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라오스 잇는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에서 20년, 수완나홍 깨오빠세트씨

등록 2026.07.09 09:47수정 2026.07.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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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면 한 세대가 자라는 시간이다. 낯선 이름이 익숙한 이름이 되고, 멀게 느껴지던 나라가 가까운 이웃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올해는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라오스 사무소가 정식 개소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개소 당시만 해도 라오스에서 코이카는 물론 한국을 낯설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양국은 국제협력 분야에서 서로를 빼놓고 말하기 어려운 관계가 됐다.


코이카의 대라오스 지원 확대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2006년 약 40억 원이던 지원 규모는 2025년 약 385억 원으로 늘었다. 20년 만에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1991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 지원 규모는 약 3775억 원이다.

한국은 2020~2024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기준 대라오스 공여 총액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했다. 현지 사무소 인력도 2006년 10여 명에서 2026년 현재 23명으로 늘었다. 한국인 8명과 현지인 15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개소 초기부터 함께한 수완나홍 깨오빠세트씨(44)는 한국과 코이카라는 이름이 라오스 사회에 뿌리내리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수완나홍씨는 "처음에는 코이카에서 일한다고 하면 그곳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라오스 사람들이 한국과 코이카를 알고 있고,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개소 20주년을 맞아 양국 협력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수완나홍 깨오빠세트씨를 지난 6월 25일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에서 만났다.

첫 직장에서 보낸 20년


수완나홍 깨오빠세트 씨가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개소 20주년을 맞아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수완나홍 깨오빠세트 씨가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개소 20주년을 맞아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CN아시아콘텐츠뉴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코이카 연수생 과정에 참여했다. 그 인연은 직장으로 이어졌다. 2007년 6월, 그는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에게 코이카는 첫 직장이었다. 라오스에서는 한 직장에 오래 머물기보다 새로운 일터로 옮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떠나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켜온 이유를 묻자, 그는 "한국과 라오스는 문화나 업무 환경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업무를 매우 체계적이고 시스템화 해 진행합니다. 그런 점이 저와 잘 맞아 오래 일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수완나홍씨에게 코이카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 일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한국과 라오스가 협력하는 방식을 익힌 삶의 터전이었다. 그는 불발탄 제거, 병원·학교 건립, 농촌 개발 사업, 그리고 최근 북부 오지 마을을 찾아가는 재활 모바일 서비스까지 코이카의 모든 사업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현장의 변화는 마을의 변화로 이어졌고, 주민들의 일상도 조금씩 달라졌다.

현재 그는 WFK(World Friends Korea) 봉사단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다. 라오스 현지 기관의 수요를 파악하고, 필요한 분야에 맞는 봉사단원을 연결하는 일이다. 파견 이후에는 봉사단원과 현지 기관 사이의 소통을 돕고 안전 관리도 맡는다.

사무소 운영을 위한 행정 업무도 그의 몫이다. 면세 물품과 차량 관련 행정, 수출입 절차, 직원과 파견 인력의 비자 및 ID 카드 발급 등이 포함된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꼭 필요한 일들이다.

가장 잊지 못하는 현장

2018년 아따쁘 주 홍수 피해 현장에 도착한 한국 수송기 모습 .
▲2018년 아따쁘 주 홍수 피해 현장에 도착한 한국 수송기 모습 .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그는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으로 2018년 아따쁘 주 홍수 피해 현장을 꼽았다. 당시 그는 피해 지역에 26일 동안 머물며 라오스 정부, 아따쁘 주 정부,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사이에서 현지 조율을 맡았다.

수완나홍씨의 기억 속 아따쁘 현장은 혼란과 두려움이 뒤섞인 곳이었다. 홍수로 가족과 친척이 흩어졌고, 물에 휩쓸린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주민들이 많았다. 그는 "당시에는 정보가 부족해 모두가 혼란스러웠고, 가족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큰 슬픔 속에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은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을 마주했을 때였다. 수완나홍씨는 "시신을 수습하고 옮기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났습니다"라고 했다.

그때 한국 정부는 구호 물품을 지원했고, 대한민국 구조대도 현장에 파견됐다. 수완나홍씨는 그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구조대원들이 피해 현장을 오가며 주민들을 도왔습니다. 그 모습이 매우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국인 봉사단원들과 함께 일한 수완나홍씨에게 그들은 단순한 파견 인력이 아니었다. 고향과 가족, 익숙한 생활을 한국에 두고 라오스에 와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 봉사단원들을 "많은 것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한국인 봉사단원 가운데 그가 유독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라오스에 네 차례 재파견 돼 약 8년 동안 현지 주민들에게 미용 기술을 가르친 한국인 미용사 봉사단원이다. 수완나홍씨는 그 봉사단원을 "가장 존경스럽고 기억에 남는 분"이라고 했다. 미용 기술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직업교육일 수 있다. 그러나 방비엥의 소수민족 학교 아이들에게는 달랐다. 가위와 빗을 잡는 법을 배우는 일은 스스로 살아갈 힘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수완나홍씨는 "현재도 방비엥 지역의 소수민족 학교에서 현지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미용 교육 봉사를 지속하고 계신다"며 "라오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두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의 일'

2012년 수완나홍 깨오빠세트 씨 모습 .
▲2012년 수완나홍 깨오빠세트 씨 모습 .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수완나홍씨는 10살과 12살 두 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두 딸은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며 라오스 사람들을 돕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그에게 코이카에서의 일은 생계 수단을 넘어 가족에게도 자부심이 되는 일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과 코이카가 '한국 주간' 행사를 열 때면 두 딸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수완나홍씨는 한국을 가까이 느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궁궐을 거닐었던 일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대 청년이었던 그는 이제 40대 중반이 됐다. 20대에는 열정으로 일을 배웠고, 30대에는 현장에서 사람을 익혔다. 40대가 된 지금은 노련함과 안정감으로 한국과 라오스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10년 뒤, 그리고 그 이후의 미래를 묻자 그는 잠시 웃었다.

"코이카는 저의 첫 직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직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년을 맞을 때까지 한국과 라오스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ACN아시아콘텐츠뉴스에도 실립니다.
#라오스 #코이카 #국제협력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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