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사업 하나도 달라진다, 주민자치가 '자치'가 되려면

[주장] 주민 참여·관계망·책임이 빠진 봉사는 자치가 아니다

등록 2026.07.13 11:48수정 2026.07.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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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국회에서 주민자치회의 법적 위상을 높이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예전에는 주민자치회가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되고 시범운영 성격을 지녔으나, 이제는 일반법률인 '지방자치법'으로 주소를 이전하고 시범 단계를 지나 본격 시행된다.

지방자치법 개정에 대한 주민자치 활동 단체와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의 기대가 무척 높다. 2021년부터 주민자치회를 지방자치법에 명시하고 역할도 강화하자는 운동을 벌여온 '주민자치법제화 전국네트워크'는 1차 목표를 달성했다며 환영했고,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가 13년 만에 시범운영을 종료하고 본격 가동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보도자료 제목을 '주민자치회 대전환!'으로 뽑았다.

주민자치회 대전환?

분명,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은 주민자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다. 하지만 이를 '주민자치회 법제화'라고 부르는 건 법 개정의 내용을 지나치게 포장하여 오해를 줄 수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내가 만난 주민자치회 임원들은 주민자치회 관련 법이 없었는데 이제 법적 근거가 생겼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실제는 새로 법제화된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회 법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주민자치회의 법적 주소지가 특별법에서 일반법으로 이전하였고, 시범 사업에서 본격 사업으로 격상되었다.

반면 이번 법 개정의 한계도 분명하다. 기존 특별법처럼 지방자치법에서도 주민자치회 설치는 "읍면동에 둘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이다. 주민자치회가 풀뿌리 자치의 기본 조직이라면 당연히 "설치한다" 여야 하건만 선택으로 남겨두었다. 주민자치회의 '대전환'이라고 말하기에는 법조문이 약하다.

주민자치회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 문구도 여전히 "할 수 있다"이다. 주민자치회는 풀뿌리 조직으로 자율권을 가지지만 지역 활동을 위해서는 사무 역량 지원이 절실하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주민자치회 대부분이 사무국 자원이 빈약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민자치회의 자치권은 존중하되 기본 사무 인력은 공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정 지방자치법도 기존 특별법과 동일하게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에 머문다. 이러니 법의 옷만 바꾸었을 뿐 내용에선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주민자치회 법제화'에 담긴 혁신 열망


그런데도 주민자치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지방자치법 개정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법 개정 조문 내용보다는 그간 주민자치회가 제대로 활동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고, 이것을 법 개정으로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주민자치회 법제화'로 부르고 싶을 만큼 현격한 변화를 원하고 있는 거다.

실제 법 개정을 전후하여 주민자치회 변화를 향한 발걸음이 활발하다. 우선 2021년부터 주민자치 학계와 현장 활동가들이 '주민자치회 법제화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였고, 이제는 법 개정을 계기로 실질적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주민자치권 확대'를 국정과제로 정하고 주민자치회 법적 위상 강화, 주민 선택 읍면동장 임용제 시범 실시, 주민소환제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대통령 직속인 지방시대위원회는 혁신자치전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주민자치회 혁신 방안을 논의하였으며, 지난 6월에는 주민자치회 역할을 확장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안전부 '참고 조례'가 발표되었다.

이 참고 조례는 정부가 발간한 문서이지만 진취적 주민자치 학자들과 활동가들의 노력이 깃든 조례 모델이다. 참고 조례대로 지자체 조례가 개정되고 실제 주민자치 활동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의 주민자치는 풀뿌리 자치로서 성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자치회가 민생행정도 협의하고 위탁도 맡자

참고 조례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주민자치회 역할로 주민총회, 주민 화합 행사 등 고유의 주민자치 활동과 함께 지자체 행정에 대한 협의, 수탁 권한을 강조한다.

여기서 협의는 읍면동 행정기능 중 주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에 대하여 주민자치회가 읍면동과 협의하는 활동을, 수탁은 읍면동 행정기능 중 주민자치센터, 주민커뮤니티센터 등 주민 편의 서비스를 주민자치회가 위탁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민자치회가 자체 자치 활동을 넘어 행정 기능의 일부까지 참여하거나 맡으라는 적극적 제안이다. 사실 주민자치회의 위탁 권한은 이미 기존 특별법에 있고, 현행 조례에도 협의와 위탁 모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부여된 역할이나 실제 이를 행사한 경우는 드물었다. 규정에는 있으나 현실에서 거의 구현되지 않는 권한으로 잠자고 있다.

그래서 참고 조례가 나섰다. 협의 업무 대상으로 읍면동의 지역발전계획 수립, 환경 기초 시설이나 공장 시설 설치 등을 구체적으로 예시하며 주민자치회에 이 권한 사용을 제안한다.

위탁 업무도 현재 일부에서만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작은 도서관, 공원·공중화장실·공용주차장 관리 등을 조례에 열거하며 참여를 독려한다.

이 외에도 참고 조례는 주민자치회 간사 및 사무국에 대한 지자체 지원 조항을 신설해 행정·재정적 지원 근거를 부각시키고, 지역사회 통합 돌봄, 주민참여예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지역 주민 활동에서 주민자치회가 더 많은 역할을 하도록 하였으며, 주민자치회가 마을 비영리법인이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했다. 요약하면,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에서 주민 대표 조직으로 지역공동체 형성에 주도적으로 나서라는 요청이다.

