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7.03 14:51수정 2026.07.0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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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고 하는 것에서는 맑은 날의 저녁나절처럼 조촐한 빛이 새어 나와야 할 것인데, 사람들의 숨소리도 잘 품고 가야 할 것인데, 슬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지라도 살아있는 것들은 어떻게든 피어났으면 좋겠는데. (김영춘 시인의 시집 <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 시인의 말 중에서)
이 문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맑은 날의 저녁나절처럼 조촐한 빛"이었다. 시인은 빛의 조촐함을 빛의 세기로 표현하지 않고 시가 지녀야 할 품격과 정서를 은유적으로 보여주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따뜻함, 단정하면서 소박한 정갈함을 보여주는 '조촐한 빛'! 눈부시게 강렬한 빛이 아니라, 저녁나절 세상을 은은하게 감싸며 새어나오는 빛처럼 당신의 시가 읽혔으면 좋겠다고 시인은 말했다. 지난 2일, 시인과 독자들 행간에 자리한 그 빛은 모든 것을 드러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감추지도 않으면서 군산인문학당이 주관한 강연장은 곧 설렘과 애뜻함의 공간으로 채워졌다.

▲<목이 긴 흰 새> 김영춘 시인 '저녁나절 조촐한 빛'으로 시를 전하고픈 시인의 마음을 들었던 시간
박향숙
군산인문학당은 김영춘 시인의 4번째 시집 <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 출간 소식에 학당의 프로그램 중 '시인과 걷는 시의 떨림' 코너에 시인을 초대했다. 시인께서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진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 시간이었다.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에서부터 '슬픈 존재, 진실한 존재, 외로운 존재, 의미있는 존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인은 "시를 쓸 때 소원이 있다면 빛이 나되 빛이 나지 않는 것처럼 되길, 사람들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를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있길, 모든 생명체의 배경이 되는 슬픔을 받아서 끌어안으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시집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런 시인의 소원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김영춘 시인을 만나기 하루 전, 시집을 펼치며 화려한 수사로 문 앞을 치장하지 않아서, 무엇보다 서사가 너무 길거나 복잡하게 꼬이지 않은 문장들이 순해 보여 좋았다. 시로 그리는 풍경들이 언젠가 나도 걸어본 듯한 낯익은 냄새가 나서 좋았다. 무심히 마치 혼잣말처럼 흘리는 자조적인 글 말의 뒤를 따르며, 슬픔 혹은 쓸쓸한 그리움을 함께 느꼈다. (중략)" - 전재복님의 후기
"뒷산을 그리워하게" "있는 듯 없는 듯" "머뭇머뭇 서성이게" "가끔씩 꽃도 들여다보고" "자잘한 상처를 나누느라" "담담한 노래" "깊고 그윽한 곳까지" "애잔한 꽃잎을 바라보는 눈빛" 등의 시 구절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을 향한 시인의 지극한 마음이 전해졌다.
"시인께서 들려주신 '아프지 않은 듯 아픔이 나타나게 시를 쓰고 싶었다'라는 말씀은, 현재 시를 공부하고 있는 내게 묵직하고도 큰 영감을 주었다. 과장된 절규보다 담담한 시선 속에 배어 나오는 슬픔이 오히려 독자의 가슴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한 '조촐하지 않게 빛나는', '저녁의 화려하지 않은 빛'과 같은 표현을 접하며, 시인은 평범한 일상과 세상을 특별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배웠다. 단장(斷腸)의 고통에서 시작해 옥수숫대를 굳건히 견디게 해주는 뿌리에 이르기까지, 대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시인의 섬세한 관찰력,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어조의 말, 시를 향한 강렬하고 뜨거운 에너지가 넘치는 시인의 눈빛을 기억하고 싶다. - 박형근님의 후기
"슬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지라도 살아있는 것들은 어떻게든 피어났으면 좋겠는데"라며 슬픔이라는 앞산이 아무리 높고 험하다 할지라도 그 뒤에 서 있는 '희망의 불씨를 간직한 뒷산'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김영춘 시인. '조촐한 빛'이 가진 가벼운 그리움과 부드러움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일상을 벗어나 평범함을 딛고 일어서기를 희망했던 김영춘 시인. <홀로 있는 시>를 낭독하면서 군산인문학당에서 펼쳐진 시인의 강연은 조용히 문을 내렸다.
홀로 있는 시
김영춘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빗방울 내려앉는
나뭇잎
쉬지 않고 떨리고 있다
저만큼에 놓여 있던
벗의 시 몇 줄
참 좋다
처음 읽을 때 이미 좋았는데
다시 읽어야만 다시 좋은가
영혼을 흔든 순간마저도
결국 희미해지는 인간의 일을 데리고
떨리는 나뭇잎 위에 시를 놓는다
텅 비어있는 세상 밖으로
시 몇 줄
빛나다가 홀로 아득해져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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