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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아무리 소리쳐 불러보아도 / 돌아오는 대답 하나 없는 교실. / 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은 / 아이들의 가냘픈 숨소리뿐..."
오래전 제가 쓴 시 <메아리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한 구절입니다. 시를 쓸 당시만 해도 다소 과장된 문학적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교단에 서 있는 지금, 저는 오히려 현실이 시보다 더 쓸쓸하고 냉혹해졌음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 교사로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 때마다 마음 한편이 서늘해집니다. "얘들아, 안녕!" 하고 밝게 인사를 건네도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없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둑한 교실에서 아이들은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보거나 책상에 엎드린 채 하루를 시작합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도, 친구와 웃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예전보다 훨씬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한 학기 동안 같은 반에서 생활했는데도 서로 대화 한번 나누지 않은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다"라고 달래도 보고, 한 달에 한 번 생일잔치를 열어 마음을 모아보려 해도 아이들 사이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습니다. 예전의 교실이 시끄러운 떠들썩함으로 가득했다면, 지금의 교실은 무거운 침묵이 지배합니다. 아이들의 생기 있는 목소리는 사라졌고, 교실은 점점 메아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상대 학교를 향해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논란 끝에 학생들과 감독, 교직원, 학부모들은 광주를 찾아 고개 숙여 사죄했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습니다. 현장에서 학생들은 "야구보다 인성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반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자인 제 마음은 내내 무거웠습니다. 왜 아이들은 꼭 큰 사건이 터지고 사회적 지탄을 받은 뒤에야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게 되는 걸까요? 왜 학교는 그 이전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역사를 존중하는 법을 충분히 가르치지 못했을까요? 이번 사건은 몇몇 학생의 단순한 일탈이 아닙니다. 교실 안에서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사회성 교육의 부재, 민주시민교육의 약화, 그리고 아이들 내면의 자존감 붕괴가 만들어 낸 구조적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교실, 하나의 거대한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교실 카스트?
최근 수행평가를 채점하다가 한 학생의 답안지을 보고 한동안 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학생은 한 일본 소설을 읽고 '교실 사회에서 다 같이 어울리는 것보다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어떻게 교실에서 생활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적었습니다.
뒷면에는 학생이 직접 그린 그림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바라본 교실은 하나의 거대한 약육강식의 피라미드였습니다. 꼭대기에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말도 잘하며 선생님과도 가까운 '상위 계급'이 군림합니다.
중간에는 겨우 버티는 평범한 학생들이 있고, 맨 아래에는 키 작음, 공부 못함, 운동 못함, 못생김, 소심함, 고지식함 등의 이유로 무시당하는 '하위 계급'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학생은 이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제도인 '교실 카스트'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림 속 교실 앞 단상에서는 활발한 상위 계급 아이들이 무조건적인 단합을 강요하며 떠들고 있는데, 맨 뒤에 홀로 격리되듯 앉은 아이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비단 이 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점심시간에 교실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반마다 3명에서 5명 정도의 아이들이 급식실에 가지 않고 교실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OO야, 점심시간인데 왜 밥 먹으러 안 가니?"라고 묻자, 기어가는 목소리로 "같이 갈 친구가 없어요", "아무도 저한테 같이 가자고 안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배고플 테니 그냥 가서 줄 서서 먹으면 안 되냐고 권해보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완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혼자 급식실에 서 있는 그 '시선의 지옥'을 견디느니, 차라리 굶는 편을 택하는 것입니다.
