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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가족들이 일본 편의점을 털 때 내가 고민한 것

[오키나와 가족 여행기①] 국제면허증 안 챙기고, 지갑은 분실... 모든 게 최악이었지만

등록 2026.07.08 09:55수정 2026.07.0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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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족은 이른 여름여행으로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오키나와는 수호동물인 '시사'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해태를 떠올리면 된다. 시사는 사자를 닮았다.
우리 가족은 이른 여름여행으로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오키나와는 수호동물인 '시사'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해태를 떠올리면 된다. 시사는 사자를 닮았다. 김대홍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어떤 것들은 '내가 그 일을 했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다시 하라고 하면 어떤 것들은 몸서리부터 치게 된다. 이번 여행이 그랬다.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가족여행이었다.

지난해 한 지인이 같이 외국에 나가자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오랜 소원이라 했다. 먼 곳은 부담스럽고 '일본이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마침 우리집 첫째가 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 '오키나와' 노래를 불렀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오키나와로 정했다. 오키나와는 남북이 뱀처럼 긴 섬이다. 길이가 130km다. 고구마처럼 생긴 제주도와 달리 샛길이란 게 없다. '쭉' 올라갔다가 '쭉' 내려와야 한다. 유명한 관광지는 남쪽 아니면 북쪽. 그래서 숙소를 정할 때 고려사항이 많다.

날짜는 항상 그랬듯이 아내가 정했다. 6월 초. 기간은 3박4일. 헌데 동행인이 바뀌었다. 일본에 가자고 한 지인 대신 오랜 친구인 '서영'(가명)이 함께 했다. 어른 3에 아이 2. 인원이 애매했다. 다섯 명은 방 하나로는 부족하고, 택시를 타도 한 대는 '빡빡'했다. 교통수단은 렌트카, 숙소는 첫날, 둘째 날은 북쪽에, 마지막 날은 공항 근처이자 최대 도시 나하가 있는 남쪽으로 정했다.

드디어 출발일. 떠나기 전엔 그 날이 언제 오나 싶은데 막상 당일이 되면 시간은 참 빠르다고 느낀다. 인천공항 단기주차장에 진입하지 못해 한 바퀴 돈 건 가벼운 해프닝이었다. 다들 기분이 좋았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었다.

돌발 상황에도 "괜찮다"는 일행들

오키나와 나하 공항 도착. 일단 유심을 갈아 끼워야 했다. 이런. 유심을 꺼낼 핀이 안 보였다. 가방을 탈탈 털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때마침 서영은 '이심E-sim 불가 기종'이라는 안내문을 받았다. 인터넷 없이 여행한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공항 내 유심 가게에서 사기로 했다. 생각보다 비싸 눈물이 '찔끔' 났다.


이때 일본어 능통자인 서영이 순발력을 발휘했다. 혹시 옷핀이 없는지 가게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이 웃으며 옷핀을 꺼냈다. 그걸로 유심칩 교체 성공. 이건 역시 작은 사건이었다. 렌트카를 타려면 길을 건너야 했다. 건널목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맸다. 이것 역시도 앞으로 닥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초1, 초2인 아이 둘은 노느라 바빴고, 아내와 서영도 표정이 밝았다. 이 정도 돌발상황에 굴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첫 번째 대형 사건은 렌트카 사무실에 도착하고서 터졌다.


"국제운전면허증은요?"

헉. 그걸 놓치다니. 한 달 넘게 여행계획을 짰는데,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 국제운전면허증은 경찰서나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따로 발급해야 한다. 과거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몇 차례 외국에서 운전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운전면허증은 영문 운전면허증을 뒷면에 인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요즘 나오는 영문 겸용 운전면허증만으로도 별도 발급 없이 대략 69개국에서 운전이 가능하다.

아마 이 정보가 판단에 혼선을 주면서 국제운전면허증에 대한 생각을 싹 지워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일본은 영문 운전면허증 대상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반드시 경찰서나 운전면허시험장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오키나와는 남북으로 긴 섬이다. 렌트카는 필수다. 렌트카 없이 여행한다는 건 애초에 계획에 없었다. 그 필수사항이 여행 시작부터 어긋났다.
오키나와는 남북으로 긴 섬이다. 렌트카는 필수다. 렌트카 없이 여행한다는 건 애초에 계획에 없었다. 그 필수사항이 여행 시작부터 어긋났다. 김대홍

현지에서 대처가 가능한 방법을 찾았지만 없었다. 여기서 선택지는 두 가지.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렌트카 없이 여행하는 것. 아이 둘을 낀 상태로 다섯 식구가 대중교통만으로 오키나와를 여행한다는 건 애초 선택지에 없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오키나와는 렌트카가 필수인 지역이었다. '털썩' 보통 이런 상황이면 이런 장면이 펼쳐진다.

