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읽고 마음의 숨구멍 하나 뚫어봅니다

박상천 시인의 시 <어느 시골 정류장에 있겠다>를 읽고

등록 2026.07.03 10:30수정 2026.07.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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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정류장에 앉아 있겠다

한 시간 또는 두 시간에 한 대쯤 버스가 지나가는
어느 시골 마을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한 대쯤 그냥 보내고 싶다.
버스가 지나가면 조금은 아쉬워하며
다음에 올 버스를 기다리고 있겠다.


구름 흘러가는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다가
가까운 듯 먼 곳의 뒷산,
그곳에 묻혀 있을 어떤 사람의 잘 가꿔진
묘를 생각하다가
그곳에 피어 있을 꽃들을 떠올리다가

버스가 오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걸 알지만
버스가 오는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지나가는 마을 사람의 장화 색깔을 부러워하다가
정류장 옆 가게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이스크림 하나쯤 사 먹어도 좋겠다.

종점을 향해 들어가는 건너편 버스를 보며
저 버스가 몇 분 뒤에 다시 돌아 나오나
의미 없이 시계를 한번 들여다보고
돌아 나온 버스가 저만치 오는 것이 보이면
이번에 탈까 말까 망설이며 그렇게
거기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

- 박상천, <어느 시골 정류장에 앉아 있겠다>, 12~13쪽

 박상천 시인의 시집 <어느 시골 정류장에 앉아 있겠다>
▲ 박상천 시인의 시집 <어느 시골 정류장에 앉아 있겠다> 시와함께 넓은마루

제가 고향인 보은을 떠난 것은 일곱 살, 이후 저는 대부분의 삶을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처음 살던 곳은 대전입니다. 초중고를 대전에서 나왔습니다. 태평동에서 오래 살다가, 이후에는 둔산동에서도 잠깐 살았습니다. 이후 20대 중반 대학과 직장 때문에 용인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용인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딸 셋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용인 처인구는 완전한 도시입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조금만 걸어가면, 논둑길이 있는,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공간, 말 그대로 '도농복합도시'였습니다. 초여름은 초록으로 가을엔 황금색으로 일렁거렸습니다. 풍경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제가 거창한 생태주의자는 아니지만, 10여 년 전의 용인은 '사람이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시를 읽으며, 시인 역시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 시를 쓰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문장을 공감합니다."~하고 싶다", "~하면 좋겠다"라는 부분에서.


시인은 "~가 좋다"가 아니라 "~하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 선뜻 행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오늘의 현실만큼은 어쩔 수 없어 포기하고 있으나, "~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작은 숨구멍 하나를 뚫어 놓는 것일 겁니다. 저도 시인과 같은 작은 숨구멍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집 옆에는 텃밭도 있어서 제가 원한다면 상추, 토마토, 고구마나 감자까지도 심어 먹을 수 있습니다. 제가 퇴직하면(또는 고1의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면) 아파트는 세를 주고, 이사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집이 아주 오래된 집이라서, 꽤 많이 손 봐야 합니다.

집의 평수도 10여 평밖에 되지 않아서, 세간살이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삶이란 조금씩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몸이 아픈 것도 인정하고, 덜 보이고 덜 들리는 것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포기할 것 포기하고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다면, 훨씬 더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하지만,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살기엔 아파트가 편합니다. 박상천 시인의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골 정류장이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삶의 낭만이 가득할지 모르지만, 삶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찬거리를 사야 하는 마트도 멀고, 병원이나 약국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제 아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벌레도 자주 출몰할 것입니다. 다행히 제가 살고자 하는 곳은 도시 한쪽 구석에 있습니다. 생활만큼은 편리할 것입니다. 문제는 벌레인데요... 이는 집을 잘 고치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벽히 다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얻는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는 것'이 삶이 가진 평범한 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잊어버리고 나서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내려놔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얻으려고 하는 바보 같은 욕심, 특히 다 내려놔야 할 것입니다.

※ 시인 이력 (출판사 제공)

- 박상천 시인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시집 <사랑을 찾기까지> <말없이 보낸 겨울 하루>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낮술 한잔을 권하다> <그녀를 그리다> 등을 펴냈다. 박상천은 등단 이래 일상의 언어 속에 숨겨진 존재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시인으로 평가되어왔고, 가장 낮은 곳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인간의 고독과 사랑, 그리고 생의 찬란한 순간들을 정갈한 서정으로 담아내 왔다. 한국시협상, 한국시문학상, 편운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 >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어느 시골 정류장에 앉아 있겠다

박상천 (지은이),
시와함께 넓은마루, 2026


#박상천시인 #시골정류장 #시와함께넓은마루 #신작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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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 보다 시읽기와, 시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9년 계간 『시인시각(현 시인동네)』 시 부문 신인상과 2019년 『불교문예』 문학평론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인류는 멸종을 예약했습니다』등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동네책방과 도서관에서 북토크로 독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메일 yhjoo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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