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인이 6월 29일 전남 나주시 전남광주대전환기획위원회 대회의실에서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 관련 기자회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적 자기 결정권'은 지방정부에 몇 가지 법적 권한을 넘겨주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이 축적, 투자, 기술, 노동, 조달, 금융의 흐름을 자기 내부의 제도적 생태계 안에서 조직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드레스덴의 실리콘 작센은 이 능력이 제조업의 영역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힘으로 물질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역의 '경제적 자기 결정권'은 자본을 배척하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이 지역을 단순한 입지와 자원으로 소비하지 못하도록, 투자와 기술과 이윤의 흐름을 지역의 내생적 발전 경로 안에서 조정하는 능력이다.
이 정의가 중요하다. 흔히 지역균형발전은 "어디에 공장을 지을 것인가"의 문제로 축소된다. 그러나 '경제적 자기 결정권'의 관점에서 보면, 진짜 질문은 다르다. 그 공장의 투자 결정은 누가 하는가. 연구개발 기능은 어디에 있는가. 장비와 소재와 부품은 어디에서 조달되는가. 숙련노동은 지역에서 양성되는가. 금융수익과 이윤, 그리고 기술은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가. 지역 대학과 연구소는 기술 발전의 주체로 참여하는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는 전력, 용수, 토지, 환경 부담의 한계를 결정할 권한을 갖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공장 유치는 지역발전이 아니다. 그것은 생산시설의 지방 이전일 뿐이다. 생산시설의 이전과 '경제적 자기 결정권'의 이전은 전혀 다른 문제다.
드레스덴은 이 차이를 잘 보여준다. 드레스덴의 힘은 "우리 지역에 팹이 있다"는 사실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팹 주변에 연구기관, 대학, 공급망, 숙련노동, 산업협회, 공공정책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힘이 생긴다. 글로벌 반도체 자본이 드레스덴에 들어오면, 그 자본은 이 생태계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관계 속에서 기술이 이전되고, 인력이 길러지고, 지역 기업이 공급망에 참여하고, 공공정책이 산업 방향을 조정한다. 이것이 바로 '지역적 제도 능력'이다.
따라서 실리콘 작센은 '경제적 자기 결정권'이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선언이 아니라 능력이다. 권리이면서 동시에 역량이다. 대학, 연구소, 기업, 노동시장, 금융, 조달망, 공공정책이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 지역은 자본과 협상할 수 없다. 그것들이 하나의 생태계로 묶일 때, 지역은 비로소 자본 앞에서 발언권을 갖는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배워야 할 것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정말로 지역균형발전의 계기가 되려면, 드레스덴이 던지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전공정이든 후공정이든, 팹이든 패키징이든, 생산시설만으로는 지역의 '경제적 자기 결정권'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본사 기능은 서울과 수도권에 남고, 핵심 연구개발은 기존 수도권 연구소에 남고, 투자 결정은 대기업 본사와 중앙정부가 독점하며, 장비·소재·부품 조달망도 외부 대기업 중심으로 짜인다면, 호남은 또 하나의 생산기지가 될 뿐이다.
그 경우 호남은 반도체 클러스터를 얻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하청 공간이 된다. 전력과 용수와 토지를 제공하고, 환경 부담과 송전 부담을 떠안으며, 지역 청년 일부에게 일자리를 제공받는 대신, 정작 축적의 방향과 이윤의 처분권은 외부에 남는다. 이것은 지역균형발전이 아니라 수도권 일극 체제의 첨단산업 버전이다.
따라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 조건은 분명하다. 첫째, 본사 기능 또는 기능별 본사 기능이 지역에 와야 한다. 단순한 공장관리 사무소가 아니라 투자, 조달, 인사, 연구개발, 전략기획을 수행하는 고부가가치 의사결정 기능이 지역에 있어야 한다.
둘째,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을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호남의 대학들이 단순 인력 공급처가 아니라 공동 연구개발과 기술이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셋째, 지역 중소기업 조달망을 제도적으로 키워야 한다. 장비, 소재, 부품, 유지보수, 설계지원, 테스트, 물류, 에너지 관리 영역에서 지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장기 조달 계약과 기술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이른바 '지역공공은행'이나 '지역재투자기금' 같은 금융 장치를 통해 클러스터에서 발생한 경제적 효과가 지역 안에서 재투자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전력·용수·토지·환경 부담에 대한 지역사회의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 조건들이 빠진 반도체 클러스터는 위험하다. 그것은 지역의 이름을 내건 국가 프로젝트일 수는 있어도, 지역의 '자기 결정권'을 세우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요청하는 지역에서 '결정하는' 지역으로
한국의 지역정책은 오랫동안 유치의 언어에 갇혀 있었다. "우리 지역에 공장을 지어달라", "우리 지역에 국가산단을 지정해달라", "우리 지역에 대기업 투자를 유치해달라"... 그러나 이 언어는 지역을 늘 기다리는 위치, 요청하는 위치에 세운다.
'경제적 자기 결정권'의 언어는 다르다. 그것은 묻는다. "그 산업이 지역에 들어올 때, 지역은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 "그 산업의 가치사슬은 지역 안에서 얼마나 순환하는가", "지역은 자본의 투자 방향을 조정할 제도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지역 주민은 전력과 물과 토지와 노동의 사용 한계를 정할 권한을 가지는가"...
드레스덴의 실리콘 작센은 이 전환의 사례다. 물론 그것은 완전한 민주적 통제도 아니고, 자본주의를 넘어선 모델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역이 자본을 향해 아무 조건 없이 레드카펫을 까는 방식과는 다르다. 그것은 지역이 자본에게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만든 사례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가야 할 길도 여기에 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공장 운영권 몇 개를 지역에 나누어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지역 안에 고부가가치 의사결정 기능을 두고, 연구개발 거점을 세우며,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을 기술 혁신의 주체로 참여시키고, 장비·소재·부품·유지보수·에너지 관리 영역에서 지역 기업의 조달망을 키우며, '지역공공은행'이나 '지역투자기금'을 통해 이윤과 금융수익이 다시 지역에 재투자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또한 전력과 용수, 토지와 환경 부담의 한계를 지역사회가 함께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제도와 조직과 돈의 흐름으로 구현된 지역의 '경제적 자기 결정권'이다.
그래야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역균형발전의 이름을 쓴 또 하나의 생산기지가 아니라, 수도권 일극 체제에 균열을 내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의 목표는 공장이 있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드레스덴의 실리콘 작센은 그 권리가 제조업의 영역에서 어떻게 물질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진정으로 지역균형발전의 이름을 얻으려면, 바로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공장은 오는가. 아니, 더 정확히 물어야 한다. '결정권'도 함께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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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는 정치경제학(사회경제학)을 가르치고 있고 또 이 이론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역경제, 지역불균형발전,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지역순환경제전국네트워크의 공동대표와 학술단체 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수도권 일극 체제의 공간적 위계, 내부 식민지화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서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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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반도체 산단, 공장만 온다? 이걸 가져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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