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 아니라 잉걸 6월에 쓴 나의 잉걸 기사
김윤희
기사가 혹시 가장 높은 등급인 오름을 받아서 메인 톱에 배치되면 어떡하지? 김칫국을 마시니 남편의 벅찬 표정, 지인들의 축하, 기고만장으로 솟아오를 나의 어깨뽕이 떠올랐다. 그날 오전 편집부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드디어 워치가 부르르 떨었다. 올 것이 왔다! 오마이뉴스 앱으로 들어갔다.
'잉걸' 뭐라고? 잉걸이라고? 처음에는 오류인 줄 알았다. 조금 있으면 바뀔 수도 있다고 현실을 부정하며 몇 번이나 새로고침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기사는 그냥 '잉걸'이었다.
내 기사가 왜 잉걸인지 알고 싶어 고민 끝에 편집부에 문의했다. 돌아온 대답은 "유해를 찾았다거나 신원이 확인됐다는 새로운 사실이 있었다면 뉴스 가치가 더 컸을 것"이었다.
그 말도 이해는 됐다. 하지만 유해의 신원이 확인돼 귀환 행사가 열리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어쩌면 편집부는 내 글의 부족한 점을 모두 말해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속상한 마음을 맥주로 달랬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기사를 쓴 지 1년이 되었다. 그전에는 수필가로 등단해서 글을 써왔다. 나는 나 자신이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등단한 뒤 다른 문우들의 글을 보니 그들의 감수성이 물기를 머금은 초록 잎이라면 내 것은 그저 마른 장작 같았다.
서정적인 생활 글보다는, 비판과 탐구의 글쓰기를 할 때 마른 장작에 비로소 불꽃이 일었다. 자료를 찾고 퇴고를 거듭해도 시간을 잊을 만큼 재밌었다. 작년 6월 그렇게 내 성향에 맞는 오마이뉴스로 오게 되었다.
시민기자로 등록하고 나서 나는 기삿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되었다. 역사에서 시작해,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지역사회와 성당 신자들,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직장 동료들까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적어두다 보니, 성당 홍보분과장으로서 홈페이지에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도 시작했다. 이 또한 시민기자로 지낸 1년이 내게 남긴 변화였다.
그렇게 귀 기울여 듣는 일에서 나아가 질문하고 끝까지 듣는 일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 딸아이 학교 학부모회 급식실 회의에서도 예전 같으면 폰을 들여다보며 집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회의 중 나온 생소한 단어나 급식 조리사분들의 상황에 더 관심을 갖고 질문했다.
나는 현재 유엔군초전기념관에서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반복되는 이야기에 슬쩍 말을 끊고 싶었을 텐데, "요즘 젊은 애들이 전쟁을 몰라서 큰일"이라는 어르신들의 그 한결같은 걱정도 이제는 끊지 않고 예전보다 잘 참아낸다. 그 말씀 속에 언젠가 기사가 될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민기자 활동은 나를 새로운 경험 앞에서 덜 머뭇거리게 했다. 학예사로부터 학교 밖 청소년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재밌겠다'였다. 그 다음은 '좋은 기사를 써보자'로 이어졌다. 값진 경험은 결국 살아있는 기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청소년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끝내고 나니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과의 추억이 퇴색하기 전에 학교 밖 청소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 기사는 내 기록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주고픈 선물이었다. 6월 29일 밤 늦게 후다닥 기사를 보냈다(관련기사
'죽미령 전투' 설명하는 청소년 도슨트의 정체... 놀랍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또다시 뱃속이 간질간질해졌다. 하지만 이번엔 잉걸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번 카톡 알림은 오후 3시가 넘어서 왔다. 담담하게 오마이뉴스 앱을 열었다. 결과는,
'버금'
남편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알렸다. 남편에게서 '잘했어'라는 답장이 왔다. 기념관 학예사님, 꿈드림센터 선생님 그리고 두 달간 고생한 아이들에게도 기사를 보냈다. 센터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관해 써주어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왔고, 아이들에게서는 자기 이름이 가명으로 되어 있어 웃기다는 답이 왔다.
잉걸의 아픔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결국, 잉걸의 아픔을 지운 것은 버금이라는 등급이 아니라 다시 쓰기 시작한 한 편의 기사였다. 이제 앞으로 받을 버금, 으뜸, 오름 기사를 향해 또 어슬렁거려야 한다. 때로는 쓰라린 잉걸을 받겠지만 산뜻하게 털고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을 것이다. 겉은 잠잠해 보여도 묵묵히 뜨거운 잉걸처럼 나는 오래도록 뜨겁게 쓰는 사람이 될 테니까.

▲겉은 잠잠해 보여도 묵묵히 뜨거운 잉걸 이제 앞으로 받을 버금, 으뜸, 오름 기사를 향해 또 어슬렁거려야 한다. 때로는 쓰라린 잉걸을 받겠지만 산뜻하게 털고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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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으로 공들인 기사가 잉걸, 그래도 쓰게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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