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초등학교로 고친 역사학자 고 박창희 교수

한국외대 박창희 교수 1주기 추모 심포지엄 열려

등록 2026.07.10 10:37수정 2026.07.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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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에서 온 곤도 이즈미라고 합니다. <마츠모토 강제노동 조사단>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강제노동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 시민입니다. 박창희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1년이 지난 오늘, 이렇게 1주기 추도회에 참석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 한국ㆍ조선에 대해 동경과도 같은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선배들로부터 마츠시로 대본영(松代大本営은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정부와 황실, 군사 사령부를 이전하여 최후 항전을 벌이기 위해 나가노현 마츠시로에 건설했던 거대한 극비 지하 벙커, 필자 주) 지하호 공사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실태 조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이 저지른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조선인과 중국인에게 강요했던 고난과 강제노동의 역사를 동료들과 함께 오랜 시간 조사해 왔습니다. 박 선생님과 처음 만난 것은 선생님이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마츠시로에 오셨을 때였습니다. 그 뒤 선생님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셨을 때, 일본에서도 석방 요구 운동이 전개되었고 저 역시 그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 일본과 한국ㆍ조선을 잇는 무지개가 되기를 바라며, 박창희 선생 1주기 추도사 중 일부, 곤도 이즈미 (日本と韓国・朝鮮を繋ぐ虹にならんことを願って, 朴昌熙先生一周忌追悼の辞. 近藤 泉)

이는 지난 7일(화) 낮 2시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회관 2층 강연실에서 열렸던 '역사와 함께 민족과 더불어, 박창희 교수 1주기 추모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인 곤도 이즈미(近藤 泉)씨의 추모글이다. 곤도 이즈미씨(75살)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가노 지역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및 외국인을 연구한 책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本土決戦と外国人強制労働)>(2023, 일본 '高文硏' 출판)을 쓴 '마츠모토 강제노동 조사단' 단원이다.

원탁회의 발표 제2부 원탁회의에서 발표하는 연사들, 유영초 한성대교수, 박종관 외대 사학과 제자, 채승곤 중남미정보센터LAIC 대표, 곤도 이즈미 씨, 마츠모토 강제노동조사 단원, 박정아(박창희 교수님 따님) 왼쪽 사진 왼쪽부터, 오른쪽 사진은 곤도 이즈미 씨의 추도사와 박창희 교수의 따님이 통역을 하는 모습
▲원탁회의 발표 제2부 원탁회의에서 발표하는 연사들, 유영초 한성대교수, 박종관 외대 사학과 제자, 채승곤 중남미정보센터LAIC 대표, 곤도 이즈미 씨, 마츠모토 강제노동조사 단원, 박정아(박창희 교수님 따님) 왼쪽 사진 왼쪽부터, 오른쪽 사진은 곤도 이즈미 씨의 추도사와 박창희 교수의 따님이 통역을 하는 모습 이윤옥

추모제 심포지엄 추모제 심포지엄 모습
▲추모제 심포지엄 추모제 심포지엄 모습 이윤옥

이날 추모 행사는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심규호(전 제주산업정보대학 총장, 제주국제대 교수)의 개회사로 시작되었다. 이어 '역사와 함께 민족과 더불어'라는 심포지엄의 주제를 살린 발표가 진행됐다.

1) 박창희의 민족 문제 인식과 논리(제주국제대, 심규호), 2) 박창희의 세종연구: 세종에게 국가의 길을 묻다(원광대 조성환), 3) 박창희의 고려사 연구의 학술적 의의(한국외대 여호규), 4) 외대 학보 기록으로 보는 박창희(한국외대 변선영), 5) 국민학교 개명 운동의 성과와 역사적 의의(한성대, 유영초) 등 모두 5개의 주제 발표가 진행됐으며 박창희 교수의 제자 등 80여 명이 참석하여 그 유업을 기렸다.

