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여러가지 모양과 색깔의 래디시들 피터 래빗이 사랑하는 래디시를 키워 보고 싶어 10년 넘게 강화 텃밭에서 키우고 있다.
최수안
지금 내 밭에도 상추와 래디시가 자란다. 당근과 토마토, 가지와 고추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피터 래빗의 오랜 팬으로서 그 마법의 세계와 나를 이어줄 파슬리 역시 키운다. 동화 속에서 피터는 맥그리거씨의 정원에 잠입해 상추와 프렌치 빈, 래디시를 배가 터지도록 와작와작 먹어 치운다. 그러다 과식 탓에 속이 울렁거리자, 소화를 도와줄 파슬리를 찾아 밭 가장자리를 헤맨다. 이 장면이 어쩐지 너무 귀엽고 마음에 남았다.
동화는 때때로 아주 늦게, 우리가 다른 삶을 살아본 뒤에야 새로운 문장을 열어준다. 영국에 머물던 시절, 내가 비아트릭스 포터의 고향이자 작품의 배경인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를 유독 사랑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코틀랜드로 향하는 여정 중에도 일부러 하루를 머물 만큼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다.
호수와 돌담, 낮은 구릉과 양떼, 오래된 집들이 만드는 풍경은 영국의 다른 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당장이라도 피터 래빗이 뛰어 나올것 같은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풀과 비, 돌담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런 풍경이었기에 그런 아름다운 동화가 태어날 수 있었음을 온몸으로 납득하게 되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처음 방문하는 지인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책 속 삽화와 완전히 똑같은 <피터 래빗>의 언덕을 마주하고 터져 나오던 행복한 웃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오랜 팬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이 동화는 단순히 '말 안 듣는 토끼의 모험담'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먹거리이고, 누군가에게는 땀 흘린 노동이며, 누군가에게는 지진한 돌봄의 세계인 그 평화로운 일상에 작은 침입자가 들어오는 이야기다.
어릴 때는 그 침입자가 마냥 사랑스럽지만, 어른이 되어 채소를 키워보면 그 귀여움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막 돋아난 상추 잎을 보면 매일 들여다보게 된다. 래디시가 흙 속에서 둥글어지는 시간을 숨죽여 기다린다.
토마토 꽃이 지고 작은 열매가 맺히면 벌써 한여름의 맛을 상상하고, 가지꽃의 보랏빛을 감탄하며, 오이 열매가 달리면 하루에도 몇 번씩 발걸음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잎이 뜯기거나 벌레가 먼저 차지한 흔적을 발견하면, 마음이 생각보다 크게 흔들리는 법이다.
그때 비로소 맥그리거씨의 얼굴이 보인다. 동화 속에서는 피터를 쫓아다니는 무서운 아저씨처럼 등장하지만, 사실 그는 자기 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성실한 농부였다. 피터에게 정원은 스릴 넘치는 모험의 장소였지만, 맥그리거 씨에게 텃밭은 하루의 노동과 계절의 기록이 켜켜이 쌓인 삶의 터전이었다. 같은 장소가 누구에게는 놀이터이고, 누구에게는 생계가 된다. 예전에는 피터의 숨 가쁜 도망만 보았지만, 이제는 그의 발길에 짓밟힌 뒤에 남은 밭도 함께 본다.

▲래디쉬를 먹고 있는 피터 래빗 삽 비어트릭스 포터, 《피터 래빗 이야기》(1902) 중 (출처: 위키 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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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피터 래빗의 열렬한 팬이다. 파란 재킷과 신발을 모두 잃어버리고 겁에 질려 겨우 집으로 돌아가는 작은 토끼를 보면 금세 마음이 약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맥그리거씨가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도 너무나 잘 안다. 채소밭을 가져본 사람은 세상을 온전히 귀여움만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이 모종을 힘들게 심고 있는데, 그 오이를 먹어 치울 토끼가 눈 앞에 나타났다면 어떤 마음일지 짐작도 간다.
어떤 동화는 아이에게 모험을 주고, 어른에게는 밭을 준다. 피터가 뛰어들었던 맥그리거씨의 채소밭에는 토끼가 사랑하던 다양한 채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키고 싶은 지금의 밭에도 여러가지 채소와 허브가 자란다. 오래도록 사랑한 이 이야기는 바로 그 경계 사이에서 다시 읽힌다. 귀여운 토끼와 화난 농부 사이, 먹고 싶은 마음과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 그리고 어린 시절의 독자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그래도 물론 피터를 향한 마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채소밭을 가져본 뒤에야 나는 그 작은 토끼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배가 고팠고, 궁금했고, 금지된 문 너머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오래 사랑하는 주인공은 대개 너무 착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의 말썽과 호기심과 두려움을 대신 살아주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피터 래빗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물론, 만약 지금 내 텃밭에 파란 조끼를 입은 어린 토끼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 내가 키운 래디시와 파슬리를 훔쳐 가려 한다면, 나는 맥그리거씨처럼 소리를 지르는 대신 그저 웃으며 지켜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니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넉넉히 내어줄지도 모른다.
내 평생의 토끼 친구 피터는, 나의 가장 순수하게 이야기를 믿던 시절을 키워준, 고마운 존재이니까 말이다. 그에게 내어줄 텃밭의 채소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피터 래빗을 좋아한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어른의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 더 맥그리거씨의 마음까지 품은 채로.

▲2026년 강화 텃밭의 수확물 오이, 고추 그리고 세이지와 보리지까지 잘 자라고 있다.
최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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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세계의 도시들과 도시문화 석사. 영국에서 10여 년을 지내며 문학과 예술, 여행을 따라 도시를 걸었고 골목과 도시의 일상을 관찰한다. 강화도에서 유럽 헤리티지 채소와 나무들을 기르며 글을 쓰고 문학을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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