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나리꽃 가문이 사는 법?

여름에 피어 더 우아한 백합꽃

등록 2026.07.05 15:01수정 2026.07.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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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잘 가꾸는 지인이 이른 아침부터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자기 집 화단에 소담하게 핀 노란색 백합 사진이었다.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온 노란 백합꽃. 참 화려하고 아름답다.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온 노란 백합꽃. 참 화려하고 아름답다. 전갑남

아침 이슬을 머금고 예쁘게 피어난 모양새가 혼자만 보기에는 영 아까웠던 모양이다. 지인의 마음이 담긴 노란 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어제 내가 다녀온 강화군 온수리 길상공원의 풍경이 자연스레 겹쳐온다.

요즘은 시골 마을 신작로에도 꽃길이 참 잘 조성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사는 강화만 해도 온수리에 작은 공원이 새로 생겼는데, 정원이 아주 정갈하게 잘 가꿔져 있다.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단정하다. 지역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도, 그 꽃처럼 공원 초입에서부터 눈을 사로잡는 꽃무리가 있었다. 어찌나 화려하고 색이 고운지 눈이 부실 정도였다. 노란 꽃과는 또 다른 하얀 백합들이 초여름의 싱그러운 초록 속에서 당당하게 피어 있었다.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길상공원에 핀 하얀 백합꽃. 지금이 가장 예쁜 것 같다.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길상공원에 핀 하얀 백합꽃. 지금이 가장 예쁜 것 같다. 전갑남
이것도 백합이 분명하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길쭉하게 뻗은 꽃봉오리가 정말 멋지다. 백합의 본모습을 보는 듯하다.

활짝 벌어진 꽃잎을 보고 있노라니 자연스레 악기 나팔이 연상된다. 은은한 금빛을 내는 색소폰이나 트럼펫, 트롬본의 꽃부리와 참 많이도 닮았다. 저 당당한 나팔 모양의 꽃부리를 통해 소리 대신 향기를 세상으로 흘려보낼 것만 같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고 온몸이 기분 좋게 들썩인다. 반가운 마음에 허리를 굽히고 코끝을 꽃잎 가까이 바짝 대보았다.

그런데 암만해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코가 잘못되었나 싶어 옆에 피어난 다른 꽃에 다시 코를 대보아도 감감무소식이다. 진한 향기로 사람의 발길을 붙잡던 옛날의 그 백합이 아니었다.
 백합에서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합에서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갑남
 접사하여 찍은 백합꽃. 화려함이 최고이다.
접사하여 찍은 백합꽃. 화려함이 최고이다. 전갑남
 맺힌 꽃방울도 곧 이어 피어나 여러 여름날을 화려하게 장식하리라.
맺힌 꽃방울도 곧 이어 피어나 여러 여름날을 화려하게 장식하리라. 전갑남
집으로 돌아와 이 녀석들의 계보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흔히 백합을 '하얀 꽃(白)'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순우리말로 '나리'라 부른다. 또 여러 겹의 비늘잎이 포개진 알뿌리 모양에서 '백합(百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 속에는 이미 다양함을 품고 서로 어우러지는 화합의 의미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전문가들의 복잡한 식물학 분류 대신 우리네 사람 사는 가계도로 보니 이해가 쉽고 참 흥미롭다.

산과 들에서 거칠게 자라던 토종 나리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화려한 백합의 든든한 조상들이자 일가친척이었던 셈이다. 이 나리 가문의 조상들은 자식들이 꽃을 피우는 방향에 따라 재미있게 갈래를 이루었다. 하늘이 좋아 고개를 꼿꼿이 들고 하늘만 바라보며 피는 자손은 '하늘나리'가 되었고, 부끄러움이 많아 땅만 내리보고 피는 자손은 '땅나리'가 되었다. 옆을 보며 피면 '중나리'라 불렀다.

생각해보면 예전 시골길이나 뒷산에 지천으로 피던 참나리는 우거진 풀숲 사이에서도 주황색 꽃잎을 뒤로 휙 젖힌 채 참 강인하게도 피어 있었다. 온몸에 검은 점을 콕콕 박은 채 야성미를 뽐내던 그 투박한 시골 나리들이 오늘날 이처럼 세련되고 고운 모습으로 신작로와 공원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와 지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녀석들은 고개를 하늘로 당당히 들고 피는 조상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시아틱 나리' 계열의 백합인 모양이다.

요즘 공원이나 화단에 심는 이 신세대 백합들은 내가 알던 하얀 나팔백합과는 사뭇 달랐다. 노란색, 분홍색, 주황색 등 빛깔이 아주 다채롭고 추위에도 강하다. 대신 대부분 향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란다. 멀리까지 향기를 퍼뜨리는 품종도 있는가 하면, 이처럼 향기 대신 화려한 빛깔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품종도 당당한 나리 집안의 자손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상 사는 이치도 이 나리 가문의 족보와 참 닮았다. 한 피를 받고 태어난 형제자매라도 어떤 이는 대처로 나가 화려하게 이름을 날리고, 어떤 이는 고향에 남아 묵묵히 흙을 일군다. 또 우리네 인생도 세월이 흐르면 젊은 날의 진한 향기는 옅어질지 몰라도, 그 자리에 세상을 품어 안는 유연함과 은은한 황혼의 빛깔이 채워진다.

비록 화단과 공원의 꽃들이 짙은 향기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지는 못할지라도 어떤가. 척박한 길가나 새로운 공원에서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지나가는 이들의 눈을 환하게 밝혀주는 저 백합들처럼, 제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의 아름다움을 피워내면 그뿐인 것을.
 어느 집 화단에 여러 색깔의 백합이 함께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어느 집 화단에 여러 색깔의 백합이 함께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전갑남
여러 겹의 비늘잎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둥글게 몸을 포개어 하나의 알뿌리를 이루는 백합처럼, 우리네 삶도 서로 다른 색깔과 모양을 가진 이들이 겹겹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단단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게 아닐까.

오늘 아침 지인이 보내준 귀한 꽃 사진 덕분에 온종일 마음의 정원을 거닌 기분이다.

다시 길상공원을 찾게 된다면 백합들을 더 살뜰한 눈길로 바라봐주어야겠다. 초여름 볕 아래 향기 대신 빛깔로 연주하는 그 당당한 꽃들은 이미 내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여름의 교향곡이 되어 오래도록 울리고 있으니까.
#백합 #나리꽃 #여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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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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