곧이어 2부 순서는 유영초 교수의 사회로 '박창희와 나, 그리고 한일연대와 우정'이라는 주제로 곤도 이즈미(마츠모토 강제 노동 조사단): 박창희 선생님과의 추억, 채승곤 (중남미 정보센터 LAIC대표): 외대 가면극연구회와 박창희 교수, 박종관(외대 사학과 86): 박창희 교수와 외대 사학과 교수에 관한 주제로 대담이 이어졌다. 대담 뒤에는 이날 자리를 함께한 류리수 박사 등 몇몇 제자들의 추억담과 제언 등이 있었다.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1주기 추모제에서 박창희 교수님의 심오한 학문의 세계와 투철한 역사의식, 따스한 인간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1995년에 간첩 누명으로 감옥에 들어가면서 해임되신 스승의 1주기 추모식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본격적인 학술 심포지엄의 서막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박창희 교수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제자들의 사무치는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매우 기뻤다. 교수님께서도 오늘 우리들의 추모제를 보시고 같은 마음이셨을 것 같다."

이는 곤도 이즈미씨를 안내하여 스승의 병문안을 다니던 제자 류리수 박사의 소회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자 시대의 참 지식인이었던 박창희 교수는 한국 사학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을 뿐 아니라 올곧은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왜곡되고 뒤틀어진 한국사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서 왔던 분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업적의 하나를 든다면,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서 유래한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꾼 노력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한 노력 끝에 1996년 오늘날의 초등학교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고 보면 새삼 박 교수님의 역사 인식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국민학교 이름 고치는 모임 '국민학교 이름 고치는 모임'을 이끌었던 고 박창희 교수
▲국민학교 이름 고치는 모임 '국민학교 이름 고치는 모임'을 이끌었던 고 박창희 교수 박창희

박창희 교수는 1950년대 일본 유학 시절,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폭로한 고마쓰가와 사건(이진우 사건)을 접한 뒤 사형을 앞둔 이진우의 구명 운동과 재일동포 처우 개선을 위해 힘썼으며, 귀국 뒤에는 독도연구회 지도 교수,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 조사연구회장 등을 역임하며 일본의 역사 왜곡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한편, 양심 있는 일본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한일 사이의 발전적 교류의 지평을 넓혔다.


이날 직접 추모회에 참석한 곤도 이즈미씨도 한일 사이의 연대와 관련 있는 인연이었다. 곤도 이즈미씨의 추모글 가운데 다음 대목에 기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창희 교수의 생전 이날 추모제 강연장에 전시된 박창희 교수의 생전 활동 사진들
▲박창희 교수의 생전 이날 추모제 강연장에 전시된 박창희 교수의 생전 활동 사진들 박창희

"한국을 방문하여 이동하는 차 안에서 선생님은 식민지 지배의 아픔을 담담히 들려주셨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절 국민학교에서 우등생이었던 모습, 봉안전 청소를 솔선수범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깊은 고뇌와 슬픔을 담아 고백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이 조사 여행을 통해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마음 깊이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중략) 선생님 댁을 방문 했을 때 '여기는 산수유 마을이랍니다. 꽃이 만발할 때 오세요'라며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재작년, 선생님의 병세가 안정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댁을 찾았을 때, 마침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마을 전체가 마치 노란 구름 속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라는 예감이 들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돌이켜보면 선생님께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다'라며 삶과 연구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곤도 이즈미씨의 추모글이 가슴을 친다.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 고 박창희 교수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곤도 이즈미씨 등이 집필한 책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2023, 일본 ‘高文硏’ 출판). 곤도 이즈미씨는 '마츠모토 강제노동 조사단' 단원이며 이들과 함께 책을 썼다. 이 책은 나가노현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조선인과 중국인 등의 실상을 파헤친 역작이다.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 고 박창희 교수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곤도 이즈미씨 등이 집필한 책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2023, 일본 ‘高文硏’ 출판). 곤도 이즈미씨는 '마츠모토 강제노동 조사단' 단원이며 이들과 함께 책을 썼다. 이 책은 나가노현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조선인과 중국인 등의 실상을 파헤친 역작이다. 高文硏

