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두연 의원이 친필로 작성한 탄원서. 왼쪽이 황두연의 탄원서 첫 장이고 오른쪽이 화질을 개선한 이미지이다.
정병진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공산주의자로 몰려 즉결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황두연 전 국회의원(1905~1984)이 이듬해인 1949년 9월 검찰에 제출한 탄원서가 복원됐다. 이 문서는 물에 젖어 글씨가 번지고 변색해 판독이 어려웠으나 화질 개선과 AI 판독 등을 거치면서 그동안 식별되지 않았던 내용이 상당 부분 확인됐다.
복원된 탄원서에는 여순사건의 혼란 상황을 이용해 황두연 의원과 박찬길 검사(1910~1948)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제거하려 했던 인물들과 그 배경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특히 황 의원은 1948년 5·10 총선에서 자신에게 패배한 경쟁 세력과 일부 우익 인사들이 허위 정보를 조작해 자신을 '인민재판 배석판사'로 몰았다고 주장하며 관련자들의 실명을 거론했다.
순천 기독교계와 우익 진영의 지도자
황두연은 전남 여수 돌산군 남면 우학리 출신으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고흥 금산면(거금도)으로 이주했다. 이후 고흥과 순천을 중심으로 교육·종교·행정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기독교 계통학교인 전주 신흥학교를 졸업한 뒤 고흥 금산 영천학원 교장을 5년간 지냈고, 이후 순천 안력산병원에서 10년 동안 회계 업무와 서무 과장직을 맡았다. 1929년 말부터는 순천읍교회(현 순천중앙교회)에 출석하여 1940년 5월에는 장로로 임직했다. 하지만 그는 그해 9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위한 원탁회 활동 혐의로 체포돼 약 4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순천중앙교회 장로로 복귀했지만 안력산병원이 폐쇄되면서 새로운 활동 무대를 찾았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순천지부장을 맡아 반탁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노총과 대한독립농민총연맹(대한농총)에서 활동하며 전라도 대의원과 순천군연맹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 미군정 시기에는 군정청의 임명으로 순천 부읍장과 읍장 직무대행을 거쳐 읍장을 맡았고, 이후 미 공보원 강사로도 활동했다. 당시 황두연은 순천지역 기독교계와 우익 진영을 기반으로 순천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당시 순천지역은 호남선교 본부가 있던 곳이라 기독교세가 강했다.
1948년 제헌국회 선거를 앞두고 황두연은 미 공보원 강사직을 사임한 뒤 대한농총과 독촉국민회의 추천을 받아 순천갑구에 출마했다.
그의 상대는 한민당 후보 김양수(1896~1971)였다. 김양수는 순천 지역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학과 미국 컬럼비아대학,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였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논설위원, 기업인 등으로 활동했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됐다가 광복을 맞았다. 그 역시 순천읍교회에 출석하며 순천지역 면려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기독교계에 일정한 기반을 갖고 있었다.
출신과 학력, 경제력, 선거 자금력 등을 감안하면 황두연의 열세가 예상됐다. 더욱이 김양수 측은 황두연의 핵심 지지층인 기독교계 표를 분산시키기 위해 순천중앙교회 출신 박옥신 후보(애국부인회)를 출마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황두연은 1만4677표를 얻어 1만1508표에 그친 김양수를 3169표 차로 크게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지역사회에 팽배했던 한민당과 지주 세력에 대한 반감이 승패를 갈랐던 것으로 평가된다.
여순사건과 죽음의 문턱
그러나 선거 과정의 앙금은 여순사건의 소용돌이에서 제거를 위한 정치 테러로 이어졌다. 황 의원은 농림부 장관 조봉암의 부탁으로 정부의 미곡 매입을 지원하기 위해 1948년 10월 19일 순천으로 내려왔다. 다음 날 봉기군이 순천에 진입하자 그는 구례인(크레인) 선교사의 집에 몸을 숨겼다.
