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표지 사진.
원더박스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는 팩트체크 분야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내일신문> 소속 정재철 기자가 써낸 책이다. 책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시대 마녀사냥, 근대 프랑스 혁명 등 음모론의 역사를 보여준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유대인이 경제 위기 배후로 지목된 것, 1950년대 냉전 시대 미국에서 매카시즘으로 발현된 '빨갱이 사냥', 2001년 9.11 테러 후 이슬람과 관련된 음모론 등 대부분 불안과 혼란의 시기에 음모론이 답처럼 제시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팬데믹 시기 마스크를 써야 하고 격리 조치가 이어지자 음모론이 고개를 든 것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예시 중 '홀로코스트 사망 원인은 학살이 아니라 질병이나 기아였다'라며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음모론은 한국에서 5.18을 부정하려는 시도를 떠올리게 한다.
책에서 언급한 2020년 7월 미국 가구 업체 웨이페어가 겪은 일은 최근 음모론 확산의 대표적인 예시다. 어느 인터넷 사용자는 웨이페어 웹사이트에서 너무 높은 가격대의 캐비닛을 발견했고, 제품에 붙은 여성의 이름들이 실종 아동 명단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가 캐비닛 목록을 통해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실 제품명은 알고리즘이 자동 생성한 것이었고, 높은 가격은 사이트의 오류였다. 실종 명단에 거론된 어느 여성은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자신은 실종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 해당 음모론에 관해 1만 2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작성됐고, 가구 업체 고객센터 직원들은 쏟아지는 항의 전화와 살해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사람들은 왜 음모론에 빠져드는가
책에서는 '민주주의에 필요한 의심'과 '음모론'을 구체적 근거로 검증 가능한지, 아니면 검증 시도조차 은폐로 간주 하는지로 구분한다. 자신의 주장과 다른 근거를 마주했을 때 반박을 수용하고 가설을 재검토할 수 있다면 '건강한 의심'에 해당하지만, 음모론의 경우에는 '무언가 숨기는 게 있으니 반박하며 은폐하려는 것'이라며 검증 시도 자체를 음모론의 근거로 추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음모론에 빠져드는 걸까. 저자는 불안하고 고립된 사람들이 심리적 방어 차원에서 확신할 무언가를 찾게 된다고 지적한다. 현실은 복잡하고 불명확한 것들 투성이인데, 인간은 무작위 또는 우연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외부의 적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서사를 더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단순하고 명확한 설명을 원한다. 음모론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든다. 불안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심에 질서를 부여한다. 따라서 음모론을 단순한 '거짓말'로 취급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으며, 왜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34쪽 중
책에서 소개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환경 속에서 패턴을 감지하고 의미를 찾는 능력을 발전시켜왔다고 한다. 고대 수렵 채집 시대엔 수풀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조차 포식자의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존에 유리했다. 책에서는 이러한 '거짓 경보'가 비록 틀리더라도 안전한 선택이었기에 뇌는 실제보다 위협을 과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면서, 현대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 속 알고리즘과 결합돼 '과잉 해석'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음모론에 맞설 해결책은 있나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 2024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무장한 계엄군들이 투입되고 있다.
유성호
저자는 한국에서 벌어진 12.3 계엄, 미국 1.6 의회 난입 사건, 브라질 1.8 정부 청사 난입 사건, 서부지방법원 폭동 등 '부정선거 음모론'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언급하면서 음모론이 민주주의를 흔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책에서는 "2022년 유럽연합의 연구에 따르면 극단적 음모론자는 일반 시민보다 정치적 폭력을 용인할 가능성이 4배 높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을까. 가짜뉴스를 판별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 규제 등은 당연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저자는 핀란드의 '사이버 시민 교육' 모델을 참고할 사례로 소개한다. 핀란드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모든 학교 수업에 포함 시켰다고 한다. 과학 시간에는 진짜 과학과 가짜 과학을 구별하는 법을 배운다. 국가가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시민이 직접 판단하는 법을 기르는 것이다.
저자는 음모론이 소외되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깨어있는 나'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며 소속감을 준다고 짚는다. 그렇기에 '그건 틀렸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역효과를 부르고, 그보다는 "흥미롭네요"라고 공감하며 "그걸 믿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다른 설명도 있던데 생각해보셨나요?"라고 다양한 정보를 직접 찾아보게 설득하는 '대안 서사'가 나은 방향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미시간 대학 사회심리학 연구팀이 2023년 발표한 연구를 인용하며 이러한 대화 기법을 적용한 후 "참가자의 68%가 자신의 확신 수준을 낮췄다. 또 47%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었다고 보고했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소개한 NPR의 잭과 루실은 이후 가족과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저자가 제시한 '음모론에 빠진 가족 구하는 법'을 책에서 직접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 음모론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관계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
정재철 (지은이),
원더박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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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진다면? 이렇게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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