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오키나와 수족관에서 고래상어를 마주한 아이의 질문

[오키나와 가족 여행기②] 이번 여행 키워드는 '일본인들의 친절'

등록 2026.07.11 11:03수정 2026.07.11 11:03
0
원고료로 응원
 유심칩 문제가 생기고, 렌트카를 빌리지 못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택시는 제자리에서 30분을 헤맸고, 문을 열지 못해 1시간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일행들은 웃는다.
유심칩 문제가 생기고, 렌트카를 빌리지 못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택시는 제자리에서 30분을 헤맸고, 문을 열지 못해 1시간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일행들은 웃는다. 김대홍

날이 밝았다. 상황이 달라진 건 없다. 지갑은 사라졌고, 수중에 남은 돈은 일본 돈 2만 5천엔, 우리돈 25만 원에 불과하다. 돌아갈 차비를 생각하면 남은 3일 동안 쓸 수 있는 돈은 15만 원 정도다. 이 돈으로는 이 숙소에 머물면서 밥만 간신히 해결해야 할 수준이다. 렌트카가 없으니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어렵다.

암담한 상황이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이왕 이리 된 거 이번엔 이런 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 내 한국카드는 일본인들이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신분증은 한국에 돌아가서 차근차근 재발급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다행히 지갑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한 편으론 들었다.


무엇보다 함께 간 일행들이 보여주는 밝은 태도가 가장 컸다. 아이들은 해외에 온 것만으로도 신나 보였고, 아내는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서영(가명)은 다 같이 해외에 왔다는 걸로 즐거워했다. 그런 기운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내가 봐둔 식당이 있다면서 오전 식사 장소를 제안했다.

숙소에서 1분 거리였다. 주인할머니가 무척 친절했다. 일본 드라마에서 볼 법한 '호호' 할머니였다. 웃는 인상과 친절한 태도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전날 타고 온 고속버스 회사 번호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혹시 전화를 걸어서 지갑 유무를 확인해줄 수 있겠느냐고. 이 대화는 일본어 능통자인 서영이 맡았다. 주인할머니는 '하이' 하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아쉬운 표정을 잔뜩 지은 할머니가 '스미마셍'(미안해요)이라면서 나타났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지갑은 없었다면서 찾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단다. 우리는 밥을 먹었다. 일본 가정식이 나왔다. 오키나와 대표 음식인 고야(여주)로 만든 나물이 눈길을 끌었다. 닭고기 구이는 너무 부드러웠다. '살살 녹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오이시'(맛있다)라면서 엄지를 세웠다.

 숙소 근처에서 먹은 일본 가정식. 식당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고, 친절했다. 지갑 분실 문제를 이야기하자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주는 등 열심히 도와주셨다.
숙소 근처에서 먹은 일본 가정식. 식당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고, 친절했다. 지갑 분실 문제를 이야기하자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주는 등 열심히 도와주셨다. 김대홍

밥을 먹고 다 같이 도보 10분 거리 해안가인 '고릴라촙'에 갔다. 스노클링 명소로, 내가 숙소를 여기에 잡은 이유였다. 이미 전신 수영복에 산소통이나 스노클링 장비를 멘 이들이 많았다. 여기 해안은 바로 코 앞에서 산호와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신났고, 나 또한 신났다. 서영은 저 멀리서 우리들 사진을 찍었다.

play

고릴라촙 물고기들 고릴라촙은 배를 타고 나가지 않고 해변가에서 산호와 물고기를 볼 수 있다. 일본 내 스노클링 명소로 꼽힌다. ⓒ 김대홍


오후 일정은 '추라우미수족관'이었다. 2005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수족관이었던 곳이다. 살아있는 어류 중 가장 거대한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숙소에서 가까웠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할인티켓을 팔았다.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티켓을 살 생각이었다. 그때 아내가 이메일을 확인해 보라 말했다. 알 수 없는 수신자와 함께 경찰서 연락처,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왜 경찰서 연락처와 사진이 있는 거지?


