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에서 '암호화'된 조롱은 알고리즘을 타고, 배경도 모르는 아이들의 손끝까지 배달된다.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그렇다면 이토록 명백한 사실이 어떻게 아이들의 놀잇거리로 전락했을까. 역사교육의 현장에서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왜곡은 결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 씨를 뿌리고, 오랜 시간 물을 주어야 자란다.
그 토양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2010년대 초의 온라인 여론 조작이다.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등이 익명 계정을 동원해 온라인 여론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은 훗날 재판을 통해 확인되었다. 같은 시기 일부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민주화운동과 특정 지역을 겨눈 조롱이 하나의 놀이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그렇게 뿌려진 조롱의 언어가 사라지기는커녕 10여 년에 걸쳐 '밈'의 형태로 끊임없이 복제·재생산되며 세대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는 데 있다. 지금 교실의 크롬북 배경화면에 떠 있는 조롱 밈은, 10여 년 전 온라인에 뿌려진 씨앗의 열매인 셈이다.
오늘날 이 조롱은 한층 교묘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도그 휘슬(dog whistle)'이라 부른다.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고 개에게만 들리는 초고주파 호루라기처럼,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평범한 말 속에 조롱의 신호를 암호처럼 숨겨 두는 방식이다. 아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신호가 되지만, 문제가 되면 "그냥 유행어였다", "뜻을 몰랐다"며 빠져나갈 구멍을 남긴다. 그 자체로는 죄가 없는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말이 조롱의 암호로 둔갑한 것이 바로 그 전형이다.
이 전략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쓰는 사람의 죄책감을 덜어 준다는 데 있다. 유행어처럼 따라 쓰는 아이들은 교실에서 배운 그 사건과 지금 자신이 외치는 그 말이 같은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죄책감이 옅으니 표현은 더 쉽게, 더 넓게 번진다. 조롱이 '놀이'가 되는 순간, 왜곡은 가장 빠른 날개를 다는 셈이다.
이 흐름에는 낯익은 문법이 있다. 역사학은 이런 현상을 '부정론(denialism)'이라 부른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세력이 오래도록 써 온 수법에는 일정한 단계가 있다. 먼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사실 자체를 의심하게 하고, 다음으로 "다른 비극도 있지 않으냐"며 그 무게를 상대화하며, 끝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슬그머니 뒤바꾼다.
5·18 민주화운동을 겨눈 왜곡 역시 놀라우리만치 같은 계단을 밟아 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 왜곡이 무거운 '주장'이 아니라 가벼운 '밈'의 옷을 입고 아이들의 손안에 직접 배달된다는 것뿐이다.
교실에서 확인되는 것, 13년의 기록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오가며 13년간 역사를 가르치는 동안, 학생들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함께 보는 수업을 거르지 않았다. 그때마다 반복해서 확인되는 순간이 있다. 교과서 속 한 줄로만 알던 사건이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로 되살아날 때, 아이들이 말을 잃는 순간이다.
평소 온라인에서 관련 밈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던 학생이, 정작 그날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두 눈으로 보고 나면 조용해진다. 한 학생은 상영이 끝난 뒤 조심스레 말했다.
"저는 그게 그냥 웃긴 말인 줄 알았어요."
그 말 앞에서 교사가 느끼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안타까움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교육과정에 명시된 내용이고, 전국의 역사 교사들은 해마다 이 단원을 가르쳐 왔다. 계기 수업을 준비하고,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기념관으로 학생들을 데려간 기록이 학교마다 쌓여 있다. 문제는 교실에서 배운 사실이 교실 문을 나서는 순간 무력해진다는 데 있다.
한 시간의 수업이 심어 놓은 사실 위로, 하루 수십 번 밀려드는 알고리즘의 조롱이 덧씌워진다. 교사가 확인해 준 진실은 한 번이지만, 아이의 손안에서 반복되는 밈은 셀 수 없다. 여기에 학생 선수들의 사정이 더해진다. 대회와 훈련으로 수업 결손이 잦은 이들은 역사·인권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서울시교육청이 이번 사건 이후 학생 선수 맞춤형 교육자료 개발을 밝힌 것도 이 구조를 확인한 결과다.
그러므로 이 사건이 묻는 것은 교실이 무엇을 못 했느냐가 아니다. 교실이 가르친 것을 교실 밖 세계가 어떻게 지워 왔느냐다.
역사와 달리기, 그리고 평화를 잇는 학생 동아리를 꾸려 아이들이 역사의 현장을 발로 밟고 몸으로 기억하게 하는 활동을 이어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면으로 스쳐 간 사실은 다른 화면에 쉽게 덮이지만, 발바닥과 숨으로 새긴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걸어 본 아이는, 적어도 그 조롱을 예전처럼 가볍게 입에 올리지 못한다.
아이들은 나빠서 조롱한 것이 아니다. 5·18민주화운동을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교과서에서 읽은 그 이름과, 화면 속에서 웃으며 따라 하던 그 말이 같은 것임을 끝내 연결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끊어진 자리는 처벌로 이어 붙일 수 없다. 지식과 삶을 잇는 일, 그것은 오직 교육만이 할 수 있다.
조롱이 지운 것은 '사실'만이 아니다

▲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이 사과 방문한 서울 배제고등학교 야구부에게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건 이후 열흘 남짓, 상황은 빠르게 움직였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7월 1일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와 청룡기 잔여 경기 몰수패를 의결했다. 학교는 구호를 선창한 학생 2명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했고, 서울시교육청은 관내 모든 학교 운동부에 대한 전수 점검에 들어갔다. 7월 6일에는 교장과 교직원, 지도자, 학생 선수, 학부모 등 86명이 광주일고를 찾아 고개를 숙이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튿날 광주일고와 총동창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배재고 학생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그리고 8일, 배재고는 교장 명의로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재심의는 이르면 이달 말 열릴 전망이다.
주목할 대목은 피해를 입은 쪽이 먼저 관용을 말했다는 사실이다. 광주일고 교장은 배재고 학생들이 경기장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역시 사과와 함께, 학생 개인을 향한 신상 공격과 과도한 비난은 경계해야 하며 책임을 묻는 과정도 교육의 원칙과 절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46년 전 총구 앞에 섰던 도시가, 지금 그 역사를 조롱한 아이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이보다 정확하게 보여 주는 장면은 없다. 그날 광주가 지키려 한 것이 바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용이 곧 망각을 뜻하지는 않는다. 출전정지가 풀리는 것으로 이 사건이 종결된다면,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역사를 조롱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들키면 곤란해진다'뿐이다. 조롱이 지운 것은 사실 몇 가지가 아니라, 그날 광주에서 이웃을 지키려다 스러져 간 사람들 그 자체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배경도 모르는 이들의 입에서 한낱 후렴구로 소비될 때, 우리는 그를 두 번 잃는다.
역사교육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롱을 멈추게 하는 가장 확실한 힘은 처벌이 아니라, "네가 웃어넘긴 그 말 뒤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진실을 똑바로 마주하게 하는 일이다. 그 일을 끝까지 감당해야 할 자리에 학교가 있고, 교사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 조롱은 왜 하필 지금, 이토록 빠르고 넓게 번지는가. 개인의 무지나 몇몇 세력의 선동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다음 편에서는 불안과 경쟁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아이들을 '혐오라는 손쉬운 놀이'로 떠미는지를, 중세의 마녀사냥과 관동대지진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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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역사를 가르치고, 집에서는 8살 딸 지수와 6살 아들 지호에게 인생을 배우는 아빠. 첫째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고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과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만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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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웃긴 말인 줄 알았어요"... '5·18밈' 보던 학생이 고개숙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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