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공원 도심 한가운데 펼쳐진 푸른 숲길. 폐선 철길은 시민의 힘으로 되살아나 오늘은 광주를 대표하는 녹색 쉼터가 되었다.
문운주
지난달 27일 오후, 무돌길 제14길 여정을 마친 뒤 곧바로 제15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구간은 남광주시장에서 광주역까지 이어지는 푸른길이다. 이 길은 광주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심 속 숲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때는 광주와 부산을 오가던 경전선 철길이었다.
기적 소리와 함께 달리던 열차는 사라졌지만 철길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폐선 부지는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이 길에는 열차 대신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가 달린다. 철길을 따라 쌓인 시간과 추억은 지금도 이 길 위에 머물러 있다.
오른편으로 조선대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해방 직후 지역민들의 뜻을 모아 세운 대표적인 민립대학이다. 오랫동안 광주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이자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높은 언덕 위의 캠퍼스와 웅장한 본관은 한 시대 광주의 대표적인 풍경이었다.
조선대학교는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민주화운동의 현장이었고 지역사회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넓은 캠퍼스에는 광주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다. 본관은 광주관광호텔과 함께 광주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혔다.
왼편으로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학동캠퍼스와 전남대학교병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자리한다. 이 일대에는 제봉로와 금남로, 충장로가 이어진다. 제봉로와 금남로는 광주의 대표적인 간선도다. 충장로는 광주의 중심 상권을 이루는 대표적인 거리다. 길 이름마다 호남의 역사와 인물이 담겨 있다.
제봉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의 호 '제봉'에서 이름을 따왔다. 금남로는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에서 공을 세운 무장 정충신의 봉호 '금남군'에서 유래했다. 충장로는 임진왜란의 명장 김덕령 장군의 시호 '충장'을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대학교 정문 사거리를 지나 길은 동명동으로 향한다. 예전 동명여자중학교 자리에는 서석교회가 들어서 있다. 길가에는 바람막이 쉼터가 있다. 겨울에는 온열 의자가 온돌방처럼 따뜻하다. 스마트폰 충전기도 갖춰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지교 (농장다리) 감싸는 초록 숲길. 빛과 그늘이 어우러진 산책로는 잠시 걸음을 늦추게 하는 도심 속 휴식 공간이다.
문운주

▲원추리 숲의 그늘 아래 피어난 원추리. 푸른길은 사람만 걷는 길이 아니라 계절의 꽃과 나무가 함께 숨 쉬는 생태길이기도 하다.
문운주
조금 더 걸으면 동명동과 지산동을 잇는 동지교에 닿는다. 그러나 시민들에게는 지금도 '농장다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과거 광주교도소 복역수들이 교도소 농장으로 오가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그 농장은 지금의 법원 일대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공식 명칭은 바뀌었지만 '농장다리'라는 이름은 시민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푸른길은 도심 속 숲 터널이다. 폭 3m 남짓한 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길 양옆에는 팽나무와 느티나무, 석류나무, 홍가시나무, 꽝꽝나무, 후피향나무 등이 울창하게 자라 작은 자연생태공원을 이룬다. 이 길은 폐선부지를 시민의 힘으로 되살린 도시공원이다. 100만 그루 헌수운동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며 오늘의 푸른길이 만들어졌다.
나뭇잎 사이로 새소리와 매미 울음소리가 흐른다. 도심의 소음은 어느새 숲의 소리에 묻힌다. 산책로 바닥은 폐타이어를 재활용한 탄성 바닥재로 조성됐다. 걸을 때마다 발걸음이 포근하다. 곳곳에는 벤치와 운동시설, 야외공연장이 마련돼 있다.
시민들은 걷고 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숲길을 즐긴다. 농장다리를 지나면 분수광장이 나타난다. 이곳은 도심 속 사랑방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버스킹 공연과 요가, 건강체조까지. 푸른길은 산책로를 넘어 시민들의 일상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생활공원이 되었다.
분수광장을 지나면 산수동 굴다리 옛터를 만난다. 1976년 광주역 이전과 함께 조성된 굴다리는 산수동과 계림동을 잇는 생활길이었다. 학교와 시장을 오가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굴다리는 사라졌지만 기념비는 철길과 함께했던 광주의 추억을 말없이 전하고 있다.

▲푸른길을 걷고 있는 어르신 조각 속 농부는 허리를 굽혀 풀을 메고, 푸른길의 어르신들은 지팡이를 짚고 숲길을 걷는다. 모습은 달라도 한평생 삶을 견뎌온 시간은 닮아 있다.
문운주
푸른길을 벗어나 산수1구역 소공원에 들어섰다. 조각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그중 윤영월 작가의 '삶'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푸른길을 걷는 할머니들의 굽은 등이 작품 속 형상과 겹쳐 보인다. 한쪽은 밭에서 풀을 메는 농부이고, 다른 한쪽은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우리의 어머니들이다.

▲윤영월 작가의 '삶' 조각 속 농부는 허리를 굽혀 풀을 메고, 푸른길의 어르신들은 지팡이를 짚고 숲길을 걷는다. 모습은 달라도 한평생 삶을 견뎌온 시간은 닮아 있다.
문운주
무돌길 제15길은 학동과 동명동, 산수동, 계림동을 지나며 광주의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학동은 무등산 줄기가 학처럼 내려앉은 지형에서, 서석동은 무등산의 옛 이름인 서석산 아래 마을에서, 계림동은 경양방죽 주변에 닭 울음소리가 자주 들렸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명마다 광주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이 스며 있다.
무돌길 북구·담양·화순·동구 구간 15개 길을 3개월 만에 모두 걸었다. 벚꽃이 피던 봄에 첫발을 내디뎠다. 장마가 시작되는 7월 초에 여정을 마쳤다. 서두르지 않았다. 쉬고, 둘러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걸었다.
무돌길은 아름다운 풍경만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무등산 자락에 켜켜이 쌓인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담담히 들려주었다. 길은 끝났지만, 무돌길이 들려준 이야기는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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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 3개월에 걸쳐 완주한 무등산 무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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