 형사 재판에서 제출된 자료를 인용하며 강대규씨를 "안전불감증에 빠진 사람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진 속 강대규씨와 동료들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지붕 철골 위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해당 자료는 형사 재판에서는 현장의 안전관리가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제출됐다. 그러나 민사 재판에서는 오히려 강대규씨 개인의 안전의식이 부족했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재판에 임하는 회사 관계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형사 재판에서는 판사를 향해서라도 죄송하다고 사죄했는데, 민사 재판에서는 그마저도 없었다. 변호인을 제외한 관계자들은 모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효진씨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사망한 장덕준씨 사건을 떠올렸다. 장덕준씨의 유가족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당시, 회사 측은 "과도한 다이어트가 사망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과로사 책임을 부인했다.
책임을 묻기 위해 시작한 재판은 유가족에게 상처가 됐다. 장덕준씨의 유가족은 비슷한 과정을 먼저 겪으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느 정도 각오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재판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힘겨웠다고 효진씨는 말했다.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됐을 수도 있는데... 안전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도 노동자 탓을 하는 그런 적나라한 표현들이 정말 화나고 아팠어요."
사건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지난 2년 2개월은 유가족에게 긴 시간이었다. 효진씨는 "일상을 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바쁜 날들이 지나가면 아버지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재판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러나 효진씨는 그동안 여러 산업재해 유가족을 만났고,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됐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하며 다른 산업재해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앞서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 직접 찾아다닌 끝에 산업재해 전문가가 됐다. 산업재해조사표, 재해조사의견서를 공개하는 등 유가족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내고 있다.
효진씨는 아버지의 죽음이 개인의 부주의로만 평가되지 않기를, 한 사람의 죽음이 가볍게 다뤄지거나 헐값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늘 '먼저 싸운 유가족'과 '김용균재단'의 도움을 이야기했다. 인터뷰에서도 재단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꼭 전해 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아마도 같은 일을 겪게 될 누군가가 '산업재해'나 '중대재해', '건설현장 추락사'를 검색했을 때 자신의 인터뷰를 통해 도움받을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강대규씨의 사건은 한 가족만의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고, 그만큼의 가족들이 산업재해 유가족이 된다. 이들은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도 들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유가족 개인의 분투가 아니다. 누구도 홀로 싸우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고, 책임을 제대로 묻고,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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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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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2개월, 아버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던 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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