과보호 속에 자라난 요즘 아이들은 관계 맺기에 극도로 서툽니다. 부모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다 보니 홀로 서는 자립심도, 타인과 부딪히며 조율하는 독립심도 부족합니다. 점심을 함께 먹을 친구가 없어 혼자 교실에서 굶는 아이, 체육 시간이 두려운 아이, 체험학습 등 학교밖교육활동이 공포인 아이, 쉬는 시간이 가장 외로운 아이들이 교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말합니다. "네가 먼저 다가가 봐", "학교는 공동체니까 네가 적응해야지",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을 해봐."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관계의 서열과 동조 압력 속에서 매일 지독한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교실 카스트'는 단순한 아이들의 유행어가 아닙니다. 교실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소외와 차별의 현실을 향한 아이들 스스로의 처절한 절규입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학교라는 현실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고립된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소속감을 찾습니다. 그 텅 빈 자리를 스마트폰 화면이 채웁니다. 극단적인 유튜브 영상, 혐오를 배설하고 소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특정 지역과 세대, 성별, 역사를 조롱하는 왜곡된 문화가 아이들의 새로운 '가짜 공동체'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학교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대전환해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요? 이제 학교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대전환해야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학교 제도는 과거 '산업사회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이미 AI가 주도하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핀란드, 스웨덴식 등 교육 선진국 시스템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교육 고통, 학교 현실을 직시한 대책을 교육청, 교육부는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육 당국과 사회에 몇 가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첫째, 민주시민교육의 토대가 되는 '사회정서학습(SEL)'을 교육과정 내에 최우선으로 제도화해야 합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사회성)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정서) 힘이 없는 아이에게 거대한 민주주의와 역사 정의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공감과 경청, 갈등 해결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SEL을 중심에 두고, 이를 건강한 민주시민교육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둘째, 아이들의 내면을 채우는 '자존감 교육'으로 교육의 중심을 이동해야 합니다.
교실 카스트의 가장 깊은 뿌리는 성적이 아니라 자존감의 격차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성적, 외모, 친구 수, SNS 팔로워, 부모의 기대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당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 본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은 공감 능력도 함께 무너집니다.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기에 타인도 존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학교는 성적만을 올리는 공장이 아니라, 칭찬 한마디, 강점 찾기, 학생자치와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너는 성적 이전에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명제를 확인시켜 주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셋째, 학교 내 정서적 '안전기지'인 대안 교실과 심리치유 공간을 전면 확대하고, 평가 제도를 혁신해야 합니다.
경쟁과 비교에 지친 아이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전문 공간과 이를 전문적으로 케어할 상담 교사,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들을 대폭 확충함과 동시에,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사는 '경쟁 중심 상대평가'를 넘어 협력과 성장, 공동체 기여를 함께 평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진짜 역량은 지식 암기력이 아니라 공감력이며, 홀로 생존하는 경쟁력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협업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메아리가 살아 숨 쉬는 숲을 다시 만들어야
누가 이 아이들에게서 마음껏 뛰어놀 놀이터를 빼앗았을까요? 누가 아이들의 가슴속 푸르던 숲을 이토록 무참히 베어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는 꽃이 지고, 새소리가 멈추고, 따뜻한 메아리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숲은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새 몇 마리를 데려다 놓는다고 숲이 살아나지 않듯, 이제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밭에 자존감이라는 깊은 뿌리를 내리게 돕고, 사회성이라는 푸른 나무를 심으며, 민주시민의식이라는 건강한 열매를 맺게 해야 합니다. 그 복원된 숲에서는 혐오보다 공감이, 조롱보다 존중이, 경쟁보다 협력이 자연스럽게 자라날 것입니다.
교육은 아이들의 머리를 지식으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사랑으로 키우는 일입니다. 이제는 성적보다 사람을, 경쟁보다 공존을, 효율보다 공감을 먼저 가르치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외로이 소리쳤을 때, 외면의 벽에 부딪혀 부서지지 않고 온기 어린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교실. 그런 학교를 다시 일구어내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교육자의 가장 준엄하고도 절실한 사명입니다.
그 끊어진 메아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불 꺼진 교실의 아침을 기도로 시작합니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 외쳐도 응답 없는
여기는 메아리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숲.
그러나 낙엽 쌓인 흙 가슴 헤치고
새 봄날 푸른 눈 뜨는 새싹처럼,
너와 나의 목소리 얽혀 단단한 나무가 되고
마침내 서로를 얼싸안는 거대한 숲이 될 때까지
나는 오늘도 지치지 않고 가만히 불러보리라.
얘들아, 안녕! 길 잃은 내 목소리가 너의 가슴에 닿아
다시 눈부신 메아리로 돌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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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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