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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문턱서도 카메라 놓지 않은, 일흔살 '바다 기록자'의 최애 장소

[100인 100색] 평생 바닷속 생명을 기록해 온 수중촬영 전문가 윤혁순 감독

등록 2026.07.05 11:09수정 2026.07.0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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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평생 산을 오르고, 누군가는 평생 하늘을 난다. 그러나 여기 이 사람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쉽게 닿을 수 없는 푸른 심해에서 생명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인간이 미처 알지 못한 자연의 질서를 기록하며 살아온 사람, 수중촬영 전문가 윤혁순(70)이다.

강릉 주문진 소돌마을, 푸른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는 그가 평생 삶의 터전이자 기록의 현장으로 삼아온 무대다. 바다를 바라보며 들려준 수십 년간의 바닷속 기록과 생명의 신비, 자연을 향한 철학, 그리고 바다를 '어머니'라 부르게 된 그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윤혁순 감독 바다를 평생 기록해 온 수중촬영 전문가 윤혁순 감독이 주문진 소돌마을 자택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윤혁순 감독 바다를 평생 기록해 온 수중촬영 전문가 윤혁순 감독이 주문진 소돌마을 자택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진재중

"바다를 품은 집, 기록으로 채워진 삶"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벽마다 걸린 물고기 사진과 민화, 곳곳에 놓인 바다를 주제로 한 민속품과 나무 조각들은 마치 작은 해양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수십 년 동안 바닷속을 기록하며 모아온 흔적들이 집안 곳곳에 스며 있었다. 공간 전체에서 바다를 향한 그의 애정과 삶의 향기가 묻어났다.

자리에 앉기도 전, 그는 가장 먼저 물고기 이야기를 꺼냈다. 집 안을 채운 물고기 사진과 조각, 민화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생태가 담겨 있었다. 취재를 위해 그의 집을 찾은 기자에게는 평범한 장식품이 아니라, 평생 바다를 누비며 쌓아온 시간의 기록으로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직접 간직해 온 물고기형상의 톱은 윤혁순 감독만의 독특한 바다 철학을 상징하는 듯했다. 그의 집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바다 세계를 품은 또 하나의 기록관이었다.

 집안에 가득한 물고기 형상들
집안에 가득한 물고기 형상들 진재중

"경포의 소년, 세계의 바다를 품다"

윤혁순의 바다 인생은 강릉에서 시작됐다. 강릉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여름이면 경포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조개를 잡으며 자연스럽게 바다와 친구가 됐다. 그의 삶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찾아왔다. 사촌형에게 다이빙을 배우면서 바닷속이라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났고,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을 바다와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평생 바닷속 세상을 기록하며 살아가겠다고."

한 번의 결심은 평생의 길이 됐다.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 바다를 누비며 수중생태를 기록해 왔다. 그가 가장 잊지 못하는 곳은 파푸아뉴기니의 카타렛 군도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그곳에서는 태초의 해양생태계가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윤혁순에게 카타렛 군도는 자연이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바다였으며, 인간의 개입이 없는 생태계가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일깨워 준 곳으로 남아 있다.


 윤혁순 감독은 인도네시아 마나도섬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수중비경을 누비며 해양생태계를 기록해 왔다.
윤혁순 감독은 인도네시아 마나도섬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수중비경을 누비며 해양생태계를 기록해 왔다. 윤혁순
 수중촬영을 위해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신뢰를 쌓아온 윤혁순 감독. 현지인들과의 교감은 바닷속 생태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수중촬영을 위해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신뢰를 쌓아온 윤혁순 감독. 현지인들과의 교감은 바닷속 생태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윤혁순

"바다는 두려움이 아닌 삶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다 인생이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수중촬영은 한순간의 실수가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한 작업이다.

윤혁순 역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다. 강한 조류가 흐르는 깊은 바다에서 촬영을 마치고 비상 상승하는 과정에서 의식을 잃었고, 감압병으로 서울의 감압치료 시설까지 긴급 후송됐다. 무려 10시간이 지나서야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누구라도 다시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달랐다.

"다음 날 다시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그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삶의 터전이었다. 죽음의 공포조차 그를 바다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경험은 바다를 더욱 경외하고 생명을 더욱 소중히 기록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한 컷의 수중 장면을 기록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윤혁순 감독. 바닷속 촬영은 언제나 생명과 맞바꾸는 도전이다.
한 컷의 수중 장면을 기록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윤혁순 감독. 바닷속 촬영은 언제나 생명과 맞바꾸는 도전이다. 윤혁순

"카메라보다 먼저 생명과 눈을 맞추다"

윤혁순의 수중촬영은 일반적인 촬영 방식과는 다르다. 그는 영상을 배우기 전에 먼저 수중사진을 익혔고, 그 경험은 지금까지도 그의 촬영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자동 기능에 의존하지 않는다. 바닷속의 빛과 수심, 물의 흐름과 시야를 직접 읽어가며 적정 노출을 맞춘 뒤, 피사체와 충분히 교감한 후에야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대상에 대한 이해와 기다림이 먼저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좋은 영상은 뛰어난 장비가 아니라 생명과 교감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수십 년 동안 그가 남긴 수많은 영상과 사진은 단순한 촬영 자료를 넘어선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며 사라져가는 해양생태계를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이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바다의 모습을 담아낸 생생한 역사이기도 하다.