"그러게, 제대로 안 알아보고 뭘 했어."
"너는 뭘 했는데."
"이제 어떡할 거야."

서로 책임 추궁하며 낯을 붉힌다. 원망과 원망이 쌓이고 여기저기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사라지고, 공기는 '확' 무거워진다.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표정은 그대로다. 아이들은 '생글생글한' 표정이다. 아내와 서영은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뭐가 괜찮다는 거지?'

렌트카 사무실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모노레일을 타면 시내 중심지까지 15분 거리다. 어떤 상황에서든 잘 맞춰주는 서영이 아이디어를 낸다. "짐 보관하는 곳이 있을 거예요. 일단 거기에 짐을 맡겨요." 해결 지향인 아내가 말을 보탠다. "우리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지 알아 보자구요." 서영이 말을 받는다. "아까 이동하면서 버스 타는 곳 본 것 같아요. 가서 확인해봐요."

다시 또 머리가 아득해졌다

 우리는 예기치 않게 모노레일을 타게 됐다. 아이들은 이 새로운 체험을 즐겼다.
우리는 예기치 않게 모노레일을 타게 됐다. 아이들은 이 새로운 체험을 즐겼다. 김대홍
해결 지향인 두 여인 덕에 상황은 조금씩 정리가 됐다. 6시 또는 7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숙소까지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내린 곳은 나하시 중심가인 '고쿠사이도리', 우리말로 '국제거리'다.

일본이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벌이다 막바지에 이르면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한다. 그때 폭격을 받아 오키나와 전역이 폐허가 됐다. '국제거리' 또한 마찬가지. 오키나와는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했고, '국제거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1.6km(1마일)에 걸친 이 거리는 오키나와 번영의 상징이었고, '기적의 1마일'이란 별명을 얻었다.

기념품 가게, 맛집, 재래시장 등이 밀집한 '국제거리'는 오키나와 방문 필수코스다. 상황을 결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버스 여행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살짝 기대됐다. 두리번거리다 가장 '허름해' 보이는 가게 문을 열었다. 오키나와 소바를 파는 가게였다.

 고쿠사이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거리에 들어가서 오키나와 전통음식을 먹었다.
고쿠사이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거리에 들어가서 오키나와 전통음식을 먹었다. 김대홍

오키나와는 소바가 유명하다. 어딜 가나 소바 가게다. 오키나와 소바, 타코라이스, 짱푸루(찬푸루), 지마미 두부를 골고루 시켰다. 짱푸루는 '마구 섞다'라는 뜻의 오키나와 방언이다. 토마토, 치즈, 오이, 고야(여주, 오키나와 대표 채소)를 곁들인 음식이 나왔다. 지마미 두부는 콩이 아닌 간 땅콩과 고구마 전분을 섞은 음식이다. 맛있게 달았다.

점심을 먹고 '블루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역시 오키나와 필수 디저트 코스다. 제1마키시 공설시장과 헤이와도리상점가(평화거리)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버스 시간이 다가왔다. 공항으로 이동했다. 버스는 좋았다. 일본어를 잘하는 서영은 일본 문화도 꽤 잘 알았다.

"저기 뒤를 보세요. 화장실이 있어요."

정말이었다. 일본 고속버스엔 화장실이 있었다. 아이들은 "나중에 화장실 가야지" 하면서 '킥킥' 거렸다. 첫째는 이모(서영을 아이들은 이모라 불렀다) 옆에 자리를 잡았고, 둘째는 내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두 번째 대형 사건이 기다렸다.

버스는 거의 밤 9시가 다 됐을 무렵 도착했다. 주위가 컴컴했다. 가로등 하나 없었다. 버려진 기분이었다. 이런 곳이 정류소라는 게 믿기질 않았다. 버스는 '쌩' 시원하게 떠났다. 왼쪽 호주머니가 허전했다. 지갑이 떨어진 걸 알게 됐다. 머리가 다시 아득해졌다.

