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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공사 동의서 사인 받다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22년 된 아파트 반셀프 인테리어 결정하고 느낀 이웃간의 정

등록 2026.07.10 11:48수정 2026.07.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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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모두가 자고 있던 한밤중이었고,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욕실에서 나는 듯한 그치지 않는 물소리가 이상했다.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고, 안방 화장실의 수전이 터지고 말았다.

수리한 적 없는 22년 된 아파트. 이사 오던 10년 전만 해도, 꽤 근사한 집이었다. 세 아이를 기르기에 적절했던 1층 집. 물이 새는 곳도 없었고, 배드민턴장이 앞에 있어서 일조량마저 충분한 볕 잘 드는 집.


그러나 10년의 세월을 피할 수 없었고, 집은 낡았으며, 여기저기가 고장 났다. 변기가 고장 났고, 주방 수전이 망가졌다. 마루는 벗겨졌고, 벽지는 색이 바랬다. 손재주 좋은 남편의 솜씨로 고치며 버텨오던 날의 정점이 찍힌 것이다.

한밤중에 수전이 터져서 속절없이 아까운 온수가 뿜어져 나왔을 때, 얼마나 막막했던가. 관리사무소에 문의하고, 24시간 긴급출동 기사를 부르기까지 우리의 당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관리사무소의 안내에 따라 양수기 함에서 냉온수를 잠갔지만, 소위 '밀리는 현상' 때문에 온수가 그치지 않았다.

새어 나오는 온수를 온몸으로 맞으며, 기다란 수전 몸체를 떼어낸 남편은 결심했다. 이사할 길이 열리지 않으니, 집수리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낡은 집 이사 대신 수리를 결심

대략 4개의 인테리어 업체와 상담을 하고 난 후, 우리가 내린 결론은 '반셀프 인테리어'였다. 기술이 필요한 부분(전기, 설비, 도배 등)은 전문가를 섭외하고, 우리가 직접 현장 관리와 공정 순서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비용의 부담을 느끼는 우리로서는 인테리어 업체마다 견적하는 가격의 차가 크다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작지 않은 리스크를 떠안아야 했다. 정보를 찾고,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시간과 발품이 들어갔다. 공정 당 서너 개의 업체와 상담을 했고, 그 상담에 지칠 즈음에 3주간의 일정이 확정되었다.

부담이 컸다. 남편은 휴가를 자주 써야 했다. 아이들은 실측을 위해 자꾸만 집으로 찾아오는 낯선 이들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자 없이 완성될 새로운 집에 대한 기대 덕분이었다.


'끝나면 너무 행복할 거야'라는 희망을 안았지만, 가장 먼저 맞닥뜨린 곤란은 '입주민 동의서'에 서명을 받는 일이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반셀프 인테리어를 결심했는데, 주민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 대행업체를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심장은 얼마나 쿵쾅거렸던가.

첫번째 동의서 긴장된 마음이 무색할 만큼, 이웃들의 손길은 넉넉했다.
▲첫번째 동의서 긴장된 마음이 무색할 만큼, 이웃들의 손길은 넉넉했다. 본인

1층에 산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로비가 있는 1층이라, 큰 쓰레기를 버릴 때나 무거운 집을 옮길 때만 이용했다. 막내가 서너 살일 때는 자주 이용했지만, 중학생이 된 지금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일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런 곳에 우리의 공사 일정을 공개하고 서명을 받기 위한 동의서를 부착해야 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누군가의 기꺼운 서명을 받는다는 것은 여간 긴장되는 일이 아니었다. 남편 역시 떨리는 마음으로 빈 동의서에 긴 고무줄과 함께 펜을 달았다. 그가 테이프와 가위를 챙기는 동안, 나는 색지를 오려 부탁의 말을 간략하게 썼다.

"입주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101호 주민입니다. 이곳에서 10년을 살았더니, 아이들은 크고 저희 부부는 늙었네요. 집도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낡았어요. 이사를 갈까 고민했지만, 좋은 집과 마을과 이웃들을 포기하기 아까워, 수리를 결심하게 되었어요. 너른 마음으로 서명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짧은 문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긴장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에 동의서를 부착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몇 명이나 서명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매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다음 날 아침, 한 개의 서명도 없는 것에 우리는 적잖이 낙담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기에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자기 일도 아닌데, 누가 정성껏 이름 쓰고 서명을 해주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대행업체를 불러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서명을 요구하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저녁나절이 되자, 하나둘씩 서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기꺼운 손길이 이처럼 마음을 어루만질 줄이야. 확인할 때마다 늘어나는 서명을 보며, 나는 소리 없는 환호를 혼자 내질렀다. 시끄러운 공사에 양해의 마음과 더불어 서명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문구 옆에는 주민 몇몇 분의 응원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화이팅!'
'집 잘 수리하세요.'
'마음이 이쁘세요.'

그리고 그 옆에 함께 적힌 하트와 별과 웃는 표시. 눈물이 핑 돌았다. 어느 여성분의 서명 옆에는 '우리 엄마'라는 아이의 글귀가 함께 적혀 있기도 했다. 엄마가 서명할 때, 함께 있던 아이가 한 마디를 얹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아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나도 좋은 이웃이 되어야지

1차 공사에 이어 2차 공사까지 우리는 두 번 서명을 받았다. 두 번 다 주민들의 넉넉한 마음을 확인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름 모를 연대감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낡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꽤 아늑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 공동체가 아닌가.

두 번째 동의서 앞으로 자주 엘리베이터에 오르게 될 것이다. 기꺼운 서명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두 번째 동의서 앞으로 자주 엘리베이터에 오르게 될 것이다. 기꺼운 서명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본인

두 번째 서명을 받을 때, 나는 이 마음을 간략하게나마 표현했다.

"감동의 입주민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101호 주민입니다. 기꺼이 해주신 동의 사인과 응원의 메모들을 가슴에 품고 험난한 1차 인테리어를 마무리했답니다. 한 분 한 분의 기꺼운 사인과 메모는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저희도 언젠가 그 은혜에 보답할 날이 있을 거라 믿으며...."

이번에도 하트와 'Good Luck!'이라는 글귀가 적혔다. 자연스레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낡은 집을 수리하려 했을 뿐인데, 이웃 간의 정을 새로이 깨닫는 멋진 기회가 되었다. 이제 다음 주면 2차 공사가 시작된다. 적잖은 소음과 분진으로 이웃들은 곤란을 겪을 것이다. 죄송한 마음이 앞서면서도, 그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픈 마음이 물씬 피어오른다.

아마 앞으로 나는 이전보다는 좀 더 자주 엘리베이터에 오르게 될 것이다. 혹시 어느 집에서 마음을 연 서명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인테리어 #이웃 #입주민동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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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 7권의 웹소설 e북 출간 경력 있음. 현재 '쓰고뱉다'라는 글쓰기 공동체에서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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