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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던 '의류사업' 접고 강릉으로... 바다에서 아버지 꿈 잇는 딸

[100인 100색] 파도보다 거센 시간을 건너 바다숲을 지켜온 김수아 대표

등록 2026.07.12 11:29수정 2026.07.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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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사람을 쉽게 품어주지 않는다. 거센 파도와 매서운 바람은 누구에게나 같은 시련을 안김에도, 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한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 하고 아버지가 평생 걸어온 바다의 길을 이어 황폐해진 바다숲을 되살리는 일을 선택한 김수아(71)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바다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의 터전으로 여기며, 아버지가 심어온 바다의 희망을 오늘도 바다에 이어 심고 있다. 거친 파도 위에서 아버지의 신념을 이어가는 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김수아 대표가 동해안 바다숲 조성을 위한 해조생육불럭 투하 작업 현장에서 직접 장비와 작업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김수아 대표가 동해안 바다숲 조성을 위한 해조생육불럭 투하 작업 현장에서 직접 장비와 작업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진재중

파도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바다의 작업선에 오르면 대부분 남성들뿐이다. 거친 파도 속에서 수백 킬로그램에 이르는 장비를 옮기고, 크레인과 선박을 오가며 작업하는 일은 오랫동안 남성들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처음 현장에 나선 김수아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여자가 얼마나 버티겠느냐."

이런 말이 현장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말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새벽이면 누구보다 먼저 선착장에 나가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조류의 흐름을 읽었다. 높은 파도가 이는 날에도 바다의 변화를 확인했고, 작업이 끝난 뒤에는 바닷속 생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꼼꼼히 기록했다.

인공어초를 설치하고, 해조류를 부착하고, 다시마가 바다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여성 사업가'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알고, 현장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김수아 대표는 담담하게 말했다.


"바다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과 준비한 사람만 구분할 뿐입니다."

20여 년 동안 바다에서 몸으로 증명해 온 그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었다. 오늘도 그는 새벽이면 가장 먼저 동해를 바라본다. 파도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도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다.


 "거센 파도 속에서도 김수아 대표는 작업선에 올라 해조생육블럭 투하작업을 직접 수행하고 있다
"거센 파도 속에서도 김수아 대표는 작업선에 올라 해조생육블럭 투하작업을 직접 수행하고 있다 진재중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의 전환점

그의 삶이 처음부터 바다를 향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그의 무대는 거친 바다가 아니라 하얀 설원이었다. 눈 덮인 슬로프를 가르며 내려오는 속도감에 매료됐고 산을 오를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쁨을 느꼈다. 학생 시절에는 스키강사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지금도 대한스키지도자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설원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무대는 서울이었다. 그는 의류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수시로 오갔다. 한 해에도 수십 차례 해외를 방문하며 최신 패션 트렌드를 익혔고, 뛰어난 감각을 갖춘 패셔니스타로도 주목받았다. 사업은 안정적으로 성장했고 도시에서의 삶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미래가 서울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스키강사로 활동하며 설원과 함께한 시간.
젊은 시절 스키강사로 활동하며 설원과 함께한 시간. 김수아

아버지의 바다가 그의 길이 되다

인생의 방향은 언제나 스스로 선택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이 또 다른 사람의 운명이 되기도 한다. 김수아 대표에게 그 전환점은 아버지, 김영돈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평생 동해의 황폐해진 바다를 되살리는 일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바다숲을 복원하고 해양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연구와 실천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삶을 움직인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바다를 살려야 한다'는 단 하나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김수아 대표는 아버지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왜 모든 것을 바다에 쏟아붓는지, 왜 연구와 해조류 복원사업에 자신의 삶을 걸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아버지가 서울에 투자하셨다면 건물을 몇 채는 가지고 계셨을 거예요."