그곳에는 김규당 목사와 김상권 목사 등이 함께 있었고, 이들은 3층 물치장에 짐짝으로 위장한 채 숨어 있었다. 토벌군이 순천을 탈환한 뒤 황 의원은 구례인 선교사의 차량을 타고 시내를 둘러보다 북국민학교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심하게 구타당해 얼굴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의 박찬길 검사를 만났다.
박 검사는 "나를 좀 살려 달라. 나를 변호해 줄 사람은 황 의원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황 의원은 현장 책임자인 최천(순천지구 경찰대 총지휘관)에게 박 검사의 석방을 요청했지만 "반동으로 지목됐으니 조사 후 문제가 없으면 풀어주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황 의원은 구례인 선교사와 함께 박 검사의 구명을 위한 탄원서를 작성했지만 끝내 전달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반동'으로 분류된 20여 명이 총살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박찬길 검사 역시 희생됐다.
황 의원 자신도 곧 체포됐다. 그는 10월 25일 법무부 군인들이 찾아와 그를 연행했고, 조사실에서는 한민당 관계자로 보이는 네 사람이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몽둥이로 무차별 구타를 당하다 실신했다.
다행히 구례인 선교사가 진압군 사령관 송호성 장군을 만나 황 의원이 자신의 집에 은신해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석방을 강력히 요청하면서 그는 풀려났다. 조금만 늦었다면 황 의원도 즉결 처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송 장군은 당시 자신이 받은 보고 내용도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반란군이 순천에 인민재판소를 설치했고 박찬길 검사가 재판장, 황두연 의원이 배석판사가 되어 수많은 양민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황 의원 집 마루 밑에서 반란군 탄약이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구례인 선교사의 증언을 들은 송 장군은 이 같은 보고가 모두 거짓임을 확인하고 황 의원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1948년 10월 30일 평화일보는 "인민재판의 배석판사는 국회의원 황두연으로 밝혀져, 내무당국은 즉시 체포를 명령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황 의원은 인민재판에 참여한 사실이 없었고, 내무당국 역시 체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결국 국회에서 본인의 적극적인 해명과 동료 국회의원들의 지원 등으로 허위 사실임이 밝혀졌고 논란은 수습됐다.

▲평화일보의 허위 보도 평화일보(1948. 10. 30일자) 관련 기사
대한민국옛날신문 아카이브 갈무리
복원된 탄원서가 밝힌 실명
1949년 검찰이 박찬길 검사 사건을 재수사하자 황두연은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번에 복원된 탄원서에서 황 의원은 박찬길 검사를 살해한 세력이 그들의 범행을 은폐하고자 박 검사의 무죄를 주장한 자신마저 공산당으로 몰아 제거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5·10 총선 낙선자 측 인사들과 대한노총 오전파 관계자, 임실경찰서 사찰계에 근무하던 정아무개씨, 순천읍의 신아무개씨, 박동섭 피의자의 형 박아무개씨, 당시 국방부 특별조사국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이른바 '4인단' 등이 결탁해 "황두연이 인민재판 배석판사였다"는 허위 보고를 작성했다고 적었다.
또한 그는 박찬길 검사의 억울한 죽음에도 자신이 살아남자, 이들이 다시 평화일보 기자와 '8개 단체 연합' 명의의 보고서를 조작해 자신을 사형에 처하도록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희생시킨 극우 폭력 세력과 살인 가담자들을 엄벌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번에 복원된 황두연 탄원서는 여순사건 당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부역 혐의자 색출 과정의 이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황 의원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의 희생은 단순히 이념 대립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지역사회의 정치적 경쟁, 경제적 이해관계, 친일 경찰 출신 세력의 권력 유지 욕망, 그리고 극단적 반공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상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광주지검이 이 탄원서를 단순 참고자료가 아니라 박찬길 검사 사건 수사기록의 증거자료로 첨부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검찰은 황두연을 직접 증인으로 소환해 별도의 신문조서를 작성했고, 이 기록 역시 인지조사 서류에 포함돼 있다.
복원된 탄원서는 여순사건을 둘러싼 지역 권력투쟁과 정치적 모함, 그리고 사법적 진상규명의 과정을 보여주는 1차 사료로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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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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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황두연... 76년 만에 복원된 탄원서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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