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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분신술 수사' 폭로, 재심 판사마저 "이런 걸로 처벌한다니..."

고 성기호 재심 1심 공판서 드러난 보안사 수사의 부조리... 조작 기록 바탕으로 유죄 선고한 과거 재판부

등록 2026.07.08 16:54수정 2026.07.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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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사권이 없던 육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자행한 불법 구금과 고문 조작 사건에 대해 법원이 본격적인 재심 재판에 돌입했다. 피고인들의 연행 일자와 진술서 작성일이 모두 똑같은 이른바 '분신술식 수사기록'의 모순이 50여 년 만에 법정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는 8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억울한 옥고를 치렀던 망 성기호 전 교사의 유족이 신청한 재심 사건(2025재노66)의 항소심 공판을 진행했다. 변호인 측(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은 "1심에서 증거로 사용된 자료들은 대부분 증거능력이 없고 입증이 부족하므로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라며 항소이유서 보충서를 제출했다. 변호인은 무슨 근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는 걸까?

하루 만에 연행부터 조사 완료까지? "수사관이 분신술 썼나"

이번 재심 과정에서는 과거 보안사 수사의 극심한 모순과 부조리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성 전 교사를 비롯한 사건 피고인들은 모두 1972년 3월 22일에 동행(연행)된 것으로 기재돼 있다. 황당한 점은 당시 보안사에 연행된 14명의 피고인이 연행된 바로 그 당일에 피의자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이 한꺼번에 완료됐다는 사실이다.
 같은날 연행되어 같은 날 조사를 받은 피해자들. 같은 날 조사한 수사관이 여러명 겹친다.
같은날 연행되어 같은 날 조사를 받은 피해자들. 같은 날 조사한 수사관이 여러명 겹친다. 변상철

동일한 날짜에 다수의 수사관이 여러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을 동시에 연행하고 조사까지 끝냈다는 기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사관이 분신술을 쓰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심재판부 역시 재심결정문에서 이 같은 경험칙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정을 꼬집으며, 성 전 교사가 공식 기록인 3월 22일 이전인 2월 22일경 이미 연행돼 약 33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수사를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했다. 성 전 교사는 학교에서도 연행 직후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17일에 곧바로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당시 이 사건의 시작이자 유죄의 결정적 근거가 된 남파 간첩 이석의 증언과 수사기록 역시 신빙성이 전혀 없는 조작의 결과물이었음이 밝혀졌다.

1. 존재하지 않는 '넓은 바위' 검증 : 당시 1972년 서울지법 재판(1972. 8. 21. 4차 공판)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이종순 보안대 수사관은 대구 수성천변에 있다는 '넓은 바위'의 존재를 확인했느냐는 변호인의 신문에 "비가 많이 와서 검증은 못 했으나 피고인들이 거기서 만났다고 하니 있다고 믿는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실제 수성천에는 그런 바위가 없었음에도 과거 재판부는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2. 풀려난 간첩의 진술 번복과 생활비 지급 : 간첩 이석은 연행 직후 공소보류로 풀려났으나, 석방된 당일 보안사에서 다시 조사를 받으며 진술을 번복했다. 1차 조사 때는 '남도부 조직 재건'이 임무라고 했다가, 풀려난 뒤에는 '지하당 조직'이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진술이 달라졌다면 공소보류가 취소돼야 마땅하나 검찰은 방치했다. 심지어 이석은 법정에서 자신이 보안사령부로부터 생활비를 받고 있으며, '반자유의 몸' 상태로 국가에 협력하고 있다고 실토했음에도 당시 재판부는 그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유죄 선고의 부품으로 삼았다.


 1972. 8. 21 4차공판에서 남파간첩 이석의 증언. 이석은 보안사에서 관리받으며 생활비를 받는다고 증언했다.
1972. 8. 21 4차공판에서 남파간첩 이석의 증언. 이석은 보안사에서 관리받으며 생활비를 받는다고 증언했다. 변상철

 1972. 8. 21 4차공판에서 수사관 이종순이 현장검증에서 확인되지 않는 증거에 대해 피의자 진술에 의존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1972. 8. 21 4차공판에서 수사관 이종순이 현장검증에서 확인되지 않는 증거에 대해 피의자 진술에 의존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변상철

"독재국가와 다름없는 불도저식 기소"

최후진술서 등 당시 기록에 남은 피고인들의 절규는 수사 및 기소 과정의 야만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피고인 김성근씨는 최후진술서에서 "보안사 지하 독방에 한 달 넘게 수용돼 대질도 없이 6차례 조서를 재작성했고, '표현이 온화해 상부 결재가 안 나니 수정안대로 쓰라'며 진술 내용 변경을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또한 검사 앞에서는 고문당하지 않았다고 말하라는 '신사협정'을 강요받았으며, 검찰 취조 당시 뒤늦게 이루어진 대질에서 상피고인이 "검사가 하도 다그쳐서 시인했던 것"이라며 진술을 바로잡으려 하자, 담당 검사가 "몇 주 동안 다짐받고 쓴 서류인데 이제 와서 부인하느냐"라며 윽박지르고 조서를 강제 성립시켰다고 폭로했다. 그는 이를 두고 "독재국가와 동등한 양민의 희생을 자아내는 불도저식 기소사고"라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조작된 기록을 바탕으로 신용의씨에게 징역 15년, 이종순씨에게 징역 10년, 성기호 전 교사에게 징역 1년 6월 등을 선고했다.

재판장 구회근 판사는 과거 판결문을 검토한 뒤 "그때는 어려운 시기, 힘든 시기였다. 이제 이런 걸로 처벌한다니..."라며 씁쓸함을 표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에 익명 처리되지 않은 판결문 원본을 제출할 것을 명령했으며, 해당 자료가 확인되는 대로 재심 재판 변론을 종결할 예정이다.
#파이팅챈스 #재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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