 생명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피사체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윤혁순 감독. 그는 생명과의 교감이 최고의 수중촬영을 만든다고 말한다.
생명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피사체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윤혁순 감독. 그는 생명과의 교감이 최고의 수중촬영을 만든다고 말한다. 윤혁순

"사라지는 바다, 기록은 미래를 위한 약속"

윤혁순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바다의 변화다. 한때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던 바다가 불과 1년 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는 현실을 그는 수없이 목격했다.

"너무 아름다워 다시 찾았던 곳들이 1년 뒤에는 전혀 다른 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기억 속 동해는 지금과 달랐다. 사천 앞바다를 뒤덮던 개다시마 군락은 자취를 감췄고,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심퉁이와 명태, 오징어 같은 생물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세대에 이처럼 급격한 해양생태계의 변화와 멸종이 진행될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평생 기록해 온 바다를 혼자 간직하지 않으려 한다.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영상과 사진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며, 빠르게 변해가는 바다의 모습을 미래 세대에 남기는 것이 이제 그의 새로운 사명이다. 기록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지키기 위한 약속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바닷속 생명들을 기록한 영상을 편집하는 윤혁순 감독. 그의 작업은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미래 세대에 전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바닷속 생명들을 기록한 영상을 편집하는 윤혁순 감독. 그의 작업은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미래 세대에 전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진재중

"바다를 지키는 일은 모든 생명을 지키는 일"

윤혁순은 무엇보다 바다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바다와 공존할 때 비로소 미래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인간도 척추동물입니다. 우리의 생존 방식도 많은 부분이 물고기를 닮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바다를 너무 모릅니다. 우리의 미래는 바다에 있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생물 한 종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바다 생태계 전체를 존중하는 자세라고 강조한다.

"한 종 한 종 모두가 소중합니다."

무분별한 남획을 멈추고 바다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복원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과도한 개입보다 자연의 회복력을 믿어야 하며, 어장별·구역별 휴식년제와 같은 제도를 확대해 해양생태계가 숨 쉴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다의 생명체를 평생 기록해 온 윤혁순 감독은 꽃과 나무, 자연의 모든 생명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바다의 생명체를 평생 기록해 온 윤혁순 감독은 꽃과 나무, 자연의 모든 생명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진재중

"동해는 살아 있는 생명의 보고"

세계 곳곳의 바다를 누빈 윤혁순에게도 대한민국 동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바다다.

"육지에 사계절이 있듯 바닷속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계절마다 생명이 찾아오고 떠나며 살아 숨 쉬는 곳이 바로 동해입니다."

그는 동해가 온대 해역의 특징을 가장 잘 간직한 바다라고 말한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생물이 순환하며 살아가고, 특히 해조류는 지구의 산소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닷속 숲을 이루는 해조류는 인간을 비롯한 지상의 모든 생명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생명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그가 앞으로 꼭 기록하고 싶은 것도 화려한 산호나 희귀한 대형 어류가 아니다. 동해안의 전통 어로 방식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해안가의 고유한 음식문화다.
특히 동해에서 살아가는 '지누아리'의 생태를 끝까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그의 오랜 바람이다.

그에게 바다를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남기는 작업이 아니다. 동해의 생명과 문화, 그리고 사라져가는 해양유산을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전하는 일이다.

 독도 해역의 수중생태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 요트로 접근하는 윤혁순 감독. 그는 동해를 살아 있는 생명의 보고라고 말한다.
독도 해역의 수중생태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 요트로 접근하는 윤혁순 감독. 그는 동해를 살아 있는 생명의 보고라고 말한다. 윤혁순

"바다를 모르는 교육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윤혁순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보다 우리 사회의 바다 교육을 말할 때 더욱 진지해졌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이지만, 해양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도전정신을 키우는 가장 큰 배움의 공간이 바로 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육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작 바다를 이해하고 체험할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수십 년 동안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생명의 신비와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직접 기록해 온 그는, 바다를 제대로 아는 것이 곧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기후변화와 해양환경의 위기가 커질수록 바다를 이해하는 인재를 키우고, 해양 연구와 교육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다를 알려야 합니다. 바다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미래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의 말은 단순히 수중촬영 전문가의 바람이 아니라, 평생 바다를 기록해 온 한 사람의 절실한 제안이었다.

 윤혁순 감독은 바닷속 생명 하나하나를 기록하며 "바다를 이해하는 것이 미래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한다.
윤혁순 감독은 바닷속 생명 하나하나를 기록하며 "바다를 이해하는 것이 미래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한다. 윤혁순

"평생 바다를 품고, 바다를 남기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감독님에게 바다는 어떤 존재입니까?"

잠시 창밖의 동해를 바라보던 그는 미소를 지으며 짧지만 깊은 한마디를 건넸다.

"바다는 어머니입니다."

그는 평생 바닷속에서 살아온 삶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남은 생애 역시 바다와 함께하며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끝까지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혁순에게 바다는 단순한 자연도, 직업도 아니었다. 모든 생명을 품고 길러낸 어머니이자,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존재였다.

그의 카메라는 오늘도 조용히 바다를 향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빠르게 사라져가는 생명과 변해가는 해양생태계,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바다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다.

평생 바다를 기록한 한 사람의 삶은 결국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연 바다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후손들에게 어떤 바다를 물려줄 것인가!"

 바다를 평생 기록해 온 윤혁순 감독은 육지의 작은 생명도 같은 마음으로 보듬는다. 그에게 자연은 모두 하나의 생명이다.
바다를 평생 기록해 온 윤혁순 감독은 육지의 작은 생명도 같은 마음으로 보듬는다. 그에게 자연은 모두 하나의 생명이다. 진재중
#수중세계 #바다 #윤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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