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외길 끝에 깨달은 전통의 가치... 장인이 꼭 전하고 싶었던 말

[인터뷰] 당진 향토무형문화유산 방짜유기장 이광석 보유자

등록 2026.07.09 10:06수정 2026.07.0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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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 년 동안 방짜유기 외길을 걸어온 이광석 장인은 2024년 당진시 향토무형문화유산 방짜유기장 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전통 방짜유기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오늘도 망치를 놓지 않고 있다.
40여 년 동안 방짜유기 외길을 걸어온 이광석 장인은 2024년 당진시 향토무형문화유산 방짜유기장 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전통 방짜유기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오늘도 망치를 놓지 않고 있다. 김정아

"방짜유기는 그릇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담는 일입니다."

쇳덩이는 불을 만나고, 수천 번의 망치질을 견딘 끝에 비로소 하나의 그릇으로 태어난다. 우리 선조들은 이 과정을 단순한 금속 가공이 아닌 시간과 인내, 그리고 사람의 정성을 빚어내는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방짜유기는 오래 사용할수록 더욱 깊은 빛을 품고, 세월을 견딜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우리 전통 공예의 정수로 이어져 왔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40여 년 동안 오직 한 길만을 걸어온 이광석 장인 역시 오랜시간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왔다. 이어 전라북도 무형유산 방짜유기장 이수자로 오랜 세월 전통 기법을 익힌 그는 2024년 9월 10일, 당진시 향토무형문화유산 방짜유기장(方字鍮器匠)'보유자로 지정되며 지역 전통문화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구리와 주석을 정해진 비율로 합금해 1200~1300℃의 불길 속에서 녹이고, 수천 번의 망치질과 담금질을 거듭하는 전통 방식을 지금도 묵묵히 지켜가는 장인의 손끝에는 한 점의 그릇을 넘어 우리 문화의 시간과 정신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 40여 년 외길을 걸어온 이광석 장인의 첫 마디에는 평생을 지켜온 신념과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기자는 지난 6일 ,방짜유기 연구실을 찾아 불과 망치가 빚어낸 그의 삶과 전통을 지켜온 시간의 이야기를 촘촘히 들었봤다.

"방짜는 '좋은 사람, 좋은 물건을 뜻하는 말처럼 이야기해"

- 방짜유기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방짜유기를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젊은 시절 우연히 유기를 접했는데요. 그 가운데서도 방짜유기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죠. 예부터 충남에서는 '방짜'를 좋은 사람, 좋은 물건을 뜻하는 말처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저에게도 방짜는 그만큼 귀한 존재였습니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유기를 두드려 하나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정말 놀라웠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장인의 정직한 신념과 올곧은 정신이었습니다. 뜨거운 불을 견디고 수천 번의 망치질을 거쳐 하나의 방짜유기가 완성되듯, 사람 또한 숱한 시련과 시간을 지나며 비로소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과정이 우리네 인생과 참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쇠를 단련하듯 제 자신을 다듬으며 여기까지 걸어왔죠. 돌이켜보면 저는 방짜유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방짜유기가 오늘의 저를 장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망치를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제 시간과 삶도 함께 쌓였고, 그 과정 속에서 인내와 겸손, 책임을 배웠습니다. 아울러 방짜유기는 제게 직업이 아니라 삶을 가르쳐 준 스승이자 평생 함께 걸어온 동반자입니다. 언젠가 제가 만든 그릇이 누군가의 식탁에서 오래도록 쓰이며 '우리 전통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하고 기억된다면, 장인으로서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1200~1300℃의 불과 수천 번의 망치질을 거쳐 방짜유기를 빚어내는 작업장에서 이광석 장인의 손끝과 오랜 시간의 인내가 더해져 비로소 방짜유기가 완성된다.
1200~1300℃의 불과 수천 번의 망치질을 거쳐 방짜유기를 빚어내는 작업장에서 이광석 장인의 손끝과 오랜 시간의 인내가 더해져 비로소 방짜유기가 완성된다. 김정아

- 방짜유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나요?

"방짜유기는 구리 약 78%와 주석 약 22%를 일정한 비율로 합금한 뒤 1200~1300℃의 고온에서 녹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쇳물을 식혀 재료를 만든 후 다시 달구고, 수천 번의 망치질과 담금질을 반복하며 형태를 잡아가죠. 이후 무게질과 나침, 질, 바름질, 가질 등 여러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방짜유기가 완성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은 장인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짧게는 몇주, 길게는 수개월이 걸리기도 하는데요.

