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수원 전 해태타이거즈 선수는 1980년 선동열 전 감독의 아버지 때문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밝혔다.
유튜브 '전설의타이거즈' 갈무리
해당 영상에 따르면 해태타이거즈 원년 멤버이자 프로야구 최초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인 방수원 전 선수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지옥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실종된 지인의 가족을 대신해 직접 시체를 찾으러 다녀야만 했습니다.
방 전 선수는 "친구 어머니가 (이상윤이) 서울에서 못 내려오는 상황에서 아들(이상윤 동생)이 3일간 연락이 안 된다고 해 금남로에 있는 유도 체육관으로 시체를 찾으러 갔다"라며 "신원이 확인된 시체는 태극기로 묶어 놨고,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시체는 가마니로 덮어놨었다"라고 당시의 끔찍한 참상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충격적인 경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도청 상황이 악화되자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들은 동료인 선동열 전 감독의 집으로 피신해 연습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선 전 감독의 아버지는 "군인들을 보면 무조건 모르는 척하고 머리를 숙이고 다녀라"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방 전 선수는 대문 밖에서 야구부 동료와 대화를 나누던 한 일반인 친구가 지나가는 계엄군을 향해 무심코 욕설을 내뱉었다가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증언했습니다. 그는 "순찰을 돌던 군인들이 '야구복 입은 놈 찾아라, 죽여버려라'라며 들이닥쳤다"면서 "평상에 앉아 딸기를 먹고 있던 친구의 가슴을 군인이 대검으로 푹 찌르는 것을 직접 봤다"고 회고했습니다.
이어 "눈앞에서 대검에 찔리는 것을 보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라며 "나중에 깨어나 보니 선동열의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막 빌어서 겨우 목숨을 건졌고, 선동열 아버지 덕분에 아마 내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참담했던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광주일고 운동장 점령한 계엄군… 청룡기 출전 좌절돼

▲ 차동철 전 해태타이거즈 선수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 광주일고는 계엄군 본부로 사용됐다
유튜브 '전설의타이거즈' 갈무리
이번 '탱크데이' 조롱 발언이 나온 무대는 청룡기 대회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일고 야구부는 5.18 민주화운동과 계엄군의 진압으로 인해 바로 그 청룡기 대회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투수 출신인 차동철 전 건국대 감독은 당시 광주일고가 계엄군에게 점령당했던 사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부산에서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이 마주한 것은 학교 운동장을 가득 메운 계엄군의 텐트였습니다.
차 전 감독은 "청룡기 대회를 나가려고 관사에서 합숙을 하고 있는데 밤에 계엄군이 총을 들고 들어와서 우리 모두 손을 들고 있어야 했다"라며 "운동장에 나가봤더니 일렬로 군인들의 텐트가 쳐져 있었고 계엄군 본부가 광주일고 운동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가 군부대가 되면서 야구부의 일상은 철저히 통제됐습니다. 차 전 감독은 "총소리가 크게 났고 총알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니까 감독님이 4시 반이면 전부 숙소로 대피시켰다"면서 "불안한 마음에 서울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면 도청기가 달려 있어 '전화 끊으세요'라는 말이 들려왔다"라고 당시의 서슬 퍼런 공포를 전했습니다.
당시 광주일고 운동장에 주둔했던 계엄군은 21~22살의 앳된 청년들이었습니다. 차 전 감독은 "그 군인들도 우리에게 '자기도 이유 없이 여기를 왔다'고 말하더라"며 군인들이 주는 해태제과 과자를 얻어먹기도 했던 기이하고 비극적인 시대상을 전했습니다. 결국 광주일고를 비롯한 광주 지역 고교 야구팀들은 그해 청룡기 대회에 나가지 못했고, 광주의 학생들은 야구라는 꿈 대신 총칼의 공포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탱크데이' 조롱에 담긴 무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 차동철 전 해태타이거즈 선수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 광주일고는 5.18민주화운동의 여파로 그해 청룡기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유튜브 '전설의타이거즈' 갈무리
최근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던진 "탱크데이"라는 말은 단순한 야구장 내의 도발이나 야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40여 년 전, 야구 방망이 대신 가마니로 덮인 시체를 마주해야 했고, 눈앞에서 끔찍한 폭력을 목격해야만 했던 광주일고 선배들의 피눈물을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더욱 뼈아픈 것은 이 조롱이 벌어진 무대가 1980년 당시 광주일고 선수들이 군홧발에 짓밟혀 출전하지 못했던 바로 그 청룡기 대회라는 점입니다. 배재고 측은 서둘러 인공지능이 쓴 듯한 사과문을 올렸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감수성 교육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피하기 위한 면피성 대처가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서울에서 자란 10대 학생들이 광주의 비극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지가 타인의 깊은 상처를 헤집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스코어보드에는 7-2 배재고의 승리가 기록됐지만, 인성과 역사 인식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콜드패를 당했습니다.
상대방을 무시한 조롱이 난무한 경기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여전히 우리의 역사가 아픔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셈입니다. 단순한 징계를 넘어, 그들이 던진 말이 상대에게 얼마나 거대하고 참혹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뼈저리게 깨닫는 진짜 교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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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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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군홧발에 포기했던 청룡기... 배재고가 조롱한 광주일고의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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