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과 주렁주렁, 선비들이 사랑한 계곡의 여름 풍경

등록 2026.07.02 10:18수정 2026.07.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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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으로 접어든 길목. 지난 1일 오후 비 갠 후, 황석산 자락 초록으로 물 든 물안개 자욱한 함양 화림동 계곡을 따라 걸었다. 수풀 사이로 산수국이 살포시 꽃잎을 내민다. 계곡 올레길 따라 산새들 지저귀고, 선비 문화 탐방 숲길로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화림동 계곡은 남덕유산(1507m)에서 발원한 금천이 반석 위로 흘러내리면서 기이한 너럭바위와 주변 소나무로 둘러친 정자와 어우러진 곳이다. 거연정 주변에서 출발하여 농월정으로 이어지는 화림동 계곡 따라 걷는 제1 코스. 비 갠 후 평일이라 그래서인지 화림동 계곡으로 걷는 걸음마다 고요함이 넘친다.


 화림동 계곡 농월정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월연암
화림동 계곡 농월정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월연암 김병모

거연정(居然亭)이 보인다. 봉전마을 앞으로 흐르는 천을 따라 기암괴석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구름다리 화림교를 지나 거연정으로 가는 길목에 우뚝 솟은 바위 사이로 물결이 고요하다. 거연정은 조선 중기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가 병자호란 이후 낙향 하여 서산서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심신을 수양했던 억새 정자였다.

현재 거연정은 그 억새 정자를 1901년 다시 중수한 것이라고 한다. 거연정은 주자의 시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의 시 구절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유래되었다. 자연에 어울려 편안하게 산다는 의미이다. 이 순간 내가 자연에 있고, 자연이 나를 안고 있는 듯하다.

거연정 주변 우뚝 솟은 바위에 '방수천(訪隨川)' 글씨가 붉게 새겨있다. 북송 시대 성리학자이자 시인 명도 정호(1032~1085)의 <춘일우성(春日偶成)> 칠언절구 시(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 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계곡물이 꽃 찾아 버들잎 따라 흐른다는 의미이다.

바람 가벼운 한낮에 거연정에서 바라본 진풍경이다. 거연정 처마를 바라보니 나라 잃은 설움으로 세상을 떠돌다가 화림동 계곡 풍광에 매료되어 찾아들었다는 심석재 송병순(1839~1912) 선생 현판 시가 서럽다. 현판에 걸린 색 바랜 시를 읽노라니,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전입화림수(轉入花林隨)
영롱천만행(玲瓏穿萬行)
(중략)

세상을 떠돌다 화림동 계곡에 드니
곱고 투명한 그림을 뚫고 가듯, 하는구나.

화림동 계곡 선비 문화 탄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우렁이 농법으로 벼를 기른다는 팻말이 보인다. 흥미롭다. 우렁이 농법을 활용하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잡초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벼도 기르고 우렁이도 키우는 일석이조. 주변 사과나무에 풋사과가 주렁주렁 걸려있다. 화림동 계곡의 맑은 물을 먹고 자란 풋사과와 벼를 뒤로 하고 농월정으로 향했다.


6Km 쯤 걸었을까. 울창한 숲을 지나 농월정(弄月亭)에 이르자 길손은 보이지 않고 너럭바위 위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만 요란하다. 푸른 풀로 물들인 계곡물이 세월의 인고를 말해주듯 너럭바위 위로 물결이 거세다. 전날 내린 빗물 덕일까. 저 멀리 너럭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체,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가 이채롭다. 지족당 박명부(1571~1639) 선생이 지팡이와 신발 벗고 풍류를 즐겼다는 흔적이다.

탁영탁족(濯纓濯足)이라 했던가. 조선 선비들이 세상의 풍파에 휘둘려 화림동 계곡에 낙향 하여 맑은 물엔 갓끈을 씻고, 혼탁한 물엔 발을 씻었다고 한다. 지족당 박명부도 병자호란 후 낙향하여 화림동 계곡 언저리에 종담서당(鍾潭書堂)을 짓고 후학을 가르친다. 그 역시 서당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계곡물에 탁영탁족 하면서 심신을 달랬을 것이다. 때론 화림동 계곡 농월정에 올라 제자들의 호연지기를 지켜봤으리라.


너럭바위 위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세월을 거슬러 틈새에 낀 이끼를 시원하게 씻고 흐른다. 계곡물의 정취가 필자의 마음을 훔치고, 달을 희롱할 만큼 아름답다. 농월정이란 이태백의 시 "음풍농월(吟風弄月)"에서 전래 된 것이란다. 맑은 바람을 읊고 밝은 달을 보며 즐긴다는 의미이다. 자연을 노래하며 세월을 즐겼던 선비들의 모습이 선하다.

화림동 계곡 농월정 풍취를 너럭바위에 새겨놓은 선비들의 흔적, '화림동 월연암(花林洞 月淵巖)'. 화림동 너럭바위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연못에 드리운 달빛이다. 일행 역시 수채화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하다는 표정이다. 농월정 경관에 취해 떠날 줄 모른다.

트레킹 후 농월정에서 거연정으로 돌아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펼쳐진 화림동 계곡의 풍광을 무심결에 바라본다.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농어촌버스는 30분마다 한 대씩 있다고 한다.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할 정도로, 함양은 선비들의 고장답게 출중한 선비들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이다. 돌아오는 길에 개평 한옥마을에 들러 일두 고택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돌아서야 했다.
#화림동계곡 #거연정 #농월정 #월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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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오마이뉴스, 대전일보 등 언론사나 계간 문학지에 여론 광장, 특별 기고, 기고로 교육과 역사 문화, 여행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심오한 사고와 과감한 실천이 저의 사회생활 신조입니다. 더불어 전환의 시대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면서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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