거의 모든 돈은 여행용 카드에 넣어놨다. 일본에서는 대부분 카드 사용이 가능해서였다. 현금으로 뽑은 건 3만엔, 우리 돈 30만 원 정도였다. 30만 원으로 3박4일을 보내야 했다. 10만 원은 돌아갈 때 고속버스비로 써야 했으니 실제 가능한 돈은 20만 원이었다. 이걸로 5명이 3박 4일을 보내는 게 가능할까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지갑엔 각종 신분증에 카드 등 필요한 모든 게 다 들어있었다. 당장 은행에 접속해서 카드부터 정지시켜야 하나. 한국에 돌아가면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받는 상상을 하니 골치가 아팠다.

아이들은 '배고파, 배고파'를 외쳤고, 저 멀리 외롭게 반짝이는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다들 먹을 것 사느라 바빴다. 어느덧 바구니에 먹을 것이 가득 담겼다. 나라도 줄여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다. 5백엔짜리 도시락 하나와 맥주 3개를 담았다.

숙소 문이 안 열린다

 저녁 9시를 넘긴 시각, 편의점에서 장을 본 일행들. 지갑 분실 사건을 아무도 몰랐고, 갖은 고생을 했지만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만으로 다들 즐거워했다.
저녁 9시를 넘긴 시각, 편의점에서 장을 본 일행들. 지갑 분실 사건을 아무도 몰랐고, 갖은 고생을 했지만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만으로 다들 즐거워했다. 김대홍

숙소는 산 중턱이었다. 주위는 깜깜했고,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줄 택시가 나타났다. 주소를 보여주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불안했다. 택시 기사는 그 동네를 열 번쯤 돌았다. 유턴을 하고 다시 유턴을 하고. 또다시 유턴. 그리고 갸우뚱. 주소를 다시 들여다봤다. 휴대폰 내비게이션에 자동차 내비게이션까지 3대가 돌아갔지만 택시기사는 좀처럼 목적지를 찾지 못했다.

거의 30분 만에 목적지에 닿았다. 이튿날 도보로도 10분이 안 걸리는 거리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허무했는지. 택시기사가 헤맨 것도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보다 큰 문제가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는 해외에서 '에어비앤비'를 하는 게 처음이었다. 주인이 말한 대로 열쇠박스에서 번호를 맞춰서 문을 여는 시도를 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 주인과는 그 전까지 이메일로 소통했다. 이메일로 소통하려니 빠른 대응이 어려웠다. 주인이 보내는 일본어를 번역해서 다시 메일로 보냈다. 주인은 '문제없다' '그곳이 맞다' '다시 맞춰봐라'며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주소가 맞았고, 집도 맞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첫째는 핸드폰 손전등을 열어 아빠 옆에서 불을 비췄다. 도와준다면서. 그 와중에 둘째는 울기 시작했다. "아빠, 우리 집에 가자. 나 집에 가고 싶어." 서영이 살며시 나타나 둘째 손을 잡고 사라졌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어렵게 숙소에 도달했지만 1시간 넘게 문을 열지 못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어렵게 숙소에 도달했지만 1시간 넘게 문을 열지 못했다. 김대홍

시간은 계속 흘렀다. 어느덧 집에 도착한 지 1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돈도 없고, 차도 없다. 진퇴양난이었다. 어두운 가운데 옆에 또다른 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곳에도 열쇠박스가 보였다. 혹시 이곳?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니 또다른 집이 보였다. 결국 다섯 번째 집에서 열쇠박스가 열렸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엔 각기 다른 건물이 세 채였고, 모두 다섯 개 방이 존재했다.

마침내 숙소 입성. 시간은 어느덧 밤 11시를 넘긴 상태였다. 다다미를 깐 방은 좋았다. 아이들은 '와와' 거리며 뛰어다녔다. 아내와 서영도 "집이 좋다"면서 웃었다. 나도 집이 마음에 들었다.

도대체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일일이 세기도 힘들었다. 한 가지만 터져도 대처하기 힘든 사건이 연달아서 몇 건이나 터졌다. 그 상태에서도 불구하고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고, 다들 웃고 있다. 모든 게 최악이었던 하루, 즐거운 우리가 미친 걸까.
#오키나와 #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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