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온미래 먼저 온 미래 표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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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알파고 등장 이후 바둑은 예술이 아닌 스포츠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의 바둑 중계는 해설자가 기사의 성향이나 기세, 심리 상태 등 수 너머의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감각의 영역을 강조했다. 반면 지금의 바둑 중계는 AI가 실시간으로 소수점 단위의 승률을 표시한다. 어떤 수를 두면 승률이 얼마나 떨어지는지가 직설적으로 중계 되는 화면 속에서, 바둑이 가진 예술적 신비로움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 혼란은 프로기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기사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AI를 거부하는 부류,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류, 아예 바둑을 포기하는 부류다. 그러니까 AI의 강타 이후 바둑이라는 세계가 지닌 고유의 가치관과 철학 자체가 통째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AI의 역습이 비단 바둑계에만 한정된 일일까?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때문에 내 취향의 '새로운 곡'을 찾아다니는 취미가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AI가 만든 곡을 손쉽게 발견하게 된다. 내 취향의 곡이라며 새로운 가수를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이 곡이 인간이 아닌 AI의 곡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깊은 실망에 빠지게 된다.
하나의 곡 속에는 그가 겪은 삶이 녹아있고, 체험이 녹아있다. 물론 모든 곡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곡은 마치 소설과 같이 개인의 체험 없이는 나올 수 없다. 그런데 AI가 만들어 낸 곡을 과연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작곡가 개인의 고유한 철학과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곡을 뚝딱 만들어낸 AI의 곡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언젠가 인기곡 차트에 AI의 곡이 이름을 올리게 된다면 그 순간 음악이 지닌 예술적 가치도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람들이 AI의 곡에 익숙해지면 인간의 곡을 찾게 될까? AI는 수많은 통계를 바탕으로 취향을 저격하므로, 인간의 노력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이러한 우려는 소설도 마찬가지다. AI가 소설을 집필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 소설은 예술로 봐야 할까? 그저 통계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취향을 저격한 데이터 덩어리로 봐야 할까? 이것이 곧 '양산'되는 순간, 문학작품이 지닌 '희소성'과 '예술'의 가치도 사라져버리는 것 아닐까?
AI의 진짜 무서움은 단순히 우리를 도와주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알파고는 바둑을 잘 두고 챗GPT는 대화를 잘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인식도 바꿔 놓았다. 이전까지는 검색을 통해 사람들의 체험과 경험을 간접적으로 공유하며 블로그 등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었다면, AI를 통해 이를 대신하게 되었을 때 사람의 진짜 체험마저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 아닐까?
적어도 알파고 등장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창의력'은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AI는 질문하지 못하므로 인간이 지닌 창의성은 결코 넘볼 수 없다며,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알파고 시대의 주요 골자였다. 하지만 이제 이는 틀린 말이 되었다. 창의성은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다. AI도 얼마든지 예술작품을 만들고, 인간의 창의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기존 관념이 지닌 '인식'을 뒤바꿔놓는다. 그렇다면 AI 시대란 무엇일까? 우리가 가진 모든 가치관과 관념, 기존의 개념들이 송두리째 뒤바뀌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쌓아온 '인간다움'의 정의마저 다시 내려야 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먼저 온 미래>를 읽으며 한편으로 매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바둑기사들이 겪는 솔직한 심정과 바둑계가 겪는 현실을 바라보며, 이것이 바둑이 아닌 문화, 예술, 혹은 우리 생활 곳곳으로 확장된다면 어떻게 될까? 기성세대야 당연히 거부감을 갖겠지만 AI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흡수할 것이고, 몇 세대를 거친다면 우리가 지닌 모든 인식의 대재편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사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
이는 2000년대 구글이 내걸었던 비공식 슬로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바둑계에 있어 구글은 어쩌면 가장 '사악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바둑이 지닌 기존의 가치와 통념 자체를 뒤바꾸어 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구글을 정말 사악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기업이 돈이 되는 거대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AI가 인간이 지닌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세상에서, 이제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문제는 바로 지금, 이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AI는 혁신적으로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시켜 주므로 그들의 사명처럼 '옳은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어떤 분야에서는 기존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악한' 존재로 불릴 수도 있다. 미래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지만, AI가 가장 빠르게 파괴할 분야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의일지도 모른다.
<먼저 온 미래>는 바둑계의 변화를 밀착 취재하며 우리에게 거대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AI가 단순히 편리한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가치'의 기준을 통째로 뒤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섬뜩한 일은 없다. 이제는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떼어놓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아닐까.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은이),
동아시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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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현실, AI 시대의 떼어 놓을 수 없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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