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닮은 꽃을 피운 에케베리아

작은 인연이 일상을 환하게 밝히는 순간

등록 2026.07.10 10:17수정 2026.07.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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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남이섬으로 향하는 모꼬지 행사에 봉사자로 발걸음을 보탰다. 모처럼 시각장애인분들과 손을 잡고 같은 속도로 걸으며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시간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내 마음속을 가장 자주 채운 단어는 다름 아닌 '감사'였다.

시각장애로 일상에 불편함이 있을지언정,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단단하게 일구어가고 있었다. 행여 걸음이 흐트러질까 조심스레 도우려 나선 길이었는데, 오히려 그분들의 밝은 미소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주하며 깨달았다. 작은 봉사랍시고 나선 나야말로 그들보다 마음이 모자하고 부족한 것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손끝으로 나눈 정성, 손에 쥔 두 그루

보람 있었던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헤어지는 마당 앞, 인솔 책임자 선생님께서 환한 목소리로 모두를 불러 모으셨다.

 따스한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화단가에 나란히 자리 잡은 두 그루의 다육이. 내가 받은 선물이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생명력이 전해진다.
따스한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화단가에 나란히 자리 잡은 두 그루의 다육이. 내가 받은 선물이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생명력이 전해진다. 전갑남
"오늘 행사 정말 뜻깊고 행복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게 있어요. 우리 형제님 한 분이 집에서 정성껏 가꾼 다육이를 가져오셔서 하나씩 선물로 드린대요. 귀엽게 생겼는데 참 예뻐요. 잘 가꿔보세요."

봉사를 하러 갔다가 오히려 뜻밖의 귀하고 소중한 선물을 품에 안게 되었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작은 다육이 두 그루였다.

"이거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내가 여쭈었다. 곁에 계시던 분들이 저마다 조언을 건네주셨다.

"햇볕 잘 드는 곳에 두고 가끔 물만 주면 돼요. 원래 다육이는 게으른 사람이 기른다고 하잖아요."
"실내에서 길러도 되고요."
"베란다 창가에 두면 잘 자라요. 가능하면 바깥에서 키우는 게 더 좋아요. 비가 너무 심하게 올 때만 안으로 들여놓으세요."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다육이와 친구가 된 나는 집으로 돌아와 며칠 동안 녀석들을 화단 모퉁이에 그대로 둔 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아침 마당에 피어난 별 하나

바쁜 일상에 묻혀 존재조차 가물거리던 오늘 아침, 마당으로 나간 아내가 기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여보, 여보! 이것 좀 봐요. 다육이가 꽃을 피웠네! 와, 어쩜 이리 예쁠까?"
"정말이네! 앙증맞은 종 모양으로 주황색 꽃이 피었어. 어라, 가만 보니 꽃잎 끝은 별을 닮았네."

 장미꽃처럼 촘촘하게 엮인 로제트 잎 사이로 길게 뻗어 나온 꽃대. 자연의 섭리대로 활처럼 휘어진 곡선이 멋스럽다. 학의 머리가 연상되며 고고한 멋을 자아낸다.
장미꽃처럼 촘촘하게 엮인 로제트 잎 사이로 길게 뻗어 나온 꽃대. 자연의 섭리대로 활처럼 휘어진 곡선이 멋스럽다. 학의 머리가 연상되며 고고한 멋을 자아낸다. 전갑남
 에케베리아의 외출. 따뜻한 마음이 꽃으로 피어났다. 한동안 꽂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에케베리아의 외출. 따뜻한 마음이 꽃으로 피어났다. 한동안 꽂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전갑남
가까이 다가가 보니 참으로 신통방통했다. 장미꽃처럼 촘촘히 겹쳐진 잎 사이에서 길게 뻗어나온 꽃대가 화사한 꽃방울을 매달고 있었다. 햇빛을 고르게 받은 잎 가장자리는 수줍은 듯 붉게 물들어 있었고, 잎 표면에는 뽀얀 흰 분이 내려앉아 한층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당신, 이거 이름이 뭔지 알아?"
"글쎄, 돌나물과라는 것만 겨우 기억나는데…."

인터넷 식물 찾기 앱으로 사진을 비추어보니 녀석의 이름은 에케베리아였다. 이름을 알고 나니 꽃대가 활처럼 휘는 것도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이 식물의 자연스러운 성장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꽃대 끝을 유심히 바라보니 봉오리들이 차례차례 피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한 달 가까이 마당을 오갈 때마다 상냥한 에케베리아의 아침 인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작은 봉사보다 그날의 인연이 건네준 선물이 이토록 큰 일상의 기쁨으로 되돌아올 줄이야! 작은 인연 하나가 하루를, 때로는 마음 하나를 환하게 밝힌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앙증맞은 주황빛 종 모양 꽃방울.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잎 끝이 영락없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닮았다.
앙증맞은 주황빛 종 모양 꽃방울.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잎 끝이 영락없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닮았다. 전갑남
화단 모퉁이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다육이를 옮겼다. 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반짝이는 별 하나를 품은 듯 마음이 환해진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도 정성을 다해 이 작은 생명을 키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던 시각장애인 형제님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에케베리아의 꽃말 가운데 하나가 '변치 않는 마음'이라 한다. 어쩌면 그날 내게 전해진 것은 작은 다육이 두 그루가 아니라, 오래도록 잊지 말라는 고마운 마음 한 송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주황빛 에케베리아 꽃방울마다 고마운 이들의 마음이 담긴 감사의 종소리가 딸랑딸랑 맑게 울려 퍼지는 듯하다. 참으로 복된 아침이다.
#다육이 #에케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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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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