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 법제화 요구 국회 앞 1인시위 2025년 11월 13일에 시작하여 2026년 3월까지 진행되었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2026년에도 국회 앞 1인시위는 이어졌고, 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의활동도 활발히 진행되면서 5년여의 노력 끝에 마침내 2026년 3월 31일, '지방자치법 제17조의2. 주민자치회의 설치 근거'가 담긴 조항이 국회를 통과했다.
처음 창립을 준비하던 사람들, 전국을 다니며 토론회를 열던 활동가들, 국회 앞 1인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 지역에서 주민들을 설득하던 주민자치위원들 이름도 남기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힘을 보태 준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떠올랐다. 그날의 기쁨은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낸 결실이었다. 우리는 법 하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주민이 지역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역사 속에 새겨 넣었다.
법은 출발선이다, 이제 주민자치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법은 목표가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법이 만들어지면 주민자치가 완성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그렇지 않다. 법은 길을 열어 줄 뿐,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은 주민자치회의 존재를 법률에 명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다. 시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운영되던 주민자치회가 이제는 대한민국 지방자치법이 인정하는 제도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비록 "둘 수 있다"는 임의규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 주민자치회는 더 이상 행정이 필요할 때 운영하는 사업이 아니라, 주민이 지역 문제를 함께 결정하고 해결하는 공적인 제도로 인정받게 되었다.
주민자치회의 역할은 이제부터 달라져야 한다
오랫동안 주민자치회는 문화 프로그램 운영이나 주민자치센터 행사 중심의 조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것 역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달라진 환경에서 주민자치회는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주민의 의견을 모으며, 행정과 함께 해결방안을 만들어 가는 지역 거버넌스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행사를 잘 치르는 조직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조직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행정안전부가 배포한 '제8차 주민자치회 참고조례 전부개정 안내서'에도 분명하게 담겨 있다.
이번 개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주민총회와 자치계획의 위상이 크게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주민총회는 연 1회 이상 반드시 개최되어야 하며, 주민자치회는 지역의 미래를 담은 자치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동안 주민 의견을 듣는 데 머물렀다면, 이제는 주민이 직접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민총회는 단순한 행사나 보고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의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주민 스스로 마을의 미래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
자치계획 역시 형식적인 문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역을 조사하고, 주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실행 가능한 과제를 발굴하여 주민참여예산과 연결하는 실천 계획이어야 한다. 주민자치회의 진정한 역량은 바로 이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제도가 바뀌었다고 주민자치가 자동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주민자치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과정이며, 주민자치회는 그 학습이 이루어지는 가장 가까운 학교가 되어야 한다. 지역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 공공정책을 이해하는 능력, 주민 의견을 갈등 없이 조정하는 능력,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능력, 그리고 성과를 평가하고 다음 과제로 연결하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결국 주민자치회도 하나의 공공 리더십 조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속적인 교육과 학습을 통해 정책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함께 변해야 한다
주민자치회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행정 역시 달라져야 한다. 아직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자치회를 행정을 돕는 협조기구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법제화 이후에는 이러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행정의 하위조직이 아니다. 지역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정책 파트너이며, 주민의 목소리를 제도권으로 연결하는 공식적인 협력 주체다.
행정은 주요 정책과 예산 정보를 주민자치회와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하며, 주민들이 만든 자치계획이 주민참여예산과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행정이 권한을 독점하는 시대에서, 주민과 함께 책임을 나누는 시대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협치'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
고령화와 인구감소, 돌봄과 복지, 기후위기, 공동체 해체, 청년 유출 등 지역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행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반대로 주민자치회 역시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 주민자치회는 통·리 조직,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학교, 사회복지기관, 사회적경제 조직,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와 협력하는 지역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주민자치의 성공 여부는 주민자치회 혼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앞으로 주민자치회의 경쟁력은 '사업'이 아니라 연결의 힘이 될 것이다.
대표성이 곧 신뢰다
이번 참고조례 개정에서 또 하나 의미 있게 바라본 부분은 주민 대표성의 확대이다. 거주기간 요건이 완화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외국인 주민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청년과 사회적 약자의 참여 확대도 명시되었다. 매우 중요한 변화다.
지역은 이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 역시 다양한 주민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세대나 일부 주민만 참여하는 조직으로는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주민자치회의 대표성은 단순히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다양성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가의 문제이며, 그것이 곧 주민자치회의 신뢰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주민자치 2.0 시대의 출발선
주민자치 2.0은 결국 사람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주민자치를 제도라고 이야기한다.
주민자치는 권한을 나누어 주는 행정제도가 아니다. 지역 주민이 스스로 지역사회의 주인이 되어 가는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행정은 제도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주민이 배우고, 주민이 토론하고, 주민이 결정하고, 주민이 책임지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주민자치는 제도가 아니라 삶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번 법제화를 주민자치 2.0 시대의 출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을 자랑하는 일이 아니라, 법이 지역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의 활동을 돌아보며 지난 5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법 하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주민이 지역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증명해 냈다."
법제화의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고, 정치 환경은 수차례 바뀌었다. 국회 문턱은 높았고, 때로는 모든 노력이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경험도 했다. 그럼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민자치는 누군가의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이름도 없이 활동한 주민자치위원들, 마을활동가들, 연구자들, 공무원들, 시민사회단체와 지방의회, 그리고 국회 안팎에서 함께 뜻을 모아 준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오늘의 법제화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넓게 연결되어야 한다
주민자치는 주민자치회만의 힘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마을공동체 조직과 사회적경제 조직,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자원봉사단체, 학교, 복지기관, 청년모임, 생활문화 공동체 등 다양한 지역 주체들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주민자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의 '주민자치 2.0'이라고 생각한다.
행정과 주민이 협력하고, 주민과 주민이 연결되며, 공동체와 공동체가 서로 배우는 구조. 그리고 지역의 문제를 행정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안에서 함께 해결해 나가는 힘. 이러한 연결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주민자치의 새로운 모습일 것이다.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주민자치를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와의 연계, 지역 기반 중간지원조직의 활성화, 주민자치 활동을 뒷받침할 법인과 네트워크의 육성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주민자치는 더 이상 개별 조직의 활동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연결하는 생태계로 발전해야 한다.
지난 5년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다.
송문식
(사) 마을 이사장 / (사)열린사회시민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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