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기만 하던 코스를 달리면 전혀 새롭게 느껴진다.
이준수
"매일 계단을 타세요?"
"아, 요즘 달리기에 재미 붙여서 보강 운동 해야 돼서요."
"보강 운동 같은 것도 하시는구나."
나는 요새 출근길을 제외하고는 계단으로 아파트를 오르내리고 있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이웃을 만날 때가 있다. 나는 그냥 계단을 타는 것이 아니다. 저녁에는 분리수거 상자를 들고 오르내린다. 아마도 그 점이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조금이라도 무게 쳐서 운동 하려고요."
"네, 힘드시겠어요."
눈빛이 묘했다. 분리수거 상자를 들고 이십 층 이상을 오르내리는 주민이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계단 운동에 진심이 된 건, 순전히 달리기 때문이었다. 그냥 걸을 때는 몰랐는데 부상 없이 달리려면 강한 하체가 필요했다.
계단은 완벽한 하체운동이었다. 두꺼운 발목과 옹골찬 무릎, 탄탄한 허벅지와 든든한 엉덩이를 동시에 강화할 수 있었다. 무게를 더하면 운동 강도가 증가한다. 어떤 분은 배낭에 짐을 채워 계단을 오른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얻기 위해 분리수거 상자를 들었다. 어차피 집안일하는 김에 운동까지 해 버리는 것이다.
분리수거 하러 가는 나의 복장은 기능성 반소매 티셔츠와 바지 차림이다. 분리수거 종료와 동시에 운동을 할 수 있는 복장이다. 준비 운동 하는 장소는 놀이터. 밤 열 시는 더위가 가셔서 뛰기에 적합하다. 하절기에는 그늘 없는 곳에서 뛰기가 버겁다.
하루 운동 목표는 대략 40분 달리기다. 처음 10분은 느린 속도로 뛴다. 빠르게 걷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몸이 충분히 풀리면 서서히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마지막 5분은 다시 천천히 속도를 내린다. 최종 거리는 6~7km 내외가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땀이 뚝뚝 떨어진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호흡이 가쁘다. 그러나 표정은 더없이 밝다. 나는 분리수거 상자를 들고 다시 계단을 탄다.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샤워까지 마치면 딱 한 시간이 걸린다. 이로써 꽉 채운 '한 시간 운동 루틴'이 완성된다.
"어! 올라 가진다. 신기하다!"
이건 내가 실제로 대관령에 놀러 갔다가 무심코 뱉은 말이다. 늘 가던 익숙한 산. 예전의 나는 경사가 진 등산로를 걸으면 힘들었다. 중간에 물을 마시고 쉬어야만 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여전히 호흡은 가빴지만 조절 가능한 수준이었다. 심장도 예전보다 덜 야단스러웠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심폐지구력의 향상인가.'
나는 산 중턱에 난 평평한 길에서 살살 뛰어봤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경사에서는 걷고, 평평한 길에서는 뛰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홀로 소나무 숲 한가운데서 뛰고 있으니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 꼭 평지에서만 달릴 필요가 있나? 산에서 뛰어도 되겠는데?' 불현듯 스친 생각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독특한 달리기 대회 한 곳에 접수했다. 대관령의 어느 목장 둘레 12킬로미터를 달리는 '트레일 러닝' 대회였다. 지난해의 나였다면 말도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평지 뜀박질도 고생인데, 산에서 뛴다고? 그런데 올해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트레일 러닝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이라고는 하지만 '퇴근 후 달리기'의 코스 변경에 가까웠다. 동네 공원 오르막길을 추가했다. 평지만 뛰면 한계가 있다고 해서 언덕이라 생각하고 반복해서 뛰었다.
야밤의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뛰기 전에는 몰랐는데 동네 곳곳이 훈련장이었다. 차츰 오르막 달리기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진짜 완주해 버렸다. 부상 없이, 기록도 나쁘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들이 놀랐다. 그러나 가장 놀란 사람은 나였다.
"이게 되는구나. 신난다."
헬스장에 등록한 것도 아니고, 도장을 다니며 사범님께 수련을 받은 것도 아니다. 다만 일상 운동을 '산책'에서 '달리기'로 바꾸었을 뿐이었다. 운동에서 중강도의 자극은 상당히 중요했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심폐 자극이 달랐다. 식단을 조절하지 않아도 체중이 빠졌다. 대회에 참가하며 얻은 성취감은 덤이었다.

▲ 불과 일 년 전까지 산에서 헉헉대던 몸이었지만, 달리기 연습 후 대회 완주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준수
바쁜 하루 속에서도 내 몸을 포기하지 않는 것
"9월에는 울진 금강송 마라톤 가족 부문에 출전하는 거야!"
"완주하면 맛있는 거 사줄 거야?"
"당연하지."
달리기는 어느덧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운동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두 아이들은 처음에 손사래 치다가 어느덧 완주 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아직은 5km 대회만 나가고 있지만, 내년에는 10km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달리기 대회가 축제 같은 분위기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해서 내 삶의 나머지 요소가 극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침은 정신없고, 퇴근 후 집안일은 끝이 없으며, 아이들은 잠들기 직전까지 이것저것을 요구한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바쁜 하루 속에서도 내 몸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게 있어 마흔의 운동은 젊을 때처럼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래 일하고, 오래 사랑하고, 오래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한 최소한의 체력을 쌓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능하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하고, 시간이 허락하면 운동화를 신는다. 거창한 결심은 오래가지 못해도, 생활 속에 끼워 넣은 작은 운동은 오래갈 테니까.

▲ 네 가족이 함께 참여해 획득한 완주 메달. 같이 땀 흘려 얻은 메달은 특별한 추억이 된다.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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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글쓰기와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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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아빠의 '이유 있는' 분리수거 복장, 효과가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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