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삼 생가터 표지석
김명희
독립지사 일송(一松) 김동삼은 1878년 6월 23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동 278번지에서 태어났다. 이 주소는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기재된 것인데, 도로명주소로 바꿔보면 '내앞길 7-5, 내앞길 7-7' 두 가지가 나온다. 지번이 뒷날 둘로 분할된 모양이다.
생가터를 찾아 확인하면 '내앞길 7-7'에 태극기, 생가터 표지석,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국가보훈부 공훈록의 '천전 278'은 '내앞길 7-7'로 바꿔 놓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지도가 아니라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는데, 번지수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이곳을 답사했다.
'천전리'가 '내앞길'로 바뀐 것은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나타낸 결과이다. 본래 내앞마을이던 것을 1914년 일제가 행정개편을 하면서 천전리(川前里)로 기록한 결과다(내[川], 앞[前], 마을[里]). 이런 예는 대구 '앞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총독부는 전산(前山)으로 표기했지만 우리 민족은 따르지 않고 순우리말 "앞산" 이름을 유지했다.
김동삼 지사의 이름은 본래 긍식이었다. 1913년 무렵, 중국 동삼성(東三省)에서 독립 운동에 매진 중이던 지사는 동삼(東三)으로 개명했다. 1920년 순국한 그의 동생 김찬식도 그때 동만(東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형제는 만주 동삼성에 뼈를 묻자는 각오를 새 이름으로 나타내었던 것이다.

▲ 김대락 지사의 옛집 '백하구려'
김명희
안동 내앞마을은 독립유공자를 20명 이상 배출했다. 나라가 망한 뒤 만주로 망명한 마을 주민이 많아서 1910년대에 이미 150명 이상 압록강을 넘었다. 당연히 내앞마을에는 김동삼 지사 생가터 말고도 꼭 찾아볼 독립운동가 관련 유적이 또 있다. '백하구려'이다.
'백하구려(白下舊廬)'는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5)의 옛집[舊廬]이라는 뜻이다. 김대락 지사의 호 '백하'도 독립의 염원을 담고 있다. 백하는 백두산 아래를 가리킨다. 김대락은 이상룡(1858-1932)의 처남으로, 그의 여동생 김우락이 이상룡의 부인이었다. 백하구려 건물은 김대락, 이상룡, 김동삼 등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협동학교 교실로 사용되었다.
중등과정의 3년제 협동학교(協東學校)는 유인식·김병후·하중환·김동삼 등이 1907년에 설립했다. 협동학교는 신민회(新民會)에서 교사를 파견해 준 데서 짐작되듯 안동 지역에 혁신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구국 운동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유림의 반대와 저항은 극렬 했다.
유림은 신식 교육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정했다. 사문난적은 성리학의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일컫는 죄명이다. 협동학교도 1909년 예천의병의 공격을 받아 교사와 학생 등 3명이 피살당 하기까지 했다. 그 협동학교가 바로 김동삼 지사 독립운동의 첫 출발지였다.

▲ (경북 안동댐) 김동삼 어록비 앞면과 뒷면
김명희
1931년 9월 18일 일본은 만주를 무단 점령하기 위해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김동삼 지사는 새로운 항일 활동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하얼빈에 잠입했다가 일제에 피체 되고 말았다. 결국 지사는 1937년 4월 13일 서울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했다. 그가 남긴 유언이 안동댐 월영공원 빗돌 '일송 김동삼 선생 어록비'에 새겨져 있다.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 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김동삼의 장례는 한용운이 자신의 거처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치렀다. 유해는 지사의 유언대로 화장 되어 한강에 뿌려졌다. 이날 한용운이 울었다. 김동삼 지사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2005년 6월 국가보훈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 중 일부를 인용한다.
"독립군 단체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수습회의에 의장을 독점하다시피 선출된 사람이 바로 김동삼 선생이었다. 일찍이 만주에서 활약했던 이강훈은 만주 한인사회에서 이념이나 지역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난 받지 않은 지도자가 드문데, 선생은 어느 쪽으로부터도 비난 받지 않는 큰 인물이었다고 증언하였다. 선생이 지닌 지도자적 풍모를 전해주는 말이다."
김동삼 어록비 가까이 았는 '광야' 시비
김동삼 지사 어록비 옆에 안동 3.1운동 기념비가 있다. 3.1운동 기념비에서 길 건너 매점 쪽으로 가면 '육사 시비'를 볼 수 있다. 앞면에는 '광야' 전문, 뒷면에는 조동탁(조지훈)이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다만 아쉬운 바는 조지훈 시인의 이름을 본명인 '趙東卓'으로, 그것도 한자로 소개하고 있어 일반인이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광야'를 읽어본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가 새겨져 있는 안동 월영공원 '육사 시비'
김명희
이육사의 본 이름이 이원록이고, '이육사'는 대구형무소에 갇혀 있을 때 수인번호 '264'에서 따온 필명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안동 임하면 내앞마을의 김동삼 생가터와 김대락 옛집, 그리고 월영공원의 김동삼 어록비와 육사 시비를 답사 하면서, 지사들과 마을 이름에 얽힌 민족 정신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30도를 훌쩍 넘는 데다 습도까지 높아 다니기가 쉽지 않았지만, 뜻으로만 보면 아주 보람 있는 여정이었다.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일기예보의 날씨가 아침에는 맞을 것 같았는데, 점심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쾌청하게 바뀌어 마치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다음에 안동을 찾아 순국지사 이만도 선생 고택과 유허비를 꼭 참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낙동강을 건너 중앙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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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부터 자영업자로 살아 왔고, 이제 은퇴를 했습니다. 어릴때부터 꿈꾸었던 여행을 다니고, 문화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삶의 여백을 가꾸어볼까 합니다. 가능하면 책도 한 권 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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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떠돌면서 조국이 광복 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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