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청룡기 대회에서 더그아웃 응원 중인 배재고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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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교 야구 경기에서 나온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응원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정 지역과 역사적 상처를 조롱하는 표현이 학생들의 단체 응원으로 등장한 것.
문제는 이것이 단지 한 학교, 한 경기, 몇몇 학생의 일탈로만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혐오와 조롱을 '놀이'로 소비하는 문화에 지나치게 익숙해지고 있다. 혐오의 대상은 때로 지역이 되고, 역사적 비극이 되고, 사회적 약자가 되고, 특정 인물이 된다. 대상만 바뀔 뿐 작동 방식은 같다. 누군가의 고통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것을 밈과 숏폼으로 퍼뜨리며, 조회수와 재미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최근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부진 이후 홍명보 전 감독을 대상으로 한 AI 합성 영상이 확산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일부 영상은 선수가 감독을 때리거나 모욕하는 듯한 장면을 합성했고, 관련 AI 합성 영상이 1000만 조회 수를 넘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문제는 이런 영상이 '풍자'나 '패러디'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소비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동의 없이 얼굴과 신체를 합성하고, 폭행 장면을 연출해 조롱하는 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격권 침해이자 사이버폭력이다.
'처벌받을 수 있다' 경고만으로 부족
교육 현장에서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학생들이 이런 문화를 너무 쉽게 배운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뉴스보다 숏폼을 먼저 보고, 설명보다 밈을 먼저 접한다. 어른들이 "재미있다", "속이 시원하다", "웃기다"며 소비하는 장면을 보며,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유명인이라면 조롱해도 되는가. 경기에서 졌다면 얼굴을 합성해 때리는 영상을 만들어도 되는가. 사회적 분노가 크면 딥페이크 폭력도 허용되는가.
이 질문에 우리 사회가 분명히 답하지 못하면 학교의 교육은 공허해진다. 한쪽에서는 역사 왜곡과 지역 비하를 엄격히 비판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특정 인물을 향한 딥페이크 조롱을 오락으로 소비한다면 학생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혐오 감수성은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대상에게는 폭력을 허용하고, 내가 지지하는 대상에게만 인권을 말한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편 가르기다.
법과 제도도 이미 이 문제의 심각성을 따라가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허위영상물의 제작·유포뿐 아니라 소지·저장·시청까지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올해 1월 22일부터 시행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인공지능기본법)은 생성형 AI 결과물과 딥페이크 결과물에 대해 AI 생성물임을 고지·표시하도록 하는 투명성 의무를 두고 있다. 교육부도 2026년 2월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폭력 예방을 위한 학교용 교육 영상을 전국 학교에 배포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법 조항 몇 개를 아는 교육을 넘어서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타인의 얼굴을 함부로 합성하면 안 되는지, 왜 조롱과 풍자가 다른지, 왜 재미라는 이유로 타인의 존엄을 침해해서는 안 되는지 가르쳐야 한다. 디지털 시민교육은 기술 사용법 교육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감수성 교육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사회적 약자, 역사적 비극, 특정 지역, 특정 개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조롱과 혐오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분명한 사회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나 비판과 모욕, 풍자와 폭력, 패러디와 인격권 침해는 구분되어야 한다.
둘째, 딥페이크 혐오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제작자만 처벌하고 유통 구조를 방치하면 문제는 반복된다. 조회수와 알고리즘이 혐오를 키우는 구조라면, 플랫폼은 삭제·차단·표시·신고 체계를 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셋째, 학교 교육과정 안에 딥페이크와 디지털 혐오에 대한 실질적 교육을 넣어야 한다. 단발성 계기교육이 아니라 국어, 사회, 도덕, 정보, 창의적 체험활동과 연결해 반복적으로 다뤄야 한다. 학생들이 직접 사례를 분석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며,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경계를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처벌과 교육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딥페이크를 제작·소지·공유한 학생에게 단순 징계만 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피해 회복, 특별교육, 보호자 교육, 디지털 윤리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을 명확히 하되, 다시 공동체 안에서 책임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
혐오 놀이화하는 문화, 더는 방관하지 말자

▲ 홍명보 전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관련 딥페이크 영상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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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처음부터 거대한 폭력의 얼굴로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밈처럼, 응원처럼, 패러디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그 안에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교육의 문제가 된다.
학교는 사회와 분리된 공간이 아니다. 사회가 혐오를 놀이로 소비하면 학생들은 그것을 배운다. 어른들이 딥페이크 조롱을 웃음거리로 넘기면 학생들은 그것을 문화로 받아들인다. 결국 학생들의 혐오 표현은 어느 날 갑자기 학교 안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방치하고 허용한 문화의 반영일 수 있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표현을 재미라고 부를 것인가. 어떤 조롱을 풍자라고 용인할 것인가. 어떤 딥페이크를 그냥 넘길 것인가.
혐오의 대상에는 구분이 없다. 오늘 누군가를 향한 조롱이 허용되면, 내일 그 대상은 학생이 될 수도 있고, 교사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딥페이크 감수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기본 인권 감수성이다. 혐오와 폭력을 놀이화하는 문화를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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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중심 교육을 고민하는 초등학교 교감이자 교육 칼럼니스트. 교육청 장학사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정책과 학교 현실의 간극을 분석하며, 다양성 교육·교육활동 보호·공교육 회복을 주제로 미래교육의 방향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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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부른 '배재고 조롱 응원'...딥페이크 숏폼 보는 어른은 문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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