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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산 채로 발견되었다

[시로 읽는 오늘] 강혜빈 '여름의 형식'

등록 2026.07.13 10:09수정 2026.07.1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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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기자말]
여름의 형식
- 강혜빈

그녀는 산 채로 발견되었다 방의 입구에는 오후 3시가 토막토막 누워 있다 그녀는 손차양을 하고 창밖을 본다 3시에 만나기로 한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기로 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문을 밀고 들어올 사람이 없고 잠에서 막 깨어난 집은 고요하다


문을 열자 재가 흩날린다 조금씩 오후의 이음새가 헐거워진다 벌레 한 마리 뒤에는 백 마리가 있다고 믿는 그녀는 모기향을 좋아해서 여름을 좋아하고 평생 자기도 모르게 삼키는 벌레가 몇 마리나 될까 궁금해지고 신비로운 여름의 색깔은 말라카이트그린 상록수를 닮은 말라카이트그린 여름의 나선형 구조는 스스로를 태우면서 보호하기에 알맞다

간밤 모기의 날개는 되풀이되었다 불을 켜면 모기는 없고 모기의 환상만이 남아 있다 귓등에 짧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다정했으나 반복에는 의도가 있다고 믿는 그녀는 수신호처럼 불을 껐다 켰다 껐다 켰다 알 수 없는 부위가 간지러울 때마다 온몸을 더듬느라 잠시만 외롭지 않았다

그녀의 집은 언제나 남의 집이었으므로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맞고 눈 오는 날에는 눈을 맞고 가끔은 현수막을 뒤집어썼다 집주인은 7층에 산다 피아노 연주자는 5층에 살고 3층에는 신혼부부가 산다 그녀는 위층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주인은 커다란 개와 함께 산다 연주자는 미뉴에트의 박자를 모른다 부부는 지난달 시루떡을 들고 방문했으며 엘리베이터는 자주 고장 난다 그녀는 듣는다, 위층에서 나는 소리를

벽은 벽의 자아를 가지고 문은 문을 출력하고 집은 여름의 형식을 빌려 쓴다 오후 3시의 증거는 말끔히 처리되었다 이따금 벽 속에서 나뭇가지가 끊어진다 비 온 뒤 건물은 늘었다 줄면서 뼈마디를 맞춘다 누군가 서둘러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에 그녀는 모기향을 새로 피운다

출처_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 문학과지성사, 2023
시인_강혜빈: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의 팔레트> <미래는 허밍을 한다> <콜드 리딩>이 있다.


 빈집의 오후, 그녀는 썩는 냄새로 여름을 피운다.
빈집의 오후, 그녀는 썩는 냄새로 여름을 피운다.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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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낱말을 마주할 때마다 곧장 떠올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나른하게 드러누운 채 선풍기 바람을 쐬기, 각얼음 깨물어 먹기, 매미 울음소리 듣기, 맨살에 달라붙는 홑이불의 감촉을 만끽하기...... 기운 넘치고 쌩쌩하기보다는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서글픈 구석이 있는 순간들.


"불을 켜면 모기는 없고 모기의 환상만이 남아 있"는, "위층에서 나는 소리"와 "누군가 서둘러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게 되는 순간들. 여름이라고 해서 반드시 활기로 가득 찰 필요가 없다면, 이러한 순간들을 가리켜 "여름의 형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여름이 조금은 반가울 것 같다.(박규현 시인)
#강혜빈시인 #여름의형식 #미래는허밍을한다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
댓글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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