잠시 웃음을 머금던 그는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늘 산을 가꾸듯 바다도 가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바다를 정성껏 가꾸고 필요한 양분을 보충하면 바다숲은 다시 살아나고, 결국 건강한 바다가 된다고 믿으셨죠.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돈보다 바다가 먼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말보다 행동으로 신념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바다숲을 되살리기 위한 연구와 현장 실천에 평생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개인의 이익보다 바다의 미래를 더 소중히 여겼다. 김수아 대표는 그런 아버지의 곁에서 바다를 지키는 일이 사업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바다숲 복원을 위해 평생 연구와 현장을 지켜온 아버지의 곁에서 김수아 대표는 바다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으로 배웠다.
바다숲 복원을 위해 평생 연구와 현장을 지켜온 아버지의 곁에서 김수아 대표는 바다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으로 배웠다. 진재중

아버지의 병간호가 기술과 사명으로 이어지다

김 대표를 바다로 끌어들인 것은 아버지의 건강 악화였다.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소식은 서울에서의 일상을 한순간에 멈춰 세웠다. 김수아 대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운영하던 의류사업을 정리하고 강릉으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병든 아버지 곁을 지키다 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병상을 지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아버지가 평생 품어온 바다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김영돈 회장의 하루는 몸이 불편한 순간에도 바다에서 끝나지 않았다. 병실 침대 머리맡에는 바다 숲 자료가 놓여 있었고, 연구 노트에는 새로운 실험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황폐해진 바다를 되살릴 방법, 다시마와 해조류가 다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곁에서 김수아 대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왜 바다영양제를 개발해야 했는지, 왜 인공어초가 필요한지, 왜 해조류가 사라지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배웠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일이 되어 있었다.

병실에서 시작된 공부는 곧 현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바닷속 암반을 직접 살펴보고, 해조류가 사라진 자리를 눈으로 확인했다. 손으로 바다 영양제를 만들고, 인공어초를 제작하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연구실에서 끝나는 기술이 아니라 바다에서 살아남는 기술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은 현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 바다는 더 이상 아버지의 일이 아니었다. 그의 일이 되었고, 그의 책임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제가 그 길을 걷고 있더군요."

그렇게 병간호는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고, 기술을 배우는 시간은 사명을 이어받는 시간이 되었다.

 "바다숲 복원을 위해 제작된 해조류 영양제. 해조류의 생육 기반을 조성하고 초기 성장을 돕기 위해 해저에 설치·투하된다."
"바다숲 복원을 위해 제작된 해조류 영양제. 해조류의 생육 기반을 조성하고 초기 성장을 돕기 위해 해저에 설치·투하된다." 진재중

파도는 가장 엄한 스승이었다

바다는 결코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한 작업도 풍랑주의보 한 번이면 멈춰 선다. 몇 달 동안 정성껏 키운 해조류가 이상수온과 거센 너울 앞에서 하룻밤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자연은 누구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김수아 대표는 그런 바다 앞에서 수없이 좌절했다. 인공어초를 설치한 뒤에도 해조류가 활착하지 못해 실패한 적이 있었고, 공들여 준비한 복원사업이 태풍 한 번에 원점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바다는 언제나 사람보다 강했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탓하지 않았다. 바다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였다.

"바다는 욕심을 부리면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는 파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자연의 시간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에게 바다는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의 터전이었다. 파도의 흐름을 읽고,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조류의 변화를 기록하는 일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연구가 되었고, 현장에서 얻은 경험은 새로운 복원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바다는 그에게 가장 엄격한 스승이 되었다.

 "김수아 대표에게 바다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의 터전이다. 그는 오늘도 바다숲을 가꾸며 해양생태계 복원에 힘을 쏟고 있다."
"김수아 대표에게 바다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의 터전이다. 그는 오늘도 바다숲을 가꾸며 해양생태계 복원에 힘을 쏟고 있다." 진재중

현장과 연구가 만날 때 바다는 살아난다

김수아 대표에게 바다를 지키는 일은 현장의 경험과 연구만으로도 완성될 수 없다. 두 영역이 끊임없이 만나고 이어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해양생태계 복원이 가능하다고 그는 믿는다. 그 믿음은 아버지 김영돈 회장이 평생 실천했던 철학에서 시작됐다.

