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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7.03 11:40수정 2026.07.0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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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요즈음, 우리 집 텃밭에서 가장 기세등등한 주인공은 단연 호박이다. 지난봄, 열서너 구덩이를 파고 정성스레 단호박을 심었다. 직접 포트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5월 초순 밭으로 옮겨 심을 때만 해도 이 가냘픈 녀석들이 제구실이나 하려나 싶어 애틋한 마음이 앞섰다.

▲ 작은 모종이었던 녀석들이 우리 텃밭에서 어느새 푸른 바다를 이루며 기세등등하게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전갑남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어느 정도 자라 탄력을 받더니 이내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찌나 세력을 떨치는지 넝쿨을 사방으로 뻗으며 옆에서 자라는 다른 작물들까지 모두 품을 기세다.
하루가 다르게 우거지는 초록 잎사귀를 들추던 아내가 연신 감탄사를 터뜨린다.
"와, 어느새 이렇게 주렁주렁 달렸을까? 당신 혹시 마술을 부린 거 아냐?"
아내의 칭찬에 짐짓 쑥스러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마술은 무슨 마술! 심어놓고 놔두었는데 제가 알아서 큰 거야."
내가 한 일이라곤 작은 모종을 땅에 심어 줄 때 미리 밑거름을 넉넉히 넣어준 것뿐이다. 그런데 넝쿨은 노란 꽃을 피워내고, 꽃이 진 자리에 탐스러운 열매를 매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작은 텃밭에도 자연이 펼쳐 보이는 신비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백합을 닮은 얼굴, 박과의 억척스러운 핏줄
흔히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것을 비유하며 "호박꽃도 꽃이냐"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허리를 숙여 가까이 들여다본 호박꽃은 더없이 소박하면서도 놀라운 생명의 비밀을 품고 있다.
아침이슬을 머금고 활짝 핀 호박꽃은 당당하고 시원스럽다. 짙은 초록 잎사귀 사이에서 황금빛 나팔을 부듯 피어난 모습은 얼핏 백합을 닮았다.

▲ 수많은 수꽃이 보낸 노란 신호를 따라 찾아온 벌 한 마리. 이 작은 움직임 속에 대자연의 엄숙한 질서가 숨 쉬고 있다.
전갑남

▲ 백합을 닮은 당당한 황금빛 나팔 아래, 귀여운 아기 호박을 엉덩이에 매단 소중하고 귀한 호박 암꽃의 자태.
전갑남
하지만 이 꽃은 화려한 백합과가 아니라 억척스러운 생명력으로 이름난 박과 식물이다. 수박, 오이, 참외와 한 형제로, 혼자 우뚝 서기보다 덩굴손을 뻗어 삶의 터전을 넓혀 간다. 꽃 하나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 백합과 달리, 한 포기 안에서 암꽃과 수꽃을 따로 피우는 것도 박과 식물만의 독특한 생존 방식이다.
가만히 보니 그 균형이 참 묘하다. 아기 호박을 매단 암꽃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 길쭉한 꽃자루 끝에 피어난 수꽃은 셀 수 없이 많다.
수꽃이 더 많은 이유, 꿀벌 중매쟁이의 날갯짓
왜 자연은 수꽃을 더 많이 피워낼까? 이유를 알고 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암꽃은 열매를 키워야 하기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수꽃은 벌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맡는다. 수많은 노란 꽃들이 텃밭 가득 "여기 꿀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비로소 벌들이 귀한 암꽃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마침 꽃잎 속을 들여다보니 꿀벌 몇 마리가 온몸에 노란 꽃가루를 묻힌 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암꽃과 수꽃을 바지런히 오가는 작은 날갯짓 하나하나가 호박의 대를 잇는 소중한 가교가 된다.
물론 모든 암꽃이 호박으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미처 다 자라지 못하고 노랗게 시들어 떨어진 어린 호박도 보인다. 벌들의 중매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비바람 탓에 수정이 제대로 되지 못한 까닭이다. 그 모습을 보며 생명을 맺고 열매를 얻는 일이 얼마나 귀한 기적인지 새삼 깨닫는다.
자연이 차려준 저녁 식탁, 그리고 달콤한 약속

▲ "당신 혹시 마술을 부린 거 아냐?" 아내의 말대로, 자연이 부려놓은 초록빛 마술의 결실. 단호박이 익어가고 있다.
전갑남
대자연의 신비에 한참 빠져 있을 즈음, 넝쿨을 살피던 아내가 잎사귀 그늘 속에 숨어 있던 제법 실한 단호박 하나를 툭 따낸다.
"이걸로 뭐 하려고?"
"뭐하긴! 된장국 끓이자."
"단호박 라테도 맛있다는데."
"그건 딴딴하게 익으면 얼마든지 해줄게요."
단호박으로 만들어 식탁에 올려질 귀한 음식을 생각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겉모습은 백합을 닮았지만, 그 속에는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박과 식물의 지혜와 자연의 질서가 오롯이 담겨 있다. 내가 한 일은 씨를 심고 모종을 옮겨 심을 때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자연이 해낸 일이었다.
뜨거운 여름날, 초록 넝쿨 사이에 피어난 노란 호박꽃은 오늘도 말없이 생명의 신비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꽃이 맺어 준 단호박 한 덩이는 우리 집 저녁 식탁까지 자연의 넉넉한 마음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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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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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을 때 이것 넉넉히 넣어준 것 뿐인데... 주렁주렁 달린 단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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