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소극장 내부 카톨릭청년회관 건물 안에 다리소극장이 있다.
윤태정
창밖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에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홍대 앞에서 '정거장'이라는 연극을 하는데, 같이 보러 안 갈래?"
그렇게 친구와 약속을 잡고 홍대입구역에 위치한 '다리소극장'을 찾았다. 아담하고 아늑한 극장 입구에서 팸플릿을 받아 들었다. '삶과 죽음의 엇갈리는 선택'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사전 지식도 없는 터라 호기심과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막이 오르고, 저승사자 복장을 한 남자 배우가 나타나 현란한 마술쇼를 펼쳤다. 순식간에 관객들의 시선이 하나 되어 마술사의 손끝으로 모였다. 전문 마술사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노련한 손놀림에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과 박수가 나왔다. 신선하고 유쾌한 발상의 시작이었다.
무대 위 '정거장'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 지점으로,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장소이다. 염라대왕의 주관 아래 있는 이 정거장에는 두 명의 역무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역무원의 역할은 이승을 떠나온 영혼들을 맞이하고 심판하는 일이다.
이날 정거장에 모인 영혼은 모두 넷. 수명을 다하여 자연사한 남자 노인과 중년 부인, 갑작스러운 사고로 우연사한 여고생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살 청년이다. 염라국의 법전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는 정거장에서 심판을 받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아 다시 이승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청년은 다시 살 이유가 없다며 완강히 버텼다.
"나는 저 외롭고 쓸쓸한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테야!"
그 절절한 외침이 가슴을 찔렀지만, 정거장에 모인 다른 영혼들은 누구 하나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들의 바람은 오직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뿐이었다.
다만 자살한 청년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하나 주어진다. 자신을 제외한 세 명의 영혼 중 '살아야 할 이유가 가장 절실한 사람' 한 명만 선택해 대신 이승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권한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자연스럽게 세 영혼의 사연을 듣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연을 듣는 내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리 천수를 누려도 죽음이란 언제나 안타까운 이별을 낳기 마련이다.
살인죄로 수감 중인 중년 남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들이 탄원서를 낸 덕분으로 사흘간 휴가를 얻었다. 아들과 함께 평생소원이던 콘서트를 관람하다 심장마비로 숨졌다. "단 사흘만이라도 아들 곁에 머물고 싶다"라는 그의 절규가 소극장을 가득 채웠다.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등교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여학생 사연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살아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기계 대신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따뜻하게 살겠다고 울부짖었다. 아침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외면했는데 먹어보고 싶다며 울자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을 잃고 두 딸을 위해 고생만 하다 폐암 말기로 숨진 50대 엄마가 흐느꼈다. "엄마, 제발 눈 감지 마"라며 울던 딸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돌아가면 딸들과 그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며 관객들을 향해 눈물로 호소했다.
이제 그들의 운명은 자살한 청년의 손에 달렸다. 과연 청년은 누구를 선택할까. 목이 쉬도록 삶을 갈구하는 이들을 보며 청년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타인의 절절한 외침을 통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못해 친구도 없이 단칸방에 갇혀 지내왔다. 의기소침하게 남과 비교하느라 우울증까지 겹친 청년은 비로소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좁은 밥상 앞에 둘러앉아 가족과 나눴던 소박하고 평범한 대화들을 떠올리며 울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저요, 어렸을 때 단칸방에서 살았거든요. 그때처럼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극의 짜임새와 연출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의 흡인력 있는 연기가 압도적이었다. 이토록 수준 높은 연극을 작은 소극장에서만 보기에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비극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열연에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공연이 끝난 후, 여운이 가시지 않아 네이버 공연 후기에 접속해 마음을 담은 글을 남겼다.
'대형극장 무대에 올려도 손색 없을 멋진 작품을 소극장에서 귀하게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침 안내석 앞에 연출가가 서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를 하며 덕담을 건넸다.
"연극 내용이 정말 좋습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청년들을 위해 정말 귀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연출가의 소신 있는 노력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함께 기념 사진도 한 컷 남겼다.

▲이상철 연출가와 함께 '생명존중' 의식을 심어주는 연극을 연출하신 연출가님께 덕담을 건네며 기념을 사진 한 장을 찍음
윤태정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수 년째 안고 있다. 매일 수십 명의 이웃이 스스로 생을 등진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득해진다. 연극이 말해주듯 우리는 살아있기에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살아 숨 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큰 기적을 누리고 있는 건지 모른다. 우리가 무심히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내일'이라 하지 않던가.
집으로 돌아와 팸플릿을 다시 펼쳐보았다. 서울시 교육감이 남긴 축사 한 구절이 다시금 가슴에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삶이 버거울 때,
지쳐서 멈추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한 그 자리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아침의 햇살, 사랑하는 사람과의 짧은 대화, 함께 웃었던 평범한 순간들처럼
당연하다 여겼던 그 일상이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연극을 통해 타인의 삶을 직관하며 나의 삶을 따뜻하게 반추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런 좋은 작품을 소개해 준 친구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받은 이 감동을 혼자만 간직하기엔 너무나 아깝다. 가족, 연인, 그리고 이 시대를 위태롭게 버텨내고 있을 청소년들이 이 극장을 꼭 찾았으면 좋겠다.
'극단버섯'이 생명존중 인식의 확산을 위해 준비한 연극이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극장을 나설 때쯤에는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가슴에 품게 해준다는 사실. 의지를 단단히 굳히고,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을 감싸줄 시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인사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배우들이 나와 무대 인사를 나눔. 혼신을 다해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들의 정성에 감사한 마음이 듦.
윤태정
[관람 정보]
*공연 장소: 다리소극장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공연 기간: 2026.6.29.(월) ~ 7월 18일(토)
*예매 방법: 네이버 예약 (무료 관람)
*주의 사항: 놀라지 마시라.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연극이 '티켓 가격 0원'이라는 사실에.
그들이 전하는 위로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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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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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긴 아까운 연극, 죽고 싶다던 청년이 살고자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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