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나는 글을 쓸때 주로 카페를 이용하고 있다. 그곳이 나의 서재다.
박승일
경찰관이 된 뒤 오랜 시간 나는 주로 내근 부서에서 근무했다. 행정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큰 사건도,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많지 않았다. 하루하루는 성실했지만, 글감이 될 만한 특별한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글도 뜸해졌다. 전환점은 경찰의 최일선인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근무하면서 찾아왔다.
112신고는 매일 반복된다. 하지만 같은 신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같은 골목에서 발생한 신고라도 사람은 달랐고, 사연은 달랐으며, 그 안에 담긴 감정도 모두 달랐다. 울면서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누군가는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경찰을 찾기도 했다.
현장을 경험할수록 깨달았다. 세상에는 기사보다 더 기사 같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블로그에도 올렸다. 특별한 사건만 골라 쓰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하루 속에서 발견한 작은 의미를 기록하려고 애썼다. 시민들과 나눈 짧은 대화, 신고 현장에서 느낀 책임감, 경찰관으로 살아가며 배운 삶의 태도까지 글감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그 기록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112순찰차 출동합니다'를 매주 한 편씩 연재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고, 마감은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퇴근 후 노트북 앞에 앉아 새벽까지 원고를 다듬은 날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원고지 3천 자를 쓰는 데 다섯 시간 넘게 걸렸다.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 한 단락을 완성하는 데 한 시간을 쓰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자, 글 쓰는 속도보다 생각을 정리하는 힘이 먼저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은 같은 분량을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재능이 늘었다기보다 꾸준함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물론 글을 쓰는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재작년에는 출판을 결심하고 기획서와 원고를 정리해 여러 출판사에 보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냉정했다. 한 곳, 두 곳, 세 곳…. 거절 메일은 열 통이 넘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지금은 출간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먼저 저희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보내 주신 원고는 내부에서 다방면으로 검토하였으나, 고심 끝에 아쉽지만, 출간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글을 써 왔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컴퓨터를 켜는 것조차 싫었다. '역시 책은 특별한 사람만 내는 건가'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히려 나를 다시 배우게 했다.
이미 책을 낸 선배들을 찾아가 조언을 들었고, 글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칭찬보다 지적을 더 많이 들었다. 문장이 길다는 말도 들었고, 감정을 조금 더 절제하라는 조언도 받았다.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그 모든 말은 결국 다음 원고를 조금 더 낫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동대에서 근무하던 2024년에는 매주 원고를 썼고, 그다음 해에는 지구대로 옮긴 뒤에도 연재를 멈추지 않았다.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그저 한 주에 한 편, 그 약속만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지난해 겨울이었다.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자신을 내 브런치 글을 오래 읽어온 구독자라고 소개한 편집자는 책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순간 믿기지 않았다. 수없이 받았던 거절 메일 뒤에 찾아온 한 통의 연락이었다.
경찰관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설렘이 밀려왔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꿈이 아주 조금 현실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며칠 뒤 서울의 한 카페에서 편집자를 만났다. 그 무렵 나는 서울을 떠나 세종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세종에서 일하고, 서울을 오가며 출판 준비를 시작했다. 바쁜 일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찾아온 선물이 아니었다. 수백 번의 퇴근길, 수없이 고친 원고, 열 번이 넘는 거절,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던 평범한 밤들이 모여 만든 결과였다. 그러던 내게 큰 자신감을 주는 일이 생겼다. '2025년 하반기 올해의 뉴스게릴라'에 선정된 것이다. 꿈만 같았다. 나는 그때부터 확신이 생겼다.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었다.
많은 직장인이 "나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서 책을 낼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삶보다 자신의 하루를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 결국 한 권의 책을 만든다.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경찰관이든, 회사원이든, 교사든, 자영업자든 성실하게 살아낸 시간은 모두 누군가에게 들려줄 가치가 있는 이야기다.
오늘 10월 출간을 앞두고 시작한 이번 연재에서는 화려한 출간 성공담보다 그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해 보려고 한다. 원고를 쓰며 좌절했던 순간, 출판사와 계약하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겪게 될 시행착오를 있는 그대로 나누고 싶다. 혹시 지금 자신의 꿈을 '언젠가'라는 말 속에 미뤄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그 언젠가를 오늘로 바꾸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다음 글에서는 열 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한 뒤에도 다시 원고를 쓰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과, 그 거절이 오히려 내 글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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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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