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음마다 느껴지는 소설 <태백산맥> 속 인물들

[태백산맥 문학기행-하편] 벌교천 홍교와 소화다리, 보성여관, 금융조합, 벌교역까지

등록 2026.07.06 08:43수정 2026.07.0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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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태백산맥> 따라 벌교 여행, 여기서 예습하면 좋습니다]

나는 벌교천을 따라 홍교를 들렀다. 벌교에 있는 홍교는 국가유산인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다리 밑이 반원형인 다리를 홍교(虹橋), 아치교 또는 무지개다리라고 부른다. 벌교에서는 다리 이름 자체도 홍교로 지었다. 벌교도 뗏목다리라는 뜻의 보통명사이다. 이것도 지명 이름인 고유명사가 되었다. 원래 벌교천에 뗏목다리를 만들었으나, 수해에 의해 자주 파손되었다.


조선 영조 5년(1729)에 선암사의 승려가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선암사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인 승선교가 있다. 벌교에서 홍교는 상징이면서 근원이 되는 장소이다. 소설 <태백산맥> 속에서는 염상진 세력들이 지주들의 쌀을 빼앗아 소작인들에게 설을 잘 보내라는 격문과 함께 홍교에 놓아둔다. 벽초 홍명희가 쓴 소설 <임꺽정>에서나 나올 만한 장면이다.

 홍교
홍교 여경수

벌교에서 소화다리도 유명하다. 1931년 다리가 만들어졌던 때가 일본 연호로 소화(昭和) 6년이었는데, 주민들이 소화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소설에 무당으로 나오는 소화는 흰꽃을 뜻한다. 사전 지식이 없으면, 무당 소화에서 다리 이름을 가져왔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이곳 다리 밑에서 좌우익 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무당 소화가 굿을 통해서 억울한 영혼을 달래주니, 소화다리와 무당 소화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소화다리의 공식 명칭은 부용교이다.

 소화다리
소화다리 여경수

벌교에서 식사로는 꼬막비빔밥을 먹었다. 우리나라 문학작품의 음식 중 벌교꼬막만큼 유명한 것이 없을 것이다. 순천 사람들은 원래 순천만에서 채취되는 꼬막이 더욱 유명한데, <태백산맥> 때문에 꼬막의 원조를 벌교에 빼앗겼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다른 지역의 꼬막전문점 중 가장 많은 이름이 벌교꼬막일 것이다. <태백산맥>에서는 꼬막의 맛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꼬막을 제대로 먹어본 곳은 순천이다. 내가 느낀 꼬막의 맛은 '물컹한 식감에 알싸한 맛이 나면서도 비릿한 내음'이었다. 원래 나는 조개류 음식을 좋아한다. 그러니 꼬막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꼬막의 제철은 늦가을부터이니 시기는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꼬막무침회는 군침이 돌았다. 꼬막비빔밥을 주문했는데, 참기름과 김이 들어간 대접에 꼬막무침회, 꼬막이 듬뿍 들어간 된장국, 간장에 조린 꼬막 등 그야말로 제대로 꼬막의 맛을 보았다.


 소설 속의 남도여관
소설 속의 남도여관 여경수

<태백산맥> 소설에서는 진압군의 수뇌부들이 남도여관에서 숙식하는 것으로 나온다. 소설 속 남도여관과 비슷한 건물은 보성여관이다. 보성여관은 1935년에 지어진 2층 건물로 일제시대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전시장과 카페로 활용되어 문화행사도 자주 열리는 곳이다.

 금융조합
금융조합 여경수

보성군에서 보성읍은 행정 중심지로, 벌교읍은 상업 중심지로 양분된다. 벌교에 있는 금융조합은 1919년 3월 14일에 설립되었으며 현재까지 건물이 보존되고 있다.


지금은 주로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벌교에 금융기관이 들어선 것은 일본이 벌교를 식민지 수탈의 본거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벌교가 순천만과 여자만에 가깝고 고흥이나 순천 등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일본은 더 많은 수탈을 위해 금융조합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근대적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수탈을 제도화했던 일본의 일관된 정책이 여기서도 보인다. 사실 해방 공간에서 이념대립의 더욱 큰 갈등의 불씨는 바로 일본이 남기고 간 자산의 처리에 기인했다. 일본이 남기고 간 자산을 적산이라고 불렀는데, 미군정이 적산을 미군정에 우호적인 세력에게 헐값으로 넘겨서 진보 진영이 더욱 미군정에 반감을 갖게 되었다.

금융조합 안에서 문밖을 보니 저 멀리서 오는 사람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금융조합에 제때 돈을 갚지 못해, 힘없이 걸어오는 소작농의 모습이 떠올랐다. 과거 금융조합 앞길이 순천, 보성, 고흥으로 가는 길의 교차로였다고 한다.

나는 벌교역 남쪽에 있는 중도방죽을 바라보았다. 방죽을 쌓은 일본인 이름인 나카시마의 한자식 이름인 중도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설 속에는 조선인들을 동원해 방죽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방죽을 경계로 밖으로는 갯벌이, 안으로는 논으로 나뉜 풍경이다. 모내기를 지난 철인지라 푸릇푸릇 자라나는 볏잎이 정겨웠다.

나 역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방죽이 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 위에 있던 후평지이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이 동원되어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저수지 아래로 넓은 들이 논으로 쓰이고 있다.

방황하던 젊은 날 그 저수지를 가면,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감상을 느꼈다. 지금도 어머니가 상속으로 받은 농토가 그곳에 있다.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둑을 쌓는 데 동네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벌교역
벌교역 여경수

이번 답사의 마지막은 벌교역이었다. 벌교역은 1930년 12월 경전선이 개통되면서 세워졌다. 경전선은 광주에서 삼랑진을 잇는 기차선으로 중간에 진주와 순천이 지나간다. 경전선이 만들어지면서 벌교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벌교는 낙안현의 포구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행정구역상 벌교가 보성에 속했으나, 읍으로 승격되는 것은 보성읍보다 벌교읍이 먼저였다.

2025년도에는 목포역에서 신보성역을 잇는 목포보성선이 새롭게 신설되었다. 벌교에서 목포까지 가는 시간이 더욱 단축되었다. 지금의 역사는 1987년에 지은 것이다. 벌교역은 <태백산맥>의 마지막 편에 등장한다. 염상진이 죽은 이후, 군경은 그의 목을 벌교역 앞에 매단다. 염상구가 나타나서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라고 외치는 장면은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탁월한 장면이다.

형제 간 이념 대립이 형제애로 극복되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 해방 이후 국가에 의해 시신이 모욕된 사례가 있었다. 이덕구는 제주 4·3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 직책을 수행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의 시신을 제주 관덕정 앞에서 십자가 모양의 나무틀에 매달아 전시했다. 죽은 이후에도 자행된 국가폭력의 정점이었다.

나는 벌교역에서 부산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무궁화호가 벌교역을 지나자마자 철다리가 나왔다. 염상구가 벌교의 건달과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가장 오래도록 견디는 시합을 했던 공간이다. 염상구가 이념대립의 공간에서 자신을 필요로 했던 국가에 의해 이용만 당했는지, 아니면 그도 그 나름의 삶의 좌표가 있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30년 전 검은색 표지에 책 제목이 붉은색 한자로 적힌 강렬한 책을 가까이 두고 읽었던 기억이, 이번 답사를 통해서 새록새록 살아났다. 소설 속 인물들은 허구였지만, 그들이 걸었던 공간은 여전히 벌교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곳 벌교에서는 소설 속의 인물들보다 더욱 그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들의 삶이 존재했을 것이다.
#태백산맥 #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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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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