일본경찰서를 체험하다

모두가 한참을 머리를 맞댄 결과, 오전에 밥을 먹은 식당 주인 할머니가 '이곳에 가보라'면서 사진을 보낸 게 아닐까란 결론을 내놨다. 주인할머니에게 혹시나 하면서 내 이메일을 남겼기 때문이다.


추라우미수족관 티켓을 파는 식당에 이 이메일을 보여주며 무슨 뜻이냐고 해석을 부탁했다. 물론 통역은 서영이 맡았다. 이메일을 들여다보던 식당 주인이 깜짝 놀라며 본인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손짓했다. 그 차가 도착한 곳은 '모토부경찰서'였다. 세상에 일본에 와서 경찰서 체험을 할 줄이야.

 우리는 일본에 와서 예기치 않게 경찰서 체험을 했다. 사진은 일본 모토부경찰서.
우리는 일본에 와서 예기치 않게 경찰서 체험을 했다. 사진은 일본 모토부경찰서. 김대홍

경찰서 민원실까지 따라 들어간 식당 주인은 경찰관을 붙들고 한참을 설명했다. 한국에서 보통 이런 경우에 그 다음 상황은 "알겠으니 연락처 놔두고 가세요. 찾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이다. 예상과는 달리 경찰관이 바로 전화기를 들고 한참 동안 통화를 했다. 직후 경찰관이 식당 주인에게 말하고, 식당 주인이 서영과 대화를 하는, 3중통역을 거쳐 나에게 내용이 전달됐다.

"버스회사 종점에 지갑이 있대요. 20분 후면 사무실 문을 닫는다니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된다네요. 식당 주인이 지금 택시를 불렀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의 키워드는 '일본인들의 친절'이 아닐까. 오전 식당 할머니의 친절, 추라우미수족관 티켓을 파는 식당 주인의 친절, 경찰관의 친절. 계속된 친절이 우리 여행을 새롭게 만들었다.

버스 종점에 이르자 사무실 직원이 웃으며 지갑을 내밀었다. 수족관이 문닫기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택시는 부지런히 달렸고, 폐장 1시간 10분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제 지갑을 찾았으니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티켓을 끊고 수족관을 구경했다. 15m쯤 되는 고래상어가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풍경을 보면서 첫째가 질문을 던졌다.

"아빠, 저 고래를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걸까."

 오카나와에서 가장 유명한 추라우미수족관. 바다에서 가장 큰 어류인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카나와에서 가장 유명한 추라우미수족관. 바다에서 가장 큰 어류인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대홍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러게. 저 거대한 생물을 붙잡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붙잡았다 해도 이동하는 게 또 문제였다. 고래상어가 들어갈 수조라면 특수제조해야 했을 테고, 그 수조를 이동할 차 또한 따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동안 고래상어가 몸부림 치지 않아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했다. 어른 셋이 머리를 굴렸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수조가 아무리 크다 한들,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상어에겐 너무나 작은 공간이었다. 고래상어는 답답해야 마땅했지만 헤엄치는 모습은 참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때 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첫째를 붙잡았다.

"아주 어린 새끼 때, 새끼를 데려오는 거야. 그리고 이 수조에서 키우는 거지. 새끼니까 큰 수조와 차가 필요없어. 거의 태어날 때부터 여기 수조가 집이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거야. 어때? 아빠의 가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AI 검색을 통해 확인해보니 추라우미수족관의 고래상어는 바다에 설치된 대형 가두리(어망)를 이용했다. 이 가두리 그대로 선박으로 끌면서 해안까지 이동했다. 스트레스에 워낙 취약해 트럭이나 비행기는 불가능해 전용 해상 수송망을 이용했다. 해안에선 크레인을 이용해 고래상어를 거대한 탱크에 옮겨 담거나 수족관 대형 파이프와 해상 수로를 직접 연결해 수족관까지 옮겼다.)

너무나 매끄러웠던 하루였으나 또...

