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습관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 도미노가 따로 없네요

눈썹문신 후 일주일이 비춰준 수영 생활 패턴... 멈춰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등록 2026.07.07 13:17수정 2026.07.07 16:2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의 권유로 2주 전 토요일 눈썹 문신을 했습니다. 시술을 마치자 원장님이 신신당부하십니다. 색소가 빠져나갈 수 있으니, 일주일 동안은 수영도 사우나도 절대 안 된다고 말이지요.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드렸습니다. 일주일 쯤이야 금방 지나가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영을 거르고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제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 두 개가 있었습니다. 바로 'pause(멈춤)'와 'pose(자세)'입니다. 생긴 것도 발음도 닮은 이 두 단어를 찾아보니 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원래 이 둘은 옛 라틴어 '파우사레(pausare)'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같은 단어였다고 합니다. 뜻은 "멈추다, 쉬다"였습니다. 이 말이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로 건너오면서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지금의 pause, 뜻 그대로 "멈춤"이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pose가 되었는데, 재미있는 건 이 pose가 전혀 다른 라틴어 단어인 '포네레(ponere, 놓다·두다)'와 발음이 비슷해 자꾸 헷갈리다가 아예 그 뜻까지 통째로 가져와 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pose는 "멈추다"라는 원래의 뜻은 잃어버리고, 남의 옷이었던 "문제를 제기하다, 자세를 취하다"를 대신 입게 된 셈입니다. 우연한 혼동이 새로운 뜻을 만든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묘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멈춤에서 시작한 말이 결국 자세를 잡는다는 뜻으로, 나아가 질문이나 문제를 세운다는 의미로 자라났다는 게 꼭 제가 겪은 일주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멈춤'의 도미노

 일주일간의 멈춤(pause)을 끝내고 다시 찾은 수영장. 푸른 물빛을 마주하며 잃어버린 하루의 리듬을 새로이 세워 봅니다(pose)
일주일간의 멈춤(pause)을 끝내고 다시 찾은 수영장. 푸른 물빛을 마주하며 잃어버린 하루의 리듬을 새로이 세워 봅니다(pose) 문현호

돌이켜보면 저는 수영 덕분에 제법 훌륭한 하루의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수영을 하려니 일찍 일어나야 했고, 일찍 일어난 김에 공유 자전거 따릉이를 탔습니다. 페달을 밟는 동안에는 영어 공부용 팟캐스트를 들었습니다. 대단한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눈이 일찍 떠지니 그 새벽 시간이 아까웠던 것입니다. 수영을 하다 보니 바지 허리춤이 헐렁해지는 게 보였고, 그러자 식단에도 자연스레 마음이 갔습니다. 체력이 붙는 건 그다음에 따라오는 정직한 덤이었습니다.


수영 하나를 시작했을 뿐인데 새벽 기상과 자전거, 영어 공부와 식단, 그리고 체력까지 줄줄이 딸려 왔습니다. 도미노 하나를 세웠더니 나머지가 알아서 따라 오는 격이었습니다. 선순환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어 스스로 대견해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도미노는 처음부터 작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기둥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얹어 놓았다는 위험, 그 기둥이 흔들리면 나머지도 도미노처럼 다 흔들린다는 위험 말입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 순환이라는 게 참 얄궂습니다. 딱 일주일 'pause(멈춤)' 했을 뿐인데, 그러니까 고작 일주일 멈췄을 뿐인데 몸이 먼저 알아채고 다시 무거워졌습니다. 아침 잠은 순식간에 늘어져서, 알람이 울리면 손이 먼저 나가 꺼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자전거를 안 타니 영어 공부도 자연히 멈췄고, 식단을 조절할 이유도 흐릿해졌습니다. 몇 달에 걸쳐 성실하게 쌓아온 것들이 단 며칠 만에 스르르 풀어지는 걸 보면서, 제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뼈아프게 알게 됐습니다. 도미노가 품고 있던 그 위험이 결국 현실이 된 셈이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건강한 습관을 만든 건 무려 넉 달인데, 무너지는 데는 고작 일주일이면 충분했으니까요. 그리고 이 안타까움이 저에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pose).

'나는 정말 수영 생활을 온전히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수영이라는 가느다란 기둥 위에 다른 습관들을 아슬아슬하게 얹어놓고 있었던 건 아닐까.'

눈썹문신 하나가 뜻하지 않게 제 생활 구조를 투명하게 조명해 준 셈입니다.

그렇게 조금은 아쉬운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서던 순간의 기분은 생각보다 각별했습니다. 락커에서 수모를 꺼내고 물안경에 김 서림 방지제(안티포그)를 문지르는,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손동작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냥 물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멈췄던(pause) 뒤에 새로 자세(pose)를 잡는 기분이었습니다. 옛날 라틴어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멈춘 자리에서 다시 자세를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첫 바퀴를 도는데 수영장의 물이 유난히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몸은 분명 일주일 전보다 둔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잃어버린 일주일을 서둘러 만회하겠다는 거창한 각오는 아닙니다. 다만 이 리듬이 생각보다 훨씬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걸 선명히 알아버린 이상, 이번에는 조금 더 세심하고 단단하게 내 생활의 리듬을 붙잡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눈썹문신 하나가 남긴 것은 또렷한 눈썹만이 아니라, 멈춰봐야 보이는 것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영 #한크스 #도전 #지천명 #눈썹문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이 유럽 보냈는데 압수수색 당한 여행사 "100만원 더 보내라" 아이 유럽 보냈는데 압수수색 당한 여행사 "100만원 더 보내라"
  2. 2 [단독] 극한 가뭄 때 기증 받은 '생명수', 뜯지도 않고 폐기한 강릉시 [단독] 극한 가뭄 때 기증 받은 '생명수', 뜯지도 않고 폐기한 강릉시
  3. 3 압색 당한 여행사 예약자 400명... '2년 전에 여행비 냈는데 어떡하나' 압색 당한 여행사 예약자 400명... '2년 전에 여행비 냈는데 어떡하나'
  4. 4 [이충재 칼럼] 정권 잃으면 검찰 반드시 살아난다 [이충재 칼럼] 정권 잃으면 검찰 반드시 살아난다
  5. 5 '윤석열 특별과외' 4년만에, 일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윤석열 특별과외' 4년만에, 일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