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흐름출판
그러다가 고통 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겠다는 소명 의식을 안고 전문 분야를 선택했다. 그는 "신경외과는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줄 것 같았다"며 인문학적 통찰로부터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치명적인 뇌 손상 환자들을 치료하며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멋진 의사가 된다. 하루 14시간씩 혹독한 수련 끝나고, 평범한 휴가도 꿈꿀 수 있을 즈음 폐암 4기라는 진단에 맞닥뜨린다.
이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와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다. 하지만 결국 미완성으로 끝이 난다. 그래서 에필로그는 그의 아내 루시가 마무리했다. 추천사가 이렇게 많은 책은 처음이었다. 내로라하는 분들이 이 책의 가치를 소리높여 외치고 있었다.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뇌 질환은 거기에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 버린다. 그런데 환자의 뇌는 죽었고 몸은 따뜻하고 심장도 여전히 뛰고 있다니,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 의사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때로는 그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뇌파가 일시 중단되며 고통받는 일도 있다. 이런 현상을 '심인성' 증후군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경험하기도 하는 졸도의 심각한 형태이다. - 116P
이 부분을 읽다가 얼음처럼 몸이 굳었다. 14년 전에 딱 이런 경우를 겪었다. 지금도 그 상황 속에 놓여있다. 폴 카라니티가 뇌 질환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가족들의 심정을 이리도 잘 알 수 있었을까? 우리도 14년 전 아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바로 재앙이었고 실제로 심인성 증후군도 겪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우리 가정 상황을 대변해 주는 대목이라 몇 번이고 읽었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도 있었다. 시한부 인생 선고 앞에 주저앉을 것인가? 하던 일을 끝까지 해낼 것인가? 저자는 정신을 가다듬고 수술 메스를 들고 사력을 다해 맡은 환자 수술을 해낸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중략)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 180P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그와 아내 루시는 아이를 갖기로 합의한다. 인공 수정으로 그의 아내 루시는 임신에 성공한다. 그러나 레지던트 수료를 앞두고 암은 급속도로 악화한다. 딸 케이티가 태어났고 아이가 8개월 되었을 때 그는 맑은 정신으로 가족들 앞에서 숨을 거둔다. 그 딸은 지금 쯤 열 살이 넘었겠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폴 칼라니티는 책 마지막 부분에 딸에게 편지를 썼다. 이후 이어지는 글은 없고 책 쓰기는 끝이 난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 214P
이 구절을 읽으며 울지 않을 아빠가 있으며 또한 감동하지 않을 자녀가 있을까? 이 젊은 의사의 마지막 기록은 과거 완료 상태가 되었다.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설사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라는 말이었으리라.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201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중등 영어 교사로 정년 퇴임 함. 사고로 중증 환자가 된 90년생 아들을 돌보는 간병 일지와 소소한 일상, 디카시, 트롯 Vlog, 엔젤넘버시, AI 노래 창작 등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