오늘 하루는 대성공이었다. 식당에서 먹은 밥은 모두 맛있었고, 일본인들의 친절을 잔뜩 받은 날이었다. 바닷가 수영은 즐거웠고, 고래상어를 만난 추라우미 수족관도 대만족이었다. 게다가 지갑을 찾았다. 이제 돈이 두둑하다.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다 같이 둘러앉아 추라우미수족관 기념품 가게에서 산 물건들을 꺼내서 확인했다.

그때였다. 아내와 서영이 웅성거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와 서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못본 기념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둘째가 범인이었다.

"내가 넣었어."

그 물건은 계산이 안 된 상태였다. 어쩐지 너무 순탄하다 싶었다. 긴장 풀지 말라는 계시였을까. 하루가 지나면 우리는 다 같이 버스를 타고 공항 근처 숙소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계산이 안 된 기념품을 해결하고 가야 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내일 제일 먼저 할 일이 생겼어. 다같이 추라우미 수족관 기념품 가게에 갈 거야. 계산 안 한 물건을 돌려주고 사과를 하러 가야 해."

이튿날 나는 둘째 손을 잡고 매장을 찾아갔다. 할머니 점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잠깐 놀란 눈치더니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무사히 사과를 마친 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공항 근처의 두 번째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선 애들을 환영한다면서 '캔디의 방'으로 안내했다. 아이들은 한 움큼씩 쥘 수 있는 만큼 캔디를 갖고 나올 수 있다. 캔디 뭉치를 볼 때마다 숙소 직원이 한 마디 했다.

"더 집을 수 있겠는데요. 한 번 더 갖다 오세요."

 우리는 뜻하지 않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일본 오키나와를 여행했다. 버스, 택시, 모노레일을 탔다. 기다리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지만 일행들은 잘 적응했다. 이런 여행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색다른 체험이었다.
우리는 뜻하지 않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일본 오키나와를 여행했다. 버스, 택시, 모노레일을 탔다. 기다리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지만 일행들은 잘 적응했다. 이런 여행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색다른 체험이었다. 김대홍

그 말을 듣고 둘째는 두 번을 더 다녀왔다. 숙소는 아이들 그림으로 가득했다. 예쁜 곳이었다.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건 12층 라운지 이벤트였다. 술과 토속주 무한 제공. 게다가 무료였다. 별 기대 없이 저녁 9시20분쯤 찾았다가 후회했다. 맥주, 와인에 토속주가 여럿이었고,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하브주(뱀술)까지 있었다. 저녁 8시 30분부터 오키나와 소바가 나왔으나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그 날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바람이 불고 비가 거세졌다. 우리가 쓴 우산이 뒤집어지고 다같이 웃었다. 모든 게 최악 같았지만 일부러라도 재현할 수 없는 놀라운 여행이었다. 서영은 다시 오자고 말했다. 첫째와 둘째도 '우리도'라고 외쳤다. 아내는 이번 여행이 편안해서 좋다고 말했다. 최악이 될 수 있었던 여행이 최상이 될 수 있었던 건 다 가족과 서영 덕이었다. 게다가 '짠' 하고 나타나 우리를 도와준 일본인들까지. 설마 내가 미친 건 아니겠지?
#오키나와 #일본여행 #대중교통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인공지능 믿었던 미국 대기업들의 후회... 한국이 간과한 진실 인공지능 믿었던 미국 대기업들의 후회... 한국이 간과한 진실
  2. 2 '피터팬 아빠'의 생전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피터팬 아빠'의 생전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3. 3 92세 노모와 다녀온 영월 청령포 92세 노모와 다녀온 영월 청령포
  4. 4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반박한 '오마이뉴스' 기고, 논쟁 발생 이유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반박한 '오마이뉴스' 기고, 논쟁 발생 이유
  5. 5 "한 사람 인생 망친 관저 공사"... 33년 공무원 "스스로 포기까지 생각" "한 사람 인생 망친 관저 공사"... 33년 공무원 "스스로 포기까지 생각"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