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오마이뉴스
그렇게 대구 알파시티에서 성사된 대낮의 점심. 이제 막 책을 낸 자는 <선을 넘는 북클럽> 저자이자 대구 동네책방 hago(하고)의 주인장, 마지막 저자 교정을 보는 자는 프리랜서 편집자 그리고 계약서도 안 썼는데 원고 마감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자는 (짐작했겠지만) 나다(관심 있는 출판사 편집자님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모듬 생선구이 접시에 놓인 갈치 살을 바쁘게 발라 먹는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오갔다. 누가 글 쓰는 사람들 아니랄까 봐 '토할 때까지 고친다'고 해서 '토고'라고도 부르는 퇴고 성토대회가 열린 것. '퇴고하는 마음'을 쓰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귀가 쫑긋.
올해 초 어렵게 원고를 넘긴 지 한참 만에 저자 교정지를 받아 보니 고쳐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이야기. 출판사 편집자가 고치라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아서 더 불안하다는 이야기. 이미 책 낸 자는 뭔가 다를 것 같았는데, 그 역시 막판에 원고를 읽을수록 부족한 점만 보였다는 이야기. 어쩐지 더 고쳐야만 할 것 같은데 편집자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서 역시나 불안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마감이 있는 것 아니겠나, 어쨌거나 마감했으면 끝난 거지" 이런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치, 맞지" 하는 장단 맞추기용 멘트가 이어졌다. 하지만 경험상 이리 엄살을 피운 사람 중에 책 내용이 좋지 않았던 경우는 별로 없었기에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독후 결과 이는 사실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원고를 그렇게 많이 봐도 결과물은 늘 부족해 보인다는 거다. 욕심인지 미련인지.
쫑긋 세워졌던 내 귀가 활짝 열린 순간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의 원고를 붙잡고 있을 때 출판사 편집자가 들려줬다는 말이 나올 때였다.
"출판사 편집자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냥 거기까지가 작가님이 쓸 수 있는 글인 거예요. 말하자면 지금은 그 정도 글쓰기 단계인 거죠'라고."
누군가는 뼈 때리는 말이라고 했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이건 작가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여러 작가를 경험한 편집자가 할 수 있는 현명한 조언이다. 더 고치고 싶고, 다른 사례를 넣어야 할 것 같고, 더 알맞은 인용문으로 바꿔야 하나 싶은 마음이 어슬렁거릴 때. 한 마디로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찾지 못한 것 같아 애가 탈 때.
그럴 때 특효약은 하나다. 지금 여기까지가 최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시간이 더 있다고 해도 고칠 기회가 더 생긴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한계를, 역량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마감을 못 했으면 모를까, 일단 했으면 땡인 거다. 마감 앞에서 겸손하기. 그래야 다음 단계로,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나중에 부족함을 깨닫는 것도 좋은 배움이다. 그렇게 계단을 밟고 나가야 성장할 수 있다(당연히 정체기도 있다).
마감 있는 글을 쓰자
배우가 그때만 할 수 있는 연기가 있는 것처럼. 가수가 그때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화가가 그때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있는 것처럼. 쓰는 사람 역시 그 순간에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나에게도 흑역사 같은 글이 있다. 부족한 게 넘쳐 보이는 글이지만 가득 들어찬 것도 있었다. 그게 뭐냐고?
순수했던 시절의 나. 열정에 비해 서툴고 거친 나. 상처받은 나와 불안에 빠진 나. 그 안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애쓰던 나. 그 와중에 내가 찾아낸 기쁨과 행복. 그리고 깨달음. 지금은 별로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열정과 순수가 그 안에 있었다. 그 쨍한 흔적들이 언젠가의 나를 자극하기도 했고.
두 달 전엔가 신문 칼럼에서 '사람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다'라는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문장을 읽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물건을 만들고 배웠을까. 20년 넘게 검토한 셀 수 없이 많은 기사가 떠올랐다. 기사도 물건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때 몇 권의 책이 떠올랐다.
그렇지, 난 책을 만들었지. (일로 쓴 글을 제외하고) 퇴근하고 글 써 온 시간을 따져보니 올해로 10년째.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쓴 글로 처음 책을 내던 때, 내가 내 수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안 되겠다고, 못 하겠다고, 이 상태로는 책을 못 내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계속 쓸 수 있었을까. 친구에게 "이전보다 글이 더 나아졌더라"는, 가슴 뻐근한 소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뛰어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선 흑역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쓰는 게 더 대단하다. 전진도 하고 후퇴도 하면서 결국은 나아가는 게 더 근사하다. 뭐든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어려운 거니까. 오늘의 결론, 마감 있는 글을 쓰자. 퇴고도 딱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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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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