자원봉사를 넘어 풀뿌리 주민자치로

결국 공은 주민자치회 손에 있다. 관련 제도와 근거가 아예 없었던 게 아니다. 이번에 소관 법률이 명확해지고 역할이 구체적으로 강조되었을 뿐이다.

앞으로 이 역할을 주민자치회가 소화하고 추진할 수 있느냐가 과제이다. 조만간 행정안전부 참고 조례를 토대로 지자체마다 조례 개정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자치회가 자신의 역할을 재인식하고, 실질적인 활동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주민자치가 지역사회 풀뿌리 자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주민자치회 위원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자원봉사 하러 주민자치회 왔다'이다. 지역 주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품을 제공하겠다는 선의의 말이다. 하지만 자원봉사에는 활동의 선행이 강조될 뿐, 해당 주민들도 함께 '참여'하면서 '관계망'을 형성하고 활동 결과를 '책임'지는 '자치'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

텃밭 사업을 사례로 살펴보자. 보통 주민자치회 텃밭 사업은 밭에 감자 같은 단일 작물을 심은 후 수확물을 박스에 담아 지역 취약 주민들에게 배달한다. 물론 이 봉사만으로도 의미는 있으나 아쉬운 건 '주민자치회 위원들만'의 활동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해당 주민은 단지 수확물을 전달받을 뿐이다. 텃밭 사업이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공동체 자치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른 방식을 상정해 보자. 경로당 노인 개인 혹은 소모임에 담당 구역을 조금씩 배정하여 함께 텃밭을 가꾸면 어떨까. 자신이 원하는 작물을 심고 직접 키우는 공동체 텃밭이다. 여기서 어울려 도시농업 공부도 하고, 서로의 작물을 살펴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원두막이나 평상에서 바둑이나 장기도 둘 수 있다.

건강, 문화, 체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텃밭이 금세 동네 쉼터, 사랑방 공간이 된다. 이 텃밭 사업에서 작물은 소재일 뿐이다. 텃밭을 매개로 주민들이 함께 책임지며 이웃망을 형성하는 공동체 활동이 핵심이고 이것이 바로 주민자치이다.

행신2동 주민자치회가 가꾸는 연꽃밭사업 주민들과 함께 연잎을 따고 연잎밥을 만들며 겨울에는 동네 '추억의 썰매장'으로 변신한다.
▲행신2동 주민자치회가 가꾸는 연꽃밭사업 주민들과 함께 연잎을 따고 연잎밥을 만들며 겨울에는 동네 '추억의 썰매장'으로 변신한다. 오건호

주민총회가 진정한 '총회'가 되려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주민자치회의 다른 활동도 풍부해진다. 주민총회를 보자. 보통 주민자치회의 꽃이라 불리는 활동이다. 형식상 풀뿌리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지만 실제 주민 참여가 많지 않기에 '총회'라고 부르가 민망한 게 현실이다.

만약 일상적으로 공동체 텃밭 활동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텃밭을 함께 하는 주민들이 주민총회에 참여하여 텃밭 관련 마을 의제도 제안하면서 총회 자리가 풍성해질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주민자치회가 운영하는 문화센터 강좌 사업 방식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단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원'을 넘어 수강생들이 자신이 배운 내용과 장기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활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주민총회, 동네 공원 등에서 수강생들이 공연과 전시 활동을 벌이고, 주민 축제나 연말에는 뽐내기 경연대회도 할 수 있다. 여기서도 문화 강좌는 소재일 뿐이다. 배움을 매개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고 지역사회 관계망을 형성하는 게 핵심이다.

나아가 주민자치회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주민 모임, 직능단체, 공공단체 등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다른 조직과 달리 제도적으로 부여된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책임도 크다.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 주민 조직 중 하나로만 머물지 말아야 한다. 주민자치회 활동이 몇 개 주민자치 보조 사업에 한정되고, 활동도 주민자치회 위원만으로 이루어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

이제 바통은 주민자치회 손에

세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주민 절반이 노인이 되는 울트라 초고령사회가 다가오고 있고, 기후 위기를 일상생활에서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지역사회에서 서로 어울려 돌보고, 동네에서 자원을 순환하는 생태적 삶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지역사회 대표 조직으로 주민자치회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고, 주민자치회 입장에서는 책임이 무겁다.

주민자치회 위원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 모두가 주민자치 성원이다. 앞으로 주민자치회 활동에 지역 주민이 적극 참여하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지역사회 주민 모임, 마을공동체와 협력하여 사업을 벌여야 한다.

기회가 왔다.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을 '주민자치회 법제화'라고 부를 만큼 주민자치회의 변화를 바라는 열망이 높다. 주민자치회가 모델로 삼을만한 참고 조례도 만들어졌다. 이제 바통은 주민자치회로 넘어왔다. 주민들이 함께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책임지는 풀뿌리 자치가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지방시대위원회 혁신자치전문위원회 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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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회 #지방시대위원회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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