필자가 박창희 교수님의 역사 강의를 수강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일이다. 일본어 전공인 필자가 교양필수 과목 수강을 위해 첫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적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보도 듣도 못한 교재인 <주해 사료국사>라는 아주 두꺼운 책에 한 번 놀랐고, 교수님의 신념에 찬 역사 인식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러면서도 형용할 수 없이 빛나던 교수님의 눈동자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나 그때 역사 강의는 모두 잊어버렸지만, 그동안 필자가 친일파 청산 단체에 관여하고 한편으로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추적하면서 집필 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도 돌아보면 모두 그때 교수님께서 '역사인식'에 불을 지펴준 덕이 아닌가 싶다.

추모제 추모제를 마치고
▲추모제 추모제를 마치고 이윤옥

지난해 이천에 사시는 교수님께서 위독하시다는 말씀을 후배에게 들었음에도 찾아뵙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 1주기 추모제에도 부득이 참여하지 못해 여간 죄스러운 마음이 아니다. 대신 추모제에 참석차 내한한 곤도 이즈미씨를 안내하고 있는 류리수 후배를 통해 이번 추모제의 소상한 전모를 들었고, 사진을 제공받아 이 글을 쓴다. 내년 2주기 추모제 때는 꼭 참석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고 박창희 교수의 제자로서 스승님께 드리는 헌시로 이날 추모제 기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시대의 어둠을 밝힌 겨레의 횃불

- 박창희 교수님 타계 1주기에 부쳐

세월의 강물은 쉼 없이 흘러
어느덧 교수님 가신 지 한 해가 되었습니다.

민족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껴안고
굽힘 없는 올곧은 목소리로
진리의 강단에 서 계시던 그 모습이
오늘따라 더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교수님께서 심어주신 웅장한 겨레의 혼은
이제 수많은 제자의 가슴 속에서
등불이 되어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습니다.

지식의 파편을 가르치기보다
역사의 거대한 맥박을 읽게 하신 교수님!
강단 너머 서늘한 시대의 양심으로
부끄러움 없는 삶을 몸소 실천하신 그 뚝심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교수님!
이제는 우리가 교수님의 뒤를 따라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이 겨레가 나아갈 길을 밝히겠습니다.

교수님께서 남기신 고결한 가르침을
저희가 다시 잇고 닦아
꺼지지 않는 겨레의 횃불로 이어가겠습니다.

그날 강의실에서 듣던 우렁찬 교수님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으로
오늘의 우리를 다시 일깨우고 있으니
부디 우리의 정진을 지켜봐 주십시오.
교수님! 사랑합니다.

박창희 교수는 누구인가

박창희 생전의 박창희 교수
▲박창희 생전의 박창희 교수 박창희

박창희 교수(1932.12.6~2025.7.8)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도쿄도립대학 석사와 히토쓰바시대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l, 이화여자대학교 조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용비어천가』에서의 '천'과 '민'의 관념>(1991), <주해 사료국사>(1981), <한국사의 시각>(1984), <야스쿠니 신사와 그 현주소>(2007), <역주 용비어천가> 상ㆍ하(2015) 등이 있으며 특히 역사학적 연구에서 고대ㆍ중세 사료의 엄밀한 주해뿐만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와 일제 강제동원의 실체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독창적인 한일관계사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시민사회 활동에서도 학술적 고증을 바탕으로 마쓰시로 대본영 지하호 조사, 국민학교 명칭 개정, 독도 수호 등 일제 잔재 청산과 영토 주권 회복을 실천으로 이끈 행동하는 양심, 참 지식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리문화신문에도 실립니다.
#박창희 #곤도이즈미 #국민학교 #마츠모토강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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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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