"기술은 현장에서 검증되어야 하고, 현장은 다시 연구를 통해 발전해야 합니다."

그 가르침은 지금도 그의 활동을 이끄는 기준이 되고 있다. 김 대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20여 년째 한국조류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후원하고 있다. 아버지에 이어 딸이 같은 학회의 부회장을 맡은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다. 그는 연구자와 어업인, 기업, 행정을 연결하며 해조류 연구 성과가 실제 바다숲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일본 해조류 연구자들과의 교류 역시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소중한 인연이다. 국적은 다르지만 바다를 되살리겠다는 공통된 목표 아래 연구 성과와 복원기술을 공유하며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김 대표는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연구의 축적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연구실에서 시작된 하나의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검증되고, 다시 새로운 기술로 발전하는 과정이 결국 바다의 미래를 바꾼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대표는 국내외 해조류 관련 학회와 국제세미나를 오가며 연구자들과 협력 네트워크를 넓혀가고 있다
김대표는 국내외 해조류 관련 학회와 국제세미나를 오가며 연구자들과 협력 네트워크를 넓혀가고 있다 김수아

바다숲 너머를 바라보다

요즘 김수아 대표의 시선은 바다숲 복원 그 너머를 향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것은 단순히 다시마를 심는 일이 아니다. 바다숲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블루카본 자원이 되고, 어촌의 새로운 소득을 만들며, 탄소중립 사회를 이끄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양양 광진리 연안에서 다시마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2024년 백령도 다시마 포자를 이식한 뒤 지금까지 생육 과정을 꾸준히 관찰하며 복원 가능성을 기록하고 있다. 바닷속에서 다시 자라나는 작은 다시마 한 포기는 그에게 단순한 해조류가 아니다. 동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며, 어촌이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바다를 살리는 일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 세대를 향하고 있었다. 건강한 바다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해조류가 숲을 이루는 동해를 다시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김수아 대표가 매일 새벽 바다로 향하는 이유였다.

 양양, 광진리 앞바다에 조성된 바다숲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해양생물의 서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양양, 광진리 앞바다에 조성된 바다숲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해양생물의 서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진재중

바다는 국경을 모른다

김수아 대표는 바다숲 복원을 한 지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남과 북이 함께 연구하고 가꾸어 갈 수 있는 미래의 자산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한반도해조류포럼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연구자와 어업인,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동해안 해조류를 조사하고 복원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남북이 해조류를 매개로 협력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는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바다는 국경을 모릅니다. 해류도 그렇고 해조류도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바다를 통해 남과 북이 함께 웃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의 말은 정치가의 구호가 아니었다. 20년 넘게 바다를 지켜온 한 사람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이었다. 동해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해류는 경계선을 알지 못하고, 해조류의 포자도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연이 이미 보여주고 있는 공존의 질서를 사람이 조금 늦게 따라가고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가 꿈꾸는 바다는 다시마가 무성하게 자라는 바다이면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고 남과 북이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바다이기도 하다.

 해조류 연구와 바다숲 복원 방안을 놓고 전문가들과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김수아 대표
해조류 연구와 바다숲 복원 방안을 놓고 전문가들과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김수아 대표 진재중

아버지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침에 만났던 바다는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파도를 마주하는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의류사업을 하던 한 여성은 이제 바다에 숲을 조성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기 위해 내려왔던 강릉은 어느새 그의 삶의 터전이 되었고, 아버지 김영돈 회장이 평생 품었던 신념은 이제 딸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거칠다. 앞으로도 수많은 풍랑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파도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사람의 신념이다. 아버지가 바다에 심어 놓은 희망은 이제 김수아 대표의 삶이 되었고, 그 삶은 오늘도 동해의 바다숲에서 조용히 미래를 키워가고 있었다.

 바다에 심어진 아버지의 희망은 이제 김수아 대표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다에 심어진 아버지의 희망은 이제 김수아 대표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재중
#바다숲 #김수아 #의류사업가 #패션니스트 #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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