우리 전통 유기는 제작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방짜유기, 쇳물을 틀에 부어 깎아 만드는 ​주물유기, 그리고 두 기법을 함께 사용하는 ​방짜유기입니다. 이 가운데 방짜유기는 가장 많은 시간과 노동,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는 전통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수천 번 반복되는 망치질은 단순히 모양을 만드는 과정이 아닙니다. 금속 조직을 더욱 치밀하게 만들어 뛰어난 내구성과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방짜유기만의 생명력을 완성하는 과정이죠. 사실, 사람들은 완성된 그릇 하나를 보지만, 저는 그 안에 담긴 수천 번의 망치질과 40여 년의 세월을 함께 봅니다. 그래서 방짜유기는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 그리고 장인의 정신을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계로 만든 제품과 전통 방짜유기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기계는 같은 모양의 제품을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전통 방짜유기는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금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입니다. 무엇보다 방짜유기는 수천 번의 망치질과 담금질을 반복하면서 금속 조직을 더욱 치밀하게 단련합니다. 이 과정에서 강도와 내구성이 높아지고, 오래 사용할수록 은은한 색감과 깊은 질감이 살아나죠. 그래서 방짜유기는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세월을 품으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그릇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는 사람의 손입니다. 기계는 똑같은 제품을 만들지만, 장인의 손은 같은 작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망치를 내리치는 힘과 각도, 불의 온도와 재료의 상태를 순간순간 읽어내는 감각은 오랜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죠. 그럼에도 저는 그 차이를 '시간의 밀도'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기계가 효율을 만든다면, 장인은 긴 시간을 두드려 문화를 만듭니다. 아울러 방짜유기의 진정한 가치는 완성된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수천 번의 망치질과 한 사람의 삶이 함께 담겨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당진시 향토무형문화유산 방짜유기장 이광석 장인이 달궈진 금속을 망치로 두드리며 전통 방짜유기를 제작하고 있다.
당진시 향토무형문화유산 방짜유기장 이광석 장인이 달궈진 금속을 망치로 두드리며 전통 방짜유기를 제작하고 있다. 김정아

- 방짜유기는 변색이 되어도 그 효과는 유지되나요?

"사실, 많은 분들이 방짜유기가 검게 변하면 못 쓰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변색은 공기와 수분에 닿으면서 표면이 산화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방짜유기의 품질이 떨어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적절한 세척과 관리를 하면 본래의 색감과 광택을 회복할 수 있으며, 표면의 산화로 인한 변색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특히 세척할 때는 강한 세제보다는 굵은 소금을 부드럽게 문질러 사용하거나, 미지근한 물에 식초를 약 20대 1 비율로 희석해 잠시 담가 둔 뒤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주면 얼룩이나 표면의 산화막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방짜유기는 관리하기에 따라 본래의 은은한 색감과 광택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그릇입니다. 저는 방짜유기를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의 삶과 함께 숨 쉬며 가치를 더해가는 살아 있는 생활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짜유기, 더 많은 사람이 가까이서 함께하길"

- 지난해 당진시 향토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셨습니다. 어떤 의미였습니까?

"무엇보다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이종덕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선생님의 길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라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장인의 길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에게 배우고, 또 그 가르침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향토무형문화유산 보유자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당진시에) 무척 감사하고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제부터가 시작이구나'라는 책임감이 더 크게 다가왔죠.그 이유는 무형문화유산은 지정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전승하고 후대에 이어가느냐에 그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무엇보다 방짜유기에 담긴 역사와 장인 정신,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삶의 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음 세대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저를 가르쳐 주신 스승께 보답하는 길이자, 장인으로서 제가 끝까지 지켜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싶으신가요?

"방짜유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물론이고 체험교육도 꾸준히 확대하고 싶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직접 망치를 들고 쇠를 두드려 보면서 전통이 어렵거나 낡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라는 것을 느꼈으면 합니다. 기술은 혼자 간직한다고 문화가 되지 않거든요.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비로소 전통은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30여 일의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 방짜유기 작품들은 접시와 수저, 포크는 물론 팔찌와 목걸이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장신구로 재탄생해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30여 일의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 방짜유기 작품들은 접시와 수저, 포크는 물론 팔찌와 목걸이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장신구로 재탄생해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김정아

- 마지막으로 당진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당진은 농업 중심의 1차 산업을 기반으로 제조업을 거쳐, 이제는 문화·관광·체험이 어우러진 6차 산업도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의 전통문화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아직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문화유산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미래 세대에 전할 소중한 자산이자 경쟁력입니다. 이제는 문화유산을 보존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 발전의 중요한 문화자원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더욱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방짜유기 역시 우리 조상들의 삶과 함께해 온 생활문화이자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공예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당진에도 방짜유기가 있었나요?'라고 묻는 현실을 접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지역의 문화유산은 멀리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부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진 시민들이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먼저 알고,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당진시에 바라는 것은 방짜유기가 특정 장인의 기술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함께 향유하는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전문적으로 기술을 이어갈 후계자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요. 그렇기에 전승의 방식도 시대에 맞게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인을 양성하는 일과 더불어 시민들이 하루 동안 직접 망치를 들고 방짜유기를 만들어 보며 자신의 이름이나 가족의 문양을 새기는 원데이클래스가 활성화된다면,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전통을 일상 속으로 이어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진이 방짜유기를 배우고 체험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 전통공예 문화도시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특히 , 제작 방식은 물론 맑고 깊게 이어지는 울림까지도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요. 이러한 가치를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경험이 쌓일 때 전통은 박물관 안의 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가 됩니다. 방짜유기가 당진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해 더 많은 당진 시민들이 우리 전통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길 바랍니다. 저 또한 평생 망치를 놓지 않고 방짜유기의 정신과 장인정신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당진향토무형문화유산방짜유기장 #이광석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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