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흥도 묘소 가는 길 입구에 작은 홍살문이 서 있다.
김명희
대구 금호강 팔달교에서 40km가량 북상하면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닿는다. 이 마을의 산108번지에 '엄흥도 묘'가 있다. 엄흥도(嚴興道, 1404~1474) 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주인공으로, 단종의 죽음을 증언하는 실존 인물이다.
엄흥도 관련 유적은 강원도 영월, 경북 문경, 울산 등지에도 있다. 즉 대구에서는 군위의 것이 가장 가깝다. 5일 일기예보가 폭염 또는 폭우를 경고하고 있으므로 먼 곳들은 다음 기회에 가보기로 하고 우선 화본리 산108을 향해 출발한다.
금호강 팔달교에서 1시간 거리의 엄흥도 묘
산성면 면소재지 화본 사거리 모서리에 '엄흥도 묘 ←800m'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북진하니 왼쪽 산비탈 도로변에 작은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은 가까운 곳에 사당이나 묘소가 있다는 표식이다. 계단 입구 안내판의 소개문을 고스란히 옮겨본다.
"충의공 엄흥도 역사탐방로 : 시호는 충의(忠懿)]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영월로 귀양가게 된 단종(端宗)이 사육신 사건으로 인하여 세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세조의 엄명에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단종의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이때 영월(寧越)의 호장(戶長)으로 있던 엄흥도 선생은 친히 관까지 준비하여 단종의 장례를 치르고는 은거하여 생을 마쳤으며 현종 때 송시열의 건의로 그의 자손이 등용되고, 영조 때 충의(忠義)를 기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뒤에 공조참판이 추증되고,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엄흥도 선생이 은거한 지역으로 영월, 청주, 군위의 세 지역 중 하나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국학연구논총 제3집에 발표된 논문 「충의공 엄흥도의 삶과 묘소 진위에 관한 고찰」을 통해 엄흥도 선생은 군위에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으며 군위에서 전해지는 엄흥도 묘가 진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밝혀졌다."
안내판의 소개문을 요약하면 "단종이 죽임을 당했을 때 세조는 그 시신을 거두는 자의 삼족을 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무도 나서지 못했지만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을 땅에 묻고 장례를 치른 뒤 가족들과 함께 숨어 살았다. 세월이 흘러 엄흥도가 충신으로 추앙받아 시호가 내려지고 후손에게 벼슬이 주어졌다. 엄흥도의 묘는 군위의 것이 진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쯤 되겠다.

▲ 엄흥도 묘
김명희
엄흥도 묘의 내력을 알았으니 이제 참배 차례이다. 홍살문 아래 첫 계던에 발을 올리는데, 왼쪽 바닥에 나뭇가지들이 여럿 놓여 있다. "지팡이만한 나뭇가지들이 왜 여기 있어?" 하자, 일행 중 한 사람이 "지팡이만한 나뭇가지들이 아니라 지팡이들이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유심히 보니 그냥 나뭇가지들이 아니다. 군위군청에서 이곳 답사자들을 위해 세심하게 준비해둔 지팡이들이다.
지팡이를 하나씩 짚고 계단을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거리가 나오는데, 계속 앞으로 오르면 묘소에 닿고 오른쪽으로 가면 정자가 나타난다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 답사는 묘소 참배가 핵심이므로 당연히 직진이다. 계단을 스물쯤 오르니 넓은 묘역이 펼쳐지고 엄흥도 묘가 정면으로 보인다. 곧장 묘소 앞에 서서 단종이 죽은 1457년(세조 3), 그리고 그 이후 엄흥도의 삶을 생각하며 묵념을 올린다.

▲ 엄흥도 묘에서 약 300계단 올라가면 정자가 있다.
김명희
묵념을 마치고 삼거리로 내려와 왼쪽으로 정자를 찾아 다시 올라본다. 내심 정자에 가면 대단한 전망을 즐길 수 있으려니 기대를 품고 걷는다. 하지만 정자에 닿고 보니 사방이 나무로 에워싸여 있어 넓은 들판도 시원한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홍살문 앞에서 본 안내판이 정자 왼쪽에 또 있어 군위군청의 친절은 재삼 확인할 수 있다.
답사를 마치고 하산해 주차장으로 간다. 영화 흥행 이후 이곳을 찾는 답사자들이 늘어나자 군위군청이 새로 만들어놓은 주차장이다. 폭우 경보가 있었는데 비가 내릴 기미는 없고 날은 그저 짱짱하기만 하다. 지도를 펼쳐들고 다음 행선지인 화본역의 위치를 재확인한다. 800m 거리의 화본 사거리로 돌아나간 뒤 그곳에서 우회전하여 500m쯤 가면 된다.
안까지 구경할 수 있는 희귀한 급수탑
화본역은 역사와 철길 주변이 예쁘고, 급수탑이 특히 볼 만한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급수탑은 증기 기관차가 운행되던 시절이 남긴 보기드문 유적이다. 한여름에 화본역 25m 급수탑 안에 들어가 보면 흡사 냉장고에 들어온 것처럼 시원하다.
1950년대 이전 이곳에서 일한 사람들이 높은 벽에 써놓은 '석탄 정돈 석탄 절약' 구호 관람도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체험할 수 없는 '시간 여행'이다. 강조하자면, 엄흥도 묘와 폐역 급수탑이 있는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답사는 대구여행의 별미이다. 이곳에서 팔공산 쪽으로 5km가량 들어가면 나오는 국보 '제2 석굴암(공식 이름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 답사까지 추가하면 더욱 금상첨화라 하겠다.

▲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의 기차, 철길, 급수탑이 있는 전경(왼쪽 사진)과 가까이에서 본 급수탑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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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부터 자영업자로 살아 왔고, 이제 은퇴를 했습니다. 어릴때부터 꿈꾸었던 여행을 다니고, 문화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삶의 여백을 가꾸어볼까 합니다. 가능하면 책도 한 권 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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