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대, 물관리 철학도 진화해야 한다

[제언] 효율성에서 회복탄력성으로, 집중형 시설과 분산형 시설의 조화

등록 2026.07.02 09:16수정 2026.07.0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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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30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남권에 반도체 생산공장(팹)을 만들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반도체 공장 후보지로 거론되는 광주 군 공항 일원(왼쪽부터)·광주 첨단 3지구·전남 해남군 산이면 솔라시도 부지 모습.
6월 30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남권에 반도체 생산공장(팹)을 만들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반도체 공장 후보지로 거론되는 광주 군 공항 일원(왼쪽부터)·광주 첨단 3지구·전남 해남군 산이면 솔라시도 부지 모습. 연합뉴스

기후위기는 에너지 정책의 철학부터 바꾸고 있다. 과거 전력은 대형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공급하는 집중형 시스템이 중심이었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재생에너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철학이 등장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지역 곳곳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스마트그리드는 이를 연결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대형 발전소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집중형 시설과 분산형 시설을 조화롭게 운영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화와 재난 때문이다. 하나의 발전소나 하나의 송전선에 문제가 생겨도 전체 시스템은 계속 작동해야 한다. 효율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반도체가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

호남에 반도체 산업단지를 유치하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풍부한 신재생에너지다. RE100 시대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한 경쟁력이다. 그런데 반도체를 이야기할 때 전력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물이다. 최근 발표되는 반도체 용수 확보 방안을 보면 기존 댐 활용, 댐 증고, 광역상수도 확충, 하수 재이용 등이 중심이다. 모두 필요한 대안이지만 대부분 집중형 공급시설을 확충하는 방안들이다. 그렇다면 전력이 이미 관리 철학을 바꾸고 있다면 물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물도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시대를 넘어 회복탄력성까지 함께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댐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광역상수도 역시 국가 물관리의 핵심 시설이다. 그렇다고 분산형 시설만으로 국가의 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어느 하나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는 가뭄과 집중호우, 시설 고장 등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을 점점 더 자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는 하나의 공급체계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 여러 공급체계가 서로를 보완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효율성을 추구하던 시대에는 집중형 시설이 최적의 해법이었다면, 회복탄력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집중형 시설과 분산형 시설이 서로의 장점을 살려 함께 운영되는 체계가 새로운 해법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분산형 시설은 집중형 시설을 대신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집중형 시설이 더욱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 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절수는 새로운 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물의 양을 줄이는 가장 경제적인 수원이다. 빗물은 먼 곳으로 보내기 위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린 곳에서 저장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재이용수와 지하수도 지역에서 기존 공급체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분산형 시설이 지역에서 물을 공급하면 기존 상수도의 부담이 줄어들고, 절약된 물은 반도체와 같은 국가 핵심산업에 더욱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결국 분산형 시설은 새로운 물을 멀리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수원의 부담을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한다.

투자에서 한 종목에만 자산을 맡기는 사람은 드물다. 여러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예상하지 못한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도 마찬가지다. 댐과 광역상수도 같은 집중형 시설은 국가 물관리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절수와 빗물, 재이용수, 지하수와 같은 분산형 시설은 지역에서 공급체계의 부담을 줄이고 회복탄력성을 높여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집중형 시설과 분산형 시설이 각각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서로를 보완할 때 기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물공급 체계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물 포트폴리오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사막형 물관리'라고 표현한다. 비가 풍부한 몬순 국가임에도 새로운 물을 어디에서 가져올지부터 고민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제는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는 댐과 빗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집중형 시설과 분산형 시설을 어떻게 조화롭게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전력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 반도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만이 아니다. 효율성과 회복탄력성을 함께 갖춘 새로운 물관리 철학, 그것이 우리 물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반도체용수 #회복탄력성 #기후위기시대의물관리 #분산형